미국·유럽·일본 차입비용 수십년 만의 최고…선진국 이자만 연 4435조원
신흥국은 과거 위기 교훈으로 재정·외환 완충력 강화…사회불안 위험도 부유국서 상승
신흥국은 과거 위기 교훈으로 재정·외환 완충력 강화…사회불안 위험도 부유국서 상승
이미지 확대보기과거 빈곤국과 신흥국의 부채위기에 주로 투입됐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제 미국, 유럽, 일본 등 부유한 국가들의 부채와 급등한 차입비용을 주요 위험요인으로 주시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의 대이란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주요 선진국의 차입비용이 수십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세계 경제의 ‘위험지도’가 뒤바뀌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유럽, 일본 정부는 이미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국채금리까지 상승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 늘어난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다시 차입을 확대할 경우 부채와 금리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이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에서 각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12일부터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 모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부채, 에너지와 함께 일부 국가의 성장만 가속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붐을 이번 회의의 핵심 의제로 꼽았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선진국의 부채 수준이 역사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리 부담이 겹치고 있다”며 최근 우려의 수위를 높였다.
◇ 선진국 국채 이자 연간 3조3000억달러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최근 채권시장 매도세가 본격화하기 전에도 선진국 정부가 지급하는 연간 이자는 3조3000억달러(약 4435조원)를 넘어섰다.
이는 전 세계 국방비나 AI 관련 지출보다 많은 규모다.
지난달 주요 7개국(G7)의 10년 만기 국채 평균 수익률은 4.3%에 올라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이 수준을 기록했다.
저금리 시대에 정부가 대규모로 빌린 부채를 훨씬 높은 금리로 차환해야 하는 상황이 이자비용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프레데릭 노이만 HSBC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부채 원리금 상환비용 증가가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만드는 ‘불안정한 고리’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리 상승의 충격은 선진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소비자, 기업,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세계적으로 높아진다. 미 연방준비제도나 일본은행이 배럴당 100달러(약 13만4000원)에 이르는 유가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경우 신흥국 중앙은행도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긴축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정부의 이자비용이 늘어나면 높은 생활비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지원할 재정 여력도 줄어든다”고 경고했다.
◇ IMF 경고에도 선진국 정책 영향력 제한
IMF는 수년째 각국에 재정적자를 줄이고 부채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경고해왔다.
그러나 IMF 금융지원을 받는 신흥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 대해서는 정책 권고를 강제할 수단이 제한적이다.
IMF의 독립 감시기구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선진국에 대한 IMF 재정 권고 가운데 전부 또는 상당 부분 이행된 비율은 약 15%에 그쳤다.
더그 레디커 전 IMF 미국 대표는 “IMF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국가를 상대로는 IMF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선진국이 당장 부채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에 모든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다리오 퍼킨스 TS롬바드 매니징디렉터는 “국채금리 상승을 재정 문제보다는 유가와 통화정책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가격이 안정되면 인플레이션도 다시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1997년 위기 겪은 신흥국은 방어력 강화
현재 상황은 약 30년 전 아시아 금융위기와 대조된다.
지난 1997년 태국이 외환보유액을 소진한 뒤 바트화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면서 시작된 금융불안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당시 IMF는 대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은 긴축 조건을 부과했다.
블룸버그는 이후 여러 신흥국이 재정과 은행 규제를 강화하고 외환 완충장치를 확충하면서 과거보다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도 여러 신흥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외환보유액을 늘려 과거 금융시장 충격 때보다 양호한 경제 여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은 최근 게오르기에바 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이제 가장 큰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곳은 세계 경제에 구조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IMF가 이들 국가를 구제할 수는 없지만 IMF의 강력한 정책 조언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회불안 위험도 유럽·북미서 상승
경제·금융 위험의 중심 이동은 사회·정치적 위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영국 위험분석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지메나 블랑코는 “경제적 압박에 따른 사회불안 위험이 현재 선진국에서 가장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의 사회불안 지수에서는 최근 2년 동안 유럽의 상황이 가장 크게 악화했고 미국과 캐나다도 뒤를 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달 교사 부족과 교육시설 악화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지원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학생 시위가 확산해 26만5000명 이상이 참여했다.
블랑코는 “인플레이션과 부채 상환 부담으로 정부가 더 많은 재정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국민도 생활비 압박을 받고 있다”며 “양쪽 모두에서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는 과거 세계 금융위험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신흥국 상당수가 방어력을 강화한 사이 높은 부채와 금리, 생활비 부담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핵심 위험요인으로 부상하면서 세계 경제의 전통적인 위험구도가 뒤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