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글로벌이코노믹 로고 검색
검색버튼

"전력망 알박기 안 통한다"… 日 도쿄전력, AI 데이터센터 '용량 점거'에 칼 빼들어

도쿄전력파워그리드, 송배전망 이용 규정 개정… 계약 3개월 내 공사비 미납 시 '즉각 계약 취소'
용량 변경·일정 연기 시 직권 해지권 확보… 2027년 4월부터 '지연 페널티 과징금'도 부과
수도권 데이터센터 전력 대기 10년 육박… "실수요자 지원" vs "빅테크 해외 투자 위축" 팽팽
도쿄전력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무단 선점(스쿼팅)을 막기 위해 송배전망 이용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사진=도쿄전력이미지 확대보기
도쿄전력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망 무단 선점(스쿼팅)을 막기 위해 송배전망 이용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사진=도쿄전력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일본 최대 전력사인 도쿄전력(TEPCO)이 전력망 용량만 미리 선점해 놓고 실제 가동은 미루는 이른바 '용량 점거(Capacity Squatting·알박기)' 행위에 대한 고강도 단속에 착수했다.
도쿄전력의 송배전 전담 자회사인 도쿄전력파워그리드는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전력 인프라 분담금을 정해진 기한 내에 내지 않거나 일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할 경우 전력 공급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도록 송배전망 이용 규정을 전면 개정했다.

공공 송전망 용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신규 데이터센터가 전력을 공급받기까지 최장 10년을 대기해야 하는 전력 대란이 빚어지자,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없이 '일단 전력 용량부터 묶어두고 보자'는 식의 투기적 선점을 원천 차단하고 실수요자 중심의 전력망 공급을 정상화하겠다는 조치다.

10월 3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도쿄전력파워그리드는 허수 신청으로 인한 전력망 고립과 용량 낭비를 방지하기 위한 새로운 전력망 접속 약관을 확정하고 본격 시행에 돌입했다.
계약 3개월 내 비용 미납 시 계약 박탈… 용량·일정 축소도 직권 해지

새롭게 개정된 규정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운영사가 도쿄전력 측과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한 뒤 3개월 이내에 변전소 증설 등 송배전 인프라 구축 비용의 일부를 납부하지 않을 경우, 계약은 즉시 강제 취소된다.

그동안 거액의 시설 공사비를 치르지 않은 채 서류상 계약만 유지하며 타 사업자의 진입을 가로막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다.

아울러 전력회사의 직권 해지 권한도 대폭 강화됐다. 사업자가 최초 계약 시 합의했던 수전 용량을 추후 축소하거나 데이터센터 착공 및 완공 일정을 임의로 지연시킬 경우, 전력회사가 일방적으로 전력 공급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나아가 도쿄전력망은 오는 2027년 4월부터 전력 사용 개시 시점을 미루는 사업자에 대해 전력망 유휴화에 따른 페널티 요금(과징금)을 별도 부과하는 등 사후 징벌 체계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다.

송전 대기 최장 10년… "실수요자 조기 공급" vs "투자 위축" 충돌

현재 일본 내 데이터센터의 90% 이상은 대규모 전력 소비지와 해저 광케이블이 집중된 도쿄 수도권과 간사이(오사카·교토) 권역에 밀집해 있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의 송배전 설비 용량은 한계에 봉착했으며, 신규 데이터센터가 실제 전력을 송전받기까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10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극심한 인프라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글로벌 IT 개발사들은 데이터센터의 구체적인 하드웨어 스펙이나 자금 조달이 확정되기도 전에 거대한 전력 용량부터 신청해 계약을 맺어왔다. 이후 시장 상황에 따라 프로젝트를 축소하거나 공사를 무기한 연기하면서, 정작 당장 전력이 절실한 타 기업들이 배정받지 못하는 '용량 고립'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해 왔다.

업계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본데이터센터협의회(JDCC)는 "투기성 허수 수요를 걸러냄으로써 실제로 설비를 짓고 있는 실수요자들에게 전력을 훨씬 빠르게 공급할 수 있게 됐다"며 도쿄전력의 규정 개정에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일부 글로벌 데이터센터 개발사들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한 데이터센터 운영사 임원은 "수백 메가와트(MW)의 막대한 전력 없이는 데이터센터 가동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전력 수급 가능 시점을 먼저 확정받은 뒤 세부 설비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비즈니스 수순"이라고 토로했다.

설계 변경이나 가동 시점 조정에 거액의 페널티를 부과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강경책은 일본 시장에 진출하려는 해외 빅테크 기업들의 직접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발전소 옆으로 직접 가는 BTM 모델 급부상… 인프라 패러다임 전환

도쿄전력의 송전망 규제 강화는 공공 그리드를 우회하는 새로운 인프라 개발 방식을 촉발하고 있다.

기존 전력망 연결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지연되면서, 화석연료 발전 대기업인 JERA처럼 대규모 화력발전소 바로 옆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발전소 잉여 전력을 송전망 없이 직결하는 '비하인드 더 미터(BTM)' 방식에 글로벌 IT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패권 경쟁의 성패가 연산 칩 확보를 넘어 '안정적인 전력망 확보 속도'로 옮겨붙은 상황에서, 일본 수도권의 전력망 알박기 근절책이 건전한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할 마중물이 될지, 아니면 해외 자본의 투자 장벽으로 작용할지 글로벌 테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맨위로 스크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