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부채·호르무즈발 인플레·AI 자금수요가 글로벌 금리 밀어올려
게오르기에바 총재 "힘들게 낮춘 위험 프리미엄 다시 확대될 수도"…세네갈 구조조정 시험대
게오르기에바 총재 "힘들게 낮춘 위험 프리미엄 다시 확대될 수도"…세네갈 구조조정 시험대
이미지 확대보기선진국에서 불붙은 장기 국채금리 상승이 개발도상국과 저소득국의 부채 개선 노력을 되돌릴 수 있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가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정부의 막대한 부채에 이란 전쟁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 조달까지 겹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자본을 빌리는 비용 자체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개도국이 재정개혁을 통해 신뢰를 회복하고 위험 프리미엄을 낮추더라도 세계 채권시장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면 실제 이자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3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이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중 로이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선진국의 높은 부채와 끈질긴 인플레이션이 결합하면 부채 상환 비용이 모두에게 올라갈 수 있다”며 “저소득국뿐 아니라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도 영향을 받게 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특히 최근 글로벌 채권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선진국의 높은 전체 부채 수준, 여전히 폐쇄된 호르무즈 해협에서 비롯된 인플레이션 압력, AI 관련 채권 발행에 따른 자본 확보 경쟁을 꼽았다.
최근 미국 국채시장은 강한 매도 압력을 받으면서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약 20년 만의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 개도국이 낮춘 위험 프리미엄, 선진국 금리에 다시 흔들려
IMF는 2022년 당시 저소득국의 약 60%가 이미 부채 곤경에 빠졌거나 부채 곤경에 처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이후 일부 국가들은 재정개혁을 추진했고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관, 공적 채권국의 지원을 받아 부채 취약성을 낮추는 데 진전을 이뤘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이 같은 개선이 이제 다시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신흥국들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국채 위험 프리미엄을 낮추기 위해 매우 힘든 노력을 해왔다며 선진국발 글로벌 금리 상승으로 부채 상환 비용이 높아지면 그 성과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도국의 국채금리는 일반적으로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국채금리에 해당 국가의 신용위험을 반영한 가산금리를 더해 결정된다.
따라서 재정건전성 개선으로 가산금리를 낮추더라도 기준이 되는 미국 국채금리가 크게 오르면 최종 조달비용은 다시 높아질 수 있다.
시장 불안으로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을 피하면 개도국에 요구하는 가산금리까지 함께 오를 수 있어 충격은 더 커진다.
이는 선진국의 재정·인플레이션 문제가 금융시장을 통해 개도국으로 전파되는 구조다.
◇ 호르무즈 폐쇄·AI 투자까지 금리 상승 부채질
이번 IMF 경고는 최근 글로벌 국채시장의 매도세가 단순한 통화정책 우려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과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가 다시 올라 물가 압력을 높이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쉽게 낮아지지 않을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이 높은 기준금리를 오래 유지하거나 추가 긴축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선진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발행 증가가 채권 공급을 늘리고 있다.
AI 투자 붐도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대형 기술기업들이 데이터센터, 반도체, 전력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시장으로 몰리면서 정부와 기업 사이에 투자자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채권 공급은 급증하는데 이를 사줄 자본이 한정돼 있으면 발행자는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결국 AI 투자 열풍이 기업 실적과 주식시장에는 성장동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글로벌 채권시장에서는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영향은 자본시장의 중심에 있는 미국 기업이나 정부보다 신용도가 낮은 개도국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 '선진국의 빚'이 개도국 부채위기로 번질 가능성
이 같은 흐름은 세계 부채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과거 개도국 부채위기는 과도한 차입, 외환 부족, 재정적자 등 해당 국가 내부의 경제정책 실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개도국이 재정개혁에 성공해도 미국, 유럽, 일본 등 거대 자본시장의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조달 비용이 함께 올라가는 구조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달러 표시 부채 비중이 높은 국가에는 금리 상승과 함께 달러 강세까지 나타날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선진국의 재정 문제와 인플레이션이 일종의 '고금리 충격'으로 개도국에 수출되는 셈이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다만 현재 채권시장이 무질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며 시장 기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부채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는 기대를 나타냈다.
◇ 세네갈 22억달러 지원…새 부채구조조정 첫 시험대
IMF가 주목하는 다음 시험대는 세네갈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IMF는 G20 회의 기간 세네갈과 3년간 22억달러(약 2조9975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실무진 수준의 합의에 도달했다.
다만 지원에는 세네갈이 G20의 '공통 프레임워크'를 통한 부채 처리를 신청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공통 프레임워크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11월 출범했다.
부채위기에 빠진 국가를 지원할 때 기존 선진국 중심의 공적 채권단뿐 아니라 중국 등 새로운 주요 채권국, 민간 채권자까지 협상 테이블에 함께 참여시켜 부채를 구조조정하자는 제도다.
취지는 명확했지만 실제 구조조정 속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초기 대상국인 차드와 잠비아의 구조조정에는 수년이 걸렸다. 민간 채권자,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관, 대규모 대출을 제공한 중국 사이에서 손실을 어느 정도씩 부담해야 하는지를 놓고 이견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G20은 지난 5월 구조조정에 필요한 절차를 보다 명확하게 하고 IMF 금융지원 프로그램과 연계해 처리 속도를 높이는 개선안을 마련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새 방식이 세네갈에서 빠르고 원활하게 작동할 경우 다른 부채 취약국들도 공통 프레임워크를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세네갈을 "다음 사례"라고 표현하면서 IMF가 신속한 구조조정 완료를 끈질기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 부채위기 방어전, 개도국 개혁만으로 어려워져
이번 경고의 핵심은 개도국의 부채 문제를 더 이상 개별 국가의 긴축과 재정개혁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데 있다.
개도국이 재정적자를 줄이고 시장 신뢰도를 높이더라도 세계 최대 채권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국채 공급이 빠르게 늘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국제적인 자본조달 비용 자체가 높아진다.
AI 투자 확대까지 더해지면서 세계 금융시장에서 정부와 기업, 선진국과 개도국이 동시에 제한된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 가장 높은 금리를 지불해야 하는 쪽은 신용도가 낮고 외부 충격에 취약한 개도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글로벌 국채금리 급등이 선진국 주택담보대출이나 주식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넘어 다시 개도국 부채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IMF의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동시에 세네갈의 구조조정은 국제사회가 새로운 부채위기 확산을 막을 제도를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가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세계 채권시장의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저소득국과 신흥국이 지난 수년간 어렵게 쌓아온 부채 개선 성과를 지키기 위한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