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물 5.2%·달러 약세·주가 하락 동시 발생
‘말 줄이기’ 소통 실험에 물가 대응 의구심 확대
‘말 줄이기’ 소통 실험에 물가 대응 의구심 확대
이미지 확대보기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달러와 주가가 함께 하락하면서 연준의 정책 신뢰도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이하 현지시각) 연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열린 워시 의장의 기자회견이 투자자들에게 향후 금리 인상 의지를 확신시키지 못했다고 30일 보도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시장에 향후 정책 방향을 미리 알리는 선제 안내를 줄이면 경제와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2%까지 뛰었고 달러화는 약세를 나타냈다. 주가도 하락했다.
장기금리 상승, 달러 약세, 주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난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보다 장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졌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시장이 반영한 향후 물가상승률 전망도 높아졌다.
마크 카바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는 “전형적인 중앙은행 신뢰도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 “시장금리가 연준 대신 긴축했다”
WSJ에 따르면 워시 의장은 지난 6월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명목·실질 국채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금리 상승이 연준의 발언보다 경제 상황에 대한 시장의 자체 판단에서 비롯됐다며 선제 안내를 줄인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시장에서 이미 상승한 차입 비용이 금리 인상의 일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장기금리 상승을 연준의 정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유가 상승과 이란 전쟁 재격화로 물가 전망이 악화한 상황에서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자 장기 인플레이션 위험을 반영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장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두 차례에 가까운 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자회견 뒤에는 워시 의장이 필요한 금리 인상을 실제로 단행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 물가 기준·금리 역할 답변에 의구심
경제학자들은 워시 의장의 세 가지 답변이 투자자를 불안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물가지표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라고 확인하면서도 자신은 더 폭넓은 기준으로 인플레이션을 판단한다고 밝혔다.
연준이 매년 1월 다시 발표하는 통화정책 전략문도 바뀔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기존의 물가 목표와 판단 체계를 수정할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워시 의장은 높은 물가가 내려가지 않을 때 금리 인상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금리가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핵심 수단인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시장금리 상승이 연준을 대신해 일부 긴축 효과를 냈다는 설명도 논란을 키웠다.
연준이 정책금리를 올리지 않은 채 장기금리 상승에 물가 억제 역할을 맡기려 한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 매파 3명 인상 주장…현대 연준서 이례적
연준은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다.
그러나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는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졌다.
같은 방향의 반대표가 3표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12명으로 구성된 FOMC에서 4명이나 5명이 같은 방향으로 반대하면 현대 연준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 된다.
워시 의장은 내부의 이견을 자신이 원했던 ‘좋은 가족 간 논쟁’으로 표현했다. 다양한 견해가 활발하게 오가는 것이 정책 결정 과정의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매파 위원 3명이 연준의 긴축 역할을 장기 채권시장에 더 이상 맡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했다.
연준의 다음 FOMC 회의는 9월 15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 월가, 금리 인상 시점 앞당겨
마이클 페롤리 제이피모건체이스 미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의 반응이 워시 의장의 의사와 관계없이 연내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위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다음 금리 인상 예상 시점을 2027년 하반기에서 올해 12월로 크게 앞당겼다. 여름철 물가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 9월 인상도 가능하다고 봤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준이 9월을 시작으로 올해 세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카바나 책임자는 장기금리를 낮추려면 연준이 당장 단기 정책금리를 올려 물가 억제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글로벌 정책·중앙은행 전략 책임자는 워시 의장이 9월 인상을 가까스로 피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다만 금리 결정이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란 전쟁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여름철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둔화하지 않으면 워시 의장이 강경한 발언을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채권시장의 압력과 최대 6명에 이를 수 있는 반대표에 직면하면서 정책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 ‘조용한 연준’이 신호 더 흐릴 수도
워시 의장은 연준 인사들이 경제 전망과 금리 경로를 계속 설명하면 금융시장이 보내는 신호가 흐려진다고 주장했다.
연준이 말을 줄여야 시장이 경제 상황을 직접 평가한 결과를 여과 없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실제로 완전히 침묵한 것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를 앞둔 몇 주 동안 투표권을 가진 FOMC 위원의 절반이 공개 발언을 통해 금리 인상 조건을 설명했다. 이 가운데 2명은 실제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주장했다.
다이앤 스웡크 KPM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워시 의장이 발언을 줄였더라도 다른 연준 인사들이 상당한 정책 안내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국채금리 상승의 일부는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연준 위원들의 매파적 발언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 “연준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확신 필요”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로 10년간 통화정책 결정에 참여했던 로레타 메스터는 하루 동안의 시장 움직임을 지나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워시 의장이 투자자들의 평가보다 연내 금리 인상에 더 열려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만 현 기준금리가 물가를 2%로 낮추기에 적절한지 연준이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는지는 기자회견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자산가격에는 경제지표에 대한 시장의 판단뿐 아니라 연준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라는 예상도 함께 반영된다.
연준이 정책 판단의 틀을 설명하지 않으면 시장가격만으로 경제와 물가에 대한 유용한 신호를 분리해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워시 의장은 연준이 물가상승률을 2%로 낮추는지에 따라 평가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메스터는 결과만 제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연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확신을 시장에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시 의장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의 소통은 지속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