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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 SMR 470㎿ 3기 착공… 英 에너지 자립 승부수

英 정부 4조 9900억원 투입·8000개 일자리… '원자력 황금시대' 본격 개막
한국 i-SMR 2035년 목표, 영국보다 4년 뒤처져… 제조 파운드리 전략으로 반사이익 노려
롤스로이스 SMR 예상도.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롤스로이스 SMR 예상도. 사진=연합뉴스

폐로된 원자력발전소 부지가 차세대 에너지 허브로 탈바꿈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영국 웨일스 앵글시섬 윌파가 그 답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2015년 문을 닫은 이 낡은 원전 부지에서 롤스로이스의 소형모듈원자로(SMR) 3기가 공식 착공에 들어갔다. 300만 가구를 60년 넘게 먹여 살릴 전력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영국은 지금 '원자력 황금시대'의 첫 삽을 뜨고 있다.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의 14일(현지시각)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 산하 에너지 기관 그레이트 브리티시 에너지-뉴클리어(GBE-N)와 롤스로이스 SMR은 지난 13일(현지시각) 계약에 서명하고 영국 최초의 소형모듈원자로 설계·건설 작업을 공식 개시했다.
히타치가 손 뗀 자리, 롤스로이스가 치고 들어 오다

윌파는 '쓴맛'의 기억이 짙게 밴 부지다. 일본 히타치가 이곳에 대형 원전을 짓겠다는 계획을 2019년 돌연 철수하면서 21억 파운드(약 4조원)를 손실 처리했고 이후 수년간 이 땅은 표류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포기 대신 재도전을 택했다.

GBE-N은 윌파와 잉글랜드 올드버리 부지를 히타치로부터 1억 6000만 파운드(약 3190억원)에 사들여 부지를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오는 2026년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되면 이르면 2027년 첫 콘크리트 타설이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에 투입되는 롤스로이스 SMR은 470㎿급 가압경수로(PWR)다. 주목할 기술적 특징은 1차 냉각계통에서 독성 강한 붕산을 완전히 없앤 '붕소 무첨가 설계'로, 이를 통해 유해 폐기물 발생원을 원천 차단하고 물 소비량도 대폭 줄였다.
원자로 노심은 외부 개입 없이 72시간 이상 자동으로 안전 상태를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전체 기기의 90%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시험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 공법 덕분에 건설 비용과 일정의 불확실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기존 대형 원전이 수십 년에 걸친 비용 초과와 공기 지연으로 전 세계에서 홍역을 치른 것과 달리, 소형모듈원자로의 설득력은 바로 이 '공장 생산·현장 조립' 모델에서 나온다.

4조 9900억원 투자, 8000개 일자리… 에너지 자립의 승부수


영국 정부는 지출 검토 과정에서 이 사업에 25억 파운드(약 4조 9900억원) 이상을 쏟아붓기로 확정했다. 레이철 리브스 재무장관은 국가자산기금(NWF)에서 5억 9900만 파운드(약 1조 1960억원)를 추가로 지원해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국내 기술 개발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롤스로이스 SMR과 협력업체들은 윌파 현지에 3000개, 전국 공급망에 5000개 등 총 8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추산된다. 핵산업협회(NIA) CEO 톰 그레이트렉스는 "청정에너지와 산업 성장, 웨일스 지역 고용을 위한 역사적인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다섯 배 이상 늘어 26.2테라와트시(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인프라에 필요한 24시간 연속 안정 전력은 간헐성이 본질인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채울 수 없다는 인식이 업계 안팎으로 퍼지고 있다. 원자력이 다시 소환되는 배경이다.

윌파 부지는 최초 3기 외에 최대 8기까지 추가 배치가 가능한 것으로 GBE-N은 보고 있다. 롤스로이스 SMR CEO 크리스 콜러턴은 "이번 계약은 윌파에 첫 3기를 납품하는 길을 열었으며, 영국 기술로 정부의 원자력 황금시대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라고 말했다.

영국 2031년 가동, 한국 2035년… 벌어지는 격차


롤스로이스의 이번 행보는 글로벌 소형모듈원자로 시장의 판도를 다시 그리는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 용량을 24기가와트(GW)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국가에너지시스템운영사(NESO)는 소형모듈원자로가 2050년 영국 전체 원자력 설비 용량의 최대 59%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 전선도 빠르게 열리고 있다. 체코 국영 에너지기업 CEZ그룹은 체코 내 최대 3GW 규모 소형모듈원자로 배치를 위한 사전 작업 계약을 이미 체결했고, 스웨덴 국영 전력회사 바텐팔(Vattenfall)도 롤스로이스 SMR을 최종 후보 2개사 중 하나로 선정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2035년 상업 운전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며, 노르웨이·스웨덴 등과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수출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2030년대 초 본격 상용화를 예고한 영국 등 주요국과 비교할 때 시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형모듈원자로 수출 시장은 먼저 실적을 쌓은 쪽이 레퍼런스를 독점하는 구조인 만큼, 이 4년의 간격이 단순한 일정 차이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원자력 업계 안팎에서 나온다.

두산에너빌리티, '제조 파운드리' 전략으로 반사이익 노려


그러나 한국기업들에 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 경쟁에서 다소 밀리더라도 제조 역량으로 반사이익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가 이미 갖춰지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뉴스케일파워,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등 주요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사들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 원자로 압력용기·증기발생기 등 핵심 주기기 제작을 담당하는 글로벌 파운드리 역할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026년 3월부터 2031년 6월까지 총 8068억원을 투입해 경남 창원 공장에 소형모듈원자로 전용 공장을 구축하며, 완공 이후 연간 20기 이상 생산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누가 설계하든 우리가 만든다'는 이 전략은 롤스로이스를 포함한 글로벌 소형모듈원자로 발주 전체를 수혜 영역으로 흡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오는 2026년 2월 국회를 통과한 '소형모듈원자로 개발 및 진흥에 관한 특별법'은 민간 기업의 투자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소형모듈원자로 산업 생태계 구축의 법적 토대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윌파의 첫 삽이 단순한 영국의 국내 사업을 넘어 세계 소형모듈원자로 시장의 표준 경쟁을 가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제조 파운드리 전략의 조기 실행과 인허가 속도전을 동시에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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