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1조2000억 원 투입 'AI 반도체 허브' 3곳 신설…마이크론, 뉴욕 1400에이커 부지 최종 확보
설계·소재·장비·생산 '완결형 생태계' 자국화…글로벌 공급망 재편 '탈한국' 국면 진입
설계·소재·장비·생산 '완결형 생태계' 자국화…글로벌 공급망 재편 '탈한국' 국면 진입
이미지 확대보기일본, 1306억 엔 쏟아부어 'AI 반도체 3각 허브' 구축
일본 경제산업성은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위해 총 1306억 엔(약 1조1900억 원)을 투입해 거점 시설 3곳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니케이 아시아가 2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계획에는 국립산업기술종합연구소(AIST) 예산이 포함되며, 민간 기업과 대학이 핵심 설계 소프트웨어와 고가 개발 도구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시설로 운영된다.
3개 거점의 역할은 명확히 나뉜다. 2026년 가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도쿄 설계센터는 로봇과 기계를 제어하는 '피지컬 AI' 반도체 특화 설계 인프라를 갖춘다. 홋카이도 치토세에는 2029 회계연도 출범을 목표로 장비·소재 허브가 들어서며,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해 차세대 공정 기술을 연구한다. 세 번째 거점은 질화갈륨(GaN) 등 화합물 반도체 시험 센터로, AI 데이터센터·전기차·6G 통신 장비에 쓰이는 저전력 고속 소자 개발에 집중한다.
이 3각 구조의 핵심은 단순 생산 시설 유치가 아니라는 데 있다. TSMC의 구마모토 공장(생산), 라피더스의 첨단 공정 개발(기술), 그리고 이번에 신설하는 설계·소재·장비 허브(생태계)가 맞물리면 일본은 반도체 밸류체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자국 안에서 소화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과거 '독자 노선'으로 패권을 잃었던 일본이 이번에는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협력하면서 동시에 자국 생태계를 완성하는 '열린 자국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마이크론, 뉴욕 '메모리 왕국' 부지 퍼즐 완성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시러큐스닷컴은 25일 마이크론이 지난 19일 뉴욕주 클레이 지역 공장 부지와 하수처리장을 잇는 약 600m 길이의 산업 폐수관 통행권을 부동산 개발업체 SSO홀딩스로부터 15만 달러(약 2억1400만 원)에 매입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온다가 카운티(Onondaga County)가 25년간 추진해 온 1400에이커(약 5.7㎢) 규모의 부지 정리 작업이 사실상 완료됐다. 마이크론은 부지 확보와 보상 비용으로만 총 1100만 달러(약 157억 원) 이상을 집행했다. 부지 내 마지막 거주자였던 91세 주민을 설득하는 데는 이주비와 토지 매입비를 합쳐 295만 달러(약 42억 원)를 지불했다.
마이크론은 이 부지에 최대 4개의 반도체 공장을 순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이다. 미국 반도체지원법(칩스법)의 정부 보조금을 기반으로 하는 이 프로젝트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반도체 설비 투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생산이 본격화될 경우 마이크론의 자국 내 메모리 생산 비중은 현재와 비교해 크게 높아지며, 이는 곧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가진 지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술 진보 아닌 점유율 전쟁"…국가 대 기업 구도 현실화
업계가 이 두 사안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는 기술 발전 그 자체보다 '시장 지형의 변화' 때문이다. 일본이 AI 설계 역량을 집중 육성해 라피더스에 물량을 집중시키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될 경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이 확보해야 할 잠재 고객이 일본 내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마이크론이 자국 내 생산 비중을 끌어올리면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추격하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과 일본 모두 보조금, R&D 인프라, 인력 양성을 '묶음'으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가가 자금과 인프라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구조에서 기업 혼자 맞대응하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며 "한국도 기업 지원을 넘어 국가 차원의 전략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산업연구원(KIET) 등 국책 연구기관들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될수록 한국의 반도체 수출 구조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 입법 논의와 R&D 세액공제 확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 지원 방안이 국회와 정부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미국과 일본이 국가 주도로 '반도체 요새'를 완성해 가는 속도는 한국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의지와 속도다. 한국이 '초격차'를 외치는 동안, 경쟁국들은 공급망의 지형 자체를 다시 그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