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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충격' 마주한 메르츠, 독일 제조업 100만 고용 붕괴 위기 속 '리셋' 시험대

메르츠 총리 취임 후 첫 방중, 30여 명 대규모 경제 사절단 동행하며 '경제·안보' 균형 모색
기계공학협회(VDMA) "중국발 공세에 일자리 100만 선 붕괴 임박... 우리 상처에 손가락 넣었다"
자동차 업계 '현지화' 승부수와 EU의 '기술 안보' 장벽 강화 사이에서 해법 찾기 고심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집권 후 처음으로 베이징과 항저우를 공식 방문하였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집권 후 처음으로 베이징과 항저우를 공식 방문하였다. 사진=연합뉴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집권 후 처음으로 베이징과 항저우를 공식 방문하며 독일 제조업의 존망이 걸린 '중국 충격(China Shock)' 대응과 대미·대중 관계의 정교한 균형 잡기에 나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3일(현지시각) 보도를 통해 메르츠 총리가 유럽연합(EU)의 대중 무역 정책 완화를 요구하는 산업계와 안보적 강경 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독일 지도자로서 첫 번째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고 전했다.

제조업 덮친 ‘중국발 한파’… 기계·자동차 고용 및 수출 지표 일제히 하락


독일 경제의 허리인 기계와 자동차 산업은 현재 전례 없는 하방 압력에 직면해 있다.
독일 기계공학산업협회(VDMA)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 탓에 올해 독일 기계산업의 전체 고용 인원은 사상 처음으로 상징적 지지선인 100만 명 선을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수출 시장의 타격은 더욱 구체적이다. 로듐 그룹의 조사 결과 독일의 대중 수출액은 2022년 정점을 기록한 이후 23% 급감했으며, 특히 독일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 수출량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66%나 폭락하며 주력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태다.

이와 대조적으로 독일 기업들의 대중 직접투자는 지난해 기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생산 기지의 현지화가 가속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독일 기계공학산업협회(VDMA)의 올리버 리히트베르크 대외무역부서장은 "중국은 우리 산업의 상처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약점을 정확히 정조준했다"며, 이러한 수치들은 독일 제조업이 처한 절박한 생존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차이나 리스크’ 속 대규모 사절단 동행… ‘현지화’와 ‘위험 완화’ 사이의 괴리


메르츠 총리의 이번 방중에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 이후 최대 규모인 30여 명의 비즈니스 대표단이 동행했다. 하지만 과거처럼 중국을 단순히 무한한 성장이 가능한 ‘기회의 땅’으로 보던 낙관론은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독일 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의 대중 투자가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은 이른바 ‘현지화의 역설’로 풀이된다. 폭스바겐을 포함한 주요 대기업들이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를 피하기 위해 ‘중국을 위한 중국 내 제조(In China, for China)’ 전략을 강화하며 자본과 생산 설비를 중국 현지에 묶어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행보는 정부의 대외 전략과 충돌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베를린 소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의 미코 후오타리 전무이사는 이번 방문이 정부가 추진해온 위험 완화(디리스킹)가 아닌, 오히려 위험을 다시 키우는 ‘리리스킹(Re-risking)’의 신호를 시장에 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적 밀착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경제 관계와 안보 위협을 칼로 자르듯 분리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기술 안보’ 장벽과 ‘공급망 실사’로 맞서는 EU의 대응 전략


지정학적 지형 또한 메르츠 총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베를린 당국은 중국이 러시아에 에너지 구매와 이중 용도 물자를 제공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 14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뚜렷한 확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응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단순히 저가 전기차에 관세를 매기는 수준을 넘어 더욱 촘촘한 비관세 장벽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중국산 커넥티드 차량이 유럽 내 도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을 제한하기 위해 사이버 보안 심사를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또한 인권 및 환경 이슈가 연루된 중국산 부품의 유입을 원천 봉쇄하는 공급망 실사법(CSDDD)을 본격 가동하기로 했다.

아울러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의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는 등 기술 독립성 확보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한국 공급망에 미치는 파급력: '수출 절벽'과 '가치 동맹'의 갈림길


독일의 이러한 행보는 한국의 핵심 산업인 배터리 및 자동차 부품 공급망에도 즉각적인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내 자급률을 높이면서 그간 독일차에 부품을 공급해온 국내 업체들에 '대중 수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EU의 공급망 실사법과 탄소발자국 규제 강화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 원자재 공급처의 '탈중국 다변화'라는 막대한 비용 부담을 안기고 있다.

다만, 독일이 중국의 데이터 안보를 경계하며 한국을 '가치 동맹' 기반의 기술 파트너로 선호하는 경향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독일이 추진하는 '리리스킹'의 방향이 한국 부품 산업의 유럽 현지 공장 이전 속도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독일 제조업의 '고차방정식'과 한국에 주는 함의


메르츠 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독일 기업의 현지 투자 보호와 유럽 본토의 산업 공동화 방지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그는 지난주 보수당 대회에서 "오늘날의 중국은 미국에 반대하며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한다"고 날을 세우면서도, 산업계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처지다.

독일 제조업이 겪고 있는 이 고통스러운 '중국 충격'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탈산업화의 위기를 막기 위해 중국과의 접점을 유지하면서도 안보와 가치 동맹을 지켜내야 하는 독일의 행보는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핵심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서진욱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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