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함 건조 중단은 비용 문제가 아니다…미 해군이 내린 ‘해전 방식’의 결론
이미지 확대보기새해 들어 미 해군이 전함을 중심 전력에서 완전히 배제한 결정은 무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 수행 방식의 전환을 반영한다. 대형 전함을 다시 건조하지 않는다는 방침은 비용이나 기술 취향이 아니라, 현대 해전에서 어떤 전력이 실제로 생존하며 효과를 발휘하는가에 대한 교리적 판단에 가깝다. 미 해군의 전력 구조는 이미 항공 전력, 미사일 전력, 잠수함 전력을 중심으로 제도와 운용 개념 속에 고착됐다.
이 같은 변화는 특정 무기의 퇴장이 아니라 해전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미 해군의 관점에서 해전의 중심이 포격과 장갑의 대결에서 벗어나, 탐지·타격·생존성·지속 운용 능력의 경쟁으로 이동한 것이다.
전함이 사라진 이유는 비용이 아니라 생존성
전함은 한때 해군력의 상징이었다. 두꺼운 장갑과 대구경 함포, 해안 포격 능력은 국가 간 전쟁에서 압도적 위력을 의미했다. 그러나 정밀 유도 미사일과 장거리 타격 체계, 위성 기반 감시와 네트워크화된 전장 환경에서 대형 전함은 고가의 고정 표적으로 노출되기 쉽다.
미 해군 내부에서 전함 재건조 논의가 반복적으로 제기됐음에도 최종 판단이 매번 부정적으로 귀결된 이유는 명확하다. 전함은 강력한 화력을 제공하지만, 이를 보호하기 위한 호위 전력과 운용 비용, 전장 생존성을 함께 고려하면 효율적인 선택이 아니다. 과거 전함이 수행하던 해안 포격 임무 역시 항공기와 미사일 전력으로 대체 가능해졌다.
항공 전력, 해군의 중심 플랫폼으로 고착
항공모함과 함재기는 미 해군 전력 전환의 핵심 축이다. 항공 전력은 단순한 타격 수단을 넘어 정보·감시·정찰, 지휘 통제, 억제 신호 발신까지 포괄한다. 항공모함 전단은 특정 해역에 전개되는 것만으로도 전략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동형 군사 기반으로 기능한다.
항공 전력의 강점은 유연성이다. 전함이 고정된 화력 플랫폼이었다면, 항공 전력은 상황 변화에 따라 목표와 타격 방식을 신속히 전환할 수 있다. 원거리 정밀 타격과 다영역 연계 작전은 항공 전력을 통해 일상화됐다.
미사일과 잠수함, 보이지 않는 전력의 중심
잠수함 전력은 이 구조에서 생존성과 억제력의 핵심을 담당한다. 은밀성과 장기 작전 능력, 전략·전술 타격 수단의 결합은 분쟁 초기부터 결정적 역할을 가능하게 한다. 전함이 담당하던 일부 역할은 이미 잠수함과 미사일 체계로 이전됐다.
전함 부활론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
전함 부활론은 화력 집중과 해안 지원 능력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현대 전장에서 중요한 기준은 화력의 총량이 아니라 전력의 지속성과 생존성이다. 미사일·공중 공격·잠수함 위협이 결합된 환경에서 전함의 방어 비용은 급격히 증가한다.
또한 전함 재건조는 항공·미사일·잠수함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작전 개념과의 부조화를 낳는다. 미 해군은 전함을 추가하기보다, 기존 전력을 더 정교하게 연결·통합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전력 전환이 의미하는 전략적 변화
전함 시대의 종료는 해상을 독립된 전장으로 보던 관점의 종식을 뜻한다. 현대 해전은 공중·수중·우주·사이버 영역과 결합된 다영역 작전으로 전개된다. 항공기와 미사일, 잠수함은 이러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지만, 전함은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미 해군의 전력 전환은 대중국 전략, 인도태평양 해양 통제, 동맹과의 연합 작전 구상과 맞물려 있다. 빠른 전개와 분산 배치, 지속 운용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전함의 중심 복귀 가능성은 낮다.
전함의 퇴장은 종결이 아니라 정리
전함 시대의 공식 종료는 과거 해군력을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다. 전함은 특정 시대의 기술과 전략 환경에 최적화된 전력이었고, 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조건이 바뀐 지금, 미 해군은 다른 선택을 하고 있다.
항공 전력과 미사일, 잠수함 중심의 해군은 이미 현실이다. 전함을 다시 건조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미래 해전의 모습에 대한 미 해군의 결론을 가장 분명히 보여주는 신호다. 해군 전력의 중심은 더 빠르고, 더 멀리, 더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ijion@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