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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대만, 반도체 원료 나프타 러시아산 의존 지속…에너지 안보 우려 재부상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의 최근 보고서. 사진=CREA이미지 확대보기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의 최근 보고서. 사진=CREA

대만이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를 러시아에서 여전히 상당량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당국은 러시아산 나프타 의존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기존 계약에 따라 수입은 최근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체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해 얻는 석유화학 중간 원료로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각종 고순도 화학물질의 출발점이 되는 물질이다. 반도체를 직접 만드는 소재는 아니지만 공정 전반에 쓰이는 화학 산업의 기초 원료인 만큼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적이다. 자원 빈국인 대만은 이같은 원료를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핀란드 헬싱키에 본부를 둔 에너지·대기오염 연구기관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는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대만이 러시아산 나프타의 세계 최대 수입국으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 값싸고 규제 느슨했던 러시아산


대만이 러시아산 나프타에 의존해온 배경에는 가격과 공급 여건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는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원유와 가스 수출이 제한되자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정제 중간제품을 아시아 시장에 대량 공급해왔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산 나프타는 중동이나 미국산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고 장기 계약 조건도 유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사를 둔 원자재 데이터 분석업체 클레르의 나프타 수석 연구원 키어런 타일러는 도이체벨레와 인터뷰에서 “대만은 러시아산 나프타 신규 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체결된 계약을 이행하고 있어 수입 속도가 아직 둔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2026년 초 기존 계약이 만료되면 수입량이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클레르의 집계에 따르면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 급증의 상당 부분은 대만 석유화학 기업 포모사석유화학이 담당했다. 포모사석유화학은 민간 기업으로서 국제 제재를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거래해왔으며 글로벌 시장 상황에 따른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 “반도체 산업 떠받치는 핵심 원료”


CREA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루크 위컨든은 “나프타는 반도체 산업을 지탱하는 화학 공급망의 출발점”이라며 “이 원료가 흔들리면 반도체 생산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CREA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대만의 러시아산 나프타 수입량은 2022년 대비 6배로 늘었다. 이같은 수치는 대만 내부에서 러시아 에너지 의존이 지정학적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논쟁을 촉발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의 밀착 관계를 감안할 때, 에너지·원료가 대만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 정부 “신규 구매 중단”…민간 거래는 한계


대만 경제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중화경제연구원의 정루이허 선임연구원은 “자유무역 체제에서 정부가 민간 기업의 상업적 거래를 직접 제한하기는 어렵다”며 “러시아산 나프타 구매도 이같은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쿵밍신 대만 경제부 장관은 이후 현지 언론에 포모사석유화학의 러시아산 나프타 계약이 곧 만료될 예정이며 회사 측이 앞으로는 러시아산 나프타를 구매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 석탄 의존은 크게 축소


한편 CREA 보고서는 대만이 러시아산 석탄 의존에서는 비교적 빠른 전환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2025년 상반기 러시아산 석탄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67% 줄었다. 국영 전력회사와 시멘트 기업들이 러시아산 석탄 구매를 대폭 줄인 결과다.

현재 대만 에너지의 약 80%는 수입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체 에너지의 약 97%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도이체벨레는 “나프타처럼 정제된 석유 제품은 제재와 원산지 추적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여전히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유럽연합(EU) 역시 러시아산 정제 석유 제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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