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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칩 통제' vs 中 '전력 물량공세'...AI 전쟁 2라운드는 '에너지 게임’

"엔비디아보다 전력 4배 써도 괜찮다"...中 2030년 잉여 전력만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 3배
MS·오픈AI는 '전력 부족(Electron Shortage)' 비명...트럼프, 수출 규제 완화로 맞불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라는 '두뇌'를 틀어쥐고 중국을 압박하는 사이, 중국은 인공지능(AI) 구동의 혈액인 '전력'을 무기로 거센 반격에 나섰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라는 '두뇌'를 틀어쥐고 중국을 압박하는 사이, 중국은 인공지능(AI) 구동의 혈액인 '전력'을 무기로 거센 반격에 나섰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이 최첨단 반도체라는 '두뇌'를 틀어쥐고 중국을 압박하는 사이, 중국은 인공지능(AI) 구동의 혈액인 '전력'을 무기로 거센 반격에 나섰다. 압도적인 전력 생산 능력과 저렴한 전기료를 앞세워 미국의 기술 봉쇄를 무력화하겠다는 이른바 '비대칭 전력(Asymmetric Warfare)' 전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현지시각) 중국이 네이멍구(내몽골) 초원 지대에 구축한 거대한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클러스터를 집중 조명하며, 전기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새로운 승부처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칩은 부족해도 전기는 넘친다"... 1kWh40원대 '파격'


중국 북부 네이멍구 자치구 울란차브(Ulanqab). '초원의 구름 계곡'이라 불리는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풍력 발전기와 송전탑으로 뒤덮여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는 알리바바, 텐센트, 화웨이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로 흘러 들어간다.

류례훙 중국 국가데이터국장은 지난 3"전기는 중국의 확실한 경쟁 우위 요소"라고 단언했다. 실제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2010년부터 2024년 사이 중국의 전력 생산량 증가 폭은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의 증가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컸다. 지난해 중국의 전력 생산량은 미국의 두 배를 웃돌았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가격'이다. 중국 국가에너지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데이터센터들은 장기 계약을 통해 킬로와트시(kWh)당 불과 3센트(44)에 전력을 공급받는다. 반면 미국 버지니아주 등 주요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 기업들은 7~9센트(103~132)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 기업은 미국 경쟁사 대비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AI 모델을 운영할 수 있다.

'전자 자원 격차(Electron Gap)'... 美 빅테크의 공포


반면 미국 기술 업계는 '전기 부족'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GPT 개발사 오픈AI는 이를 '전자 자원 격차(Electron Gap)'라고 명명했다.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엄청난 양의 칩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구동할 전력이 부족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모건스탠리는 향후 3년 내 미국 데이터센터 업계가 약 44기가와트(GW) 규모의 전력 부족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뉴욕주 전체의 여름철 발전량과 맞먹는 규모로, 미국의 AI 리더십 유지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태양에너지산업협회(SEIA)는 지난달 에너지부에 보낸 서한에서 "까다로운 인허가 정책과 송전망 부족이 미국의 AI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내 주요 데이터센터 예정지 18개 주에서 신규 발전 프로젝트 절반 이상이 허가 지연이나 거부 위험에 노출된 실정이다.

저성능 칩, '전기 물량 공세'로 메운다


중국의 풍부한 전력은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우회하는 핵심 열쇠다. 중국은 엔비디아의 최신 칩(A100, H100 ) 수입이 막히자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시리즈 등 국산 칩으로 선회했다. 문제는 전력 효율이다.

시장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 분석에 따르면, 화웨이 칩 384개를 묶은 '클라우드매트릭스 384' 시스템은 엔비디아의 플래그십 시스템(블랙웰 칩 72개 탑재)보다 연산 성능은 높일 수 있지만, 전력 소모량은 4배나 많다. 통상적인 환경이라면 '전기 먹는 하마'라며 퇴출당했겠지만, 중국의 저렴한 전기료 덕분에 상용화가 가능하다. 전력을 쏟아부어 칩 성능의 열세를 만회하는 셈이다.

번스타인의 린칭위안 반도체 애널리스트는 "단기적으로 중국의 칩 생산 능력 부족이 약점이긴 하지만, 미국의 전력 부족 사태가 오히려 더 심각한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중국의 압도적인 발전 능력이 기술 격차를 좁히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수서산(東數西算)'... 대륙을 가로지르는 데이터 고속도로


중국 정부는 2021년부터 '동수서산'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전력 자원이 풍부한 서부 지역(내몽골 등)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인구가 많은 동부의 데이터 수요를 처리한다는 국가적 구상이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이 2030년까지 전력망 확충에만 5600억 달러(824조 원)를 투입할 것으로 추산했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 중국의 예비 전력 용량이 400GW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당시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의 3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국영 전력망 운영사인 스테이트 그리드(State Grid)의 부채는 최근 5년 새 40% 급증해 4500억 달러(662조 원)에 육박했다. 과잉 투자와 시장 거품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중국 지도부는 국가 주도의 인프라 투자가 AI 경쟁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고 밀어붙이고 있다.

트럼프의 '규제 완화' 카드... 장기전 돌입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현지시간) 중국 기업에 대한 엔비디아 칩 판매 제한을 일부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의 최상위 모델은 아니지만, 중국산 칩보다는 성능이 우수한 'H200'의 중국 수출 길을 열어준 것이다. 중국이 자체 칩 생태계를 완성하기 전에 미국산 칩에 대한 의존도를 유지시키려는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워싱턴에서 외교적 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중국 내륙 깊숙한 곳에서는 이미 물리적인 인프라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정책 변화와 무관하게 현장의 AI 생태계는 빠르게 뿌리를 내리는 모습이다.

울란차브 현지 주민들은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면서 매년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때 인구 유출로 쇠락해가던 내몽골의 소도시는 이제 애플, 알리바바, 화웨이의 서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AI 전초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AI 패권 경쟁은 '반도체 성능'이라는 기술전에서 '에너지 수급'이라는 인프라 총력전으로 확전하는 양상이다. ·중 양국 모두 데이터센터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전력을 어떻게 감당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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