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본사까지 속이는 '슈퍼페이크' 범람…"가품이면 100% 환불"
'소유' 아닌 '경험' 중시하는 MZ세대, 희귀·단종 상품 찾아 리셀 시장으로
'소유' 아닌 '경험' 중시하는 MZ세대, 희귀·단종 상품 찾아 리셀 시장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명품 재판매 기업 베스티에르 컬렉티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패션 및 명품 재판매 시장은 신상품 시장보다 3배 빠른 연 1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약 2100억 달러(약 299조 원) 수준인 시장 규모가 2030년에는 최대 3600억 달러(약 5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의 몸집이 커지면서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온라인에는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가방이나 롤렉스 시계를 샀다가 가품으로 판명된 피해 사례가 넘쳐 난다. 일부 위조품은 전문가조차 식별하기 어려운 '슈퍼페이크' 수준에 이르렀다. 실제 브랜드의 공급망(가죽 업체, 부자재 공급처 등)을 이용해 만들어져 일부는 브랜드 공식 수선센터에서도 찾아내기 어려울 정도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번개장터의 최재화 대표는 "위조품 제조 기술이 갈수록 정교해져 명품 브랜드 본사조차 가품을 감별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위조품을 수리해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 재판매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이미지 분석, 가죽 분석 장비 등 '과학 감정'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AI 감별사까지 동원…'가품과의 전쟁' 나선 플랫폼들
과거 중고 거래 시장은 판매자가 알린 정보를 구매자가 믿고 사는 '매수자 위험 부담 원칙(caveat emptor)'이 지배했다. 그러나 '슈퍼페이크'가 넘쳐 나면서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거래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정교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데 막대한 자원을 투자하며 신뢰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온라인 장터 캐러셀은 올해 도심에 첫 명품 전문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판매자가 상품을 등록하기 전, 소속 감정사와 직접 만나 감정을 받고 등급을 매기는 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캐러셀의 트레저 탄 럭셔리 부문 이사는 CNBC와 한 인터뷰에서 "검수팀은 가방의 소재뿐 아니라 바느질, 각인 같은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철저히 검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우리 회사의 평판이 걸린 문제"라면서 "그런 확신으로 구매자에게 정품이 아니면 100% 환불을 보장한다"고 강조했다. 캐러셀은 이를 위해 약 500개 제품 스타일에 대한 자체 자료를 구축했으며, 진품 여부가 불확실하면 판매 목록에서 제외한다.
한국의 번개장터 역시 자체 정품 인증 시스템 개발에 공을 들였다. 전통적인 눈 검사에 더해 첨단 과학 장비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한 점이 특징이다. 최재화 대표는 "100만 건이 넘는 자료를 학습한 인공지능을 활용해 검증체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번개장터는 이 시스템으로 99.9%의 인증 정확도를 확보했으며, 인공지능이 최신 위조 기술을 꾸준히 학습해 판별 능력을 계속 높인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의 정품 인증 강화 노력은 사업 성장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번개장터의 거래액 1조5000억 원 가운데 해마다 명품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최 대표는 "2025년 상반기 명품 거래 건수와 총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늘었다"고 밝혔다. 캐러셀의 탄 이사 역시 명품 부문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며 10만 달러(약 1억4000만 원)짜리 고가 시계가 거래된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명품 감정은 단순히 가짜를 가려내는 일이 아니라 브랜드의 신뢰를 지키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가성비' 넘어 '희소성'…시장 주역으로 떠오른 MZ
특히 한정된 예산으로 명품을 경험하려는 젊은 세대가 시장의 핵심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재화 번개장터 대표는 "이제 MZ세대에게 명품은 '소유'보다 '경험'의 대상"이라면서 "사고 즐기고, 곧 다시 되파는 순환 소비가 유행"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올해 국내 중고 명품 시장 규모는 약 3조 원에 이를 전망이며, 2019년에 비해 3배 이상 커진 수치다. 전체 온라인 중고 거래 규모 43조 원 시장에서 명품은 패션, 정보기술(IT) 기기와 함께 가장 활발한 분야 가운데 하나로, 크림(KREAM)·트렌비 등 주요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시장의 주역도 다양해지고 있다. 과거 MZ세대에 집중됐던 소비층은 구매력 있는 35~44세 남성으로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투자를 목적으로 고가 시계나 한정판 제품을 사며 정품 인증을 중요하게 여긴다.
한편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세대는 즉시 사고 즉시 파는 순환 소비 문화를 이끌며 새로운 잠재 고객으로 떠오르고 있다.
재판매 시장의 성장은 개별 기업을 넘어 산업 전반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구찌(Gucci Vault)·버버리(ReBurberry) 등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들이 직접 인증 재판매 사업에 나서고 있으며, 롯데·현대 등 국내 백화점 역시 관련 프로그램을 도입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산업 구조가 기업과 브랜드,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경제 생태계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2025년 중고 명품 시장은 '가품 위험 관리', '인증 기술 고도화', '기업 신뢰도'라는 세 가지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캐러셀과 번개장터처럼 인공지능 기반의 정교한 인증 기술을 갖춘 기업이 새로운 산업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중고 시장은 단순 거래 중개를 넘어 명품 산업 생태계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까지 맡게 됐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