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무역투자 합의 체결을 거부하며 양국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은 일본이 지난달 체결한 5500억 달러(약 760조1000억 원) 규모의 투자 약속을 모델로 삼아 한국에도 3500억 달러(약 483조7000억 원) 수준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으나 한국은 외환시장 불안정성 등을 이유로 선을 긋는 모습이라며 FT는 이같이 전했다.
◇ 트럼프, “투자처 직접 지정” 요구
미국은 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조건을 내걸며 한국이 미국 내 특정 투자처에 자본을 투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월 협상 당시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투자처는 대통령인 내가 직접 선택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 대통령실은 “기업들이 미국에 가는 이유는 이익을 내기 위해서이지 돈을 퍼붓기 위해서가 아니다”라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협상은 진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 외환 리스크·통화스와프 쟁점
한국은 일본과 달리 외환보유액이 4300억 달러(약 594조3000억 원) 수준으로 일본의 3분의 1에 불과하고 원화 환율 변동성이 높아 동일한 조건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 보고에서 “미국과의 무역합의에 통화스와프를 포함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우려를 제기한다. 미국 정책 컨설팅업체 아시아그룹의 제니퍼 리 전무는 “한국이 일본식 합의를 수용하면 원화 시장에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세부계획 불투명…기업계도 혼란
◇ 이민단속 후폭풍도 부담
최근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합작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 수백명이 이민단속에 적발된 사건도 협상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웬디 커틀러 전 미국 통상협상가는 “한국 기업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추가 투자 요청에 냉담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미국 내 비자쿼터 확대 협상 등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협상 틀 자체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