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력 15~20% 감축 구조조정…한국은 '선택과 집중'
GS칼텍스 여수공장 중심 '하이-그레이딩' 전략…저수익 제품 고부가화
GS칼텍스 여수공장 중심 '하이-그레이딩' 전략…저수익 제품 고부가화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중 하나인 미국 셰브론이 전 세계 인력의 최대 20%를 감축하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가운데, 한국의 정유 및 석유화학 부문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확대하기로 해 그 배경이 주목된다. 이번 결정은 아시아 지역의 석유화학 산업이 부진을 겪는 상황에서 나온 역발상 투자로, 고강도 조직 개편을 통해 확보한 자원을 핵심 성장 자산에 집중하려는 셰브론의 글로벌 전략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3일(현지시각) 에너지스미디어에 따르면 셰브론은 최근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강화를 목표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기존 조직을 Upstream(자원 탐사·생산)과 Downstream, Midstream & Chemicals(정유·석유화학·유통) 두 부문으로 단순화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리셋 전략'의 일환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본사를 포함한 전 세계 사업장의 인력 15~20%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미국 퍼미언 분지에서만 약 800명을 감원하는 등 국내외에서 이미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글로벌 감원 칼바람 속 韓 '선택과 집중'
이러한 전사적인 긴축 기조와는 대조적으로,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는 확대를 결정했다. 셰브론은 GS칼텍스 지분 50%(셰브론 홀딩스 40%, 셰브론 글로벌 에너지 10%)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서, 한국을 아시아 지역 다운스트림(정유·석유화학·판매)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고전 중인 석유화학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데 투자를 집중할 방침이다.
셰브론의 행보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경영 효율화 전략의 일환이다. 셰브론의 브랜트 피시 인터내셔널 프로덕츠 부문 사장은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회사의 향후 투자 방향을 명확히 설명했다. 그는 "한국과 같이 석유화학과 중질유 고도화 설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며 "반면에 여기 싱가포르와 같은 다른 지역과 정유공장에서는 그런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실제로 사이클 대부분의 구간에서 투입 자본 대비 더 나은 수익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한국 시장에는 자원을 집중하는 반면,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은 대규모 설비 투자를 최소화하고 '기존 자산 효율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이다.
'수익 극대화' 목표…산업 재편 촉매될까
셰브론의 이번 결정은 '이익 극대화'라는 기업의 최우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포석이다. GS칼텍스가 운영하는 여수 정유·석유화학 단지는 하루 80만 배럴의 원유를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 시설 중 하나다. 셰브론은 이곳에 신규 자본 지출을 늘려 저수익 연료를 고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으로 전환하는 '하이-그레이딩' 전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위기를 맞아 상위 10개사가 공동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셰브론의 투자는 국내 산업 재편에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만, 대규모 인력 감축을 동반한 투자 확대라는 이중적 전략은 '사람보다 이익을 우선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급변하는 에너지 시장 환경 속에서 셰브론이 한국 시장을 발판으로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수익성 강화', '한국-아시아 생산 거점화'라는 중장기 전략 목표를 달성하고 과거의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지, 글로벌 에너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