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주요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가 최근 프랑스 국채보다 낮아지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정치 위기와 재정 불안이 겹치면서 프랑스 국채가 더 이상 ‘무위험 자산’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로레알·에어버스·악사 등 국채보다 낮은 금리
FT는 골드만삭스 자료를 인용해 최근 로레알, 에어버스, 악사 등 프랑스 대표 기업들의 회사채 금리가 같은 만기의 프랑스 국채보다 낮게 형성됐다고 전했다.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많은 10개 기업이 국채보다 낮은 금리로 거래된 것으로 통상 정부 채권이 기업보다 안전자산으로 여겨진다는 시장 원칙이 뒤집힌 사례다.
특히 명품업체 LVMH의 2033년 만기 채권은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랑스 국채보다 0.2~0.6%포인트 높은 금리로 거래됐으나 이번 주에는 오히려 0.07%포인트 낮게 거래됐다.
◇ 왜 이례적인가
통상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져 기업채보다 낮은 금리로 거래된다. 기업은 부도 위험이 있는 만큼 투자자에게 더 높은 수익을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채 금리가 기업채보다 높다는 것은 투자자들이 오히려 정부보다 일부 기업을 더 신뢰한다는 뜻으로 국가 신용도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프랑스 사례는 글로벌 대기업 로레알, 에어버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등이 프랑스 정부보다 안전하다고 평가받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국채가 더 이상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며 “신흥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선진국에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 정치 혼란·신용등급 강등 직격탄
프랑수아 바위루 총리가 지난주 사임하면서 불과 1년 사이 두 번째 총리 사퇴가 발생하자, 투자자들의 프랑스 국채 회피 현상이 심화됐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이 같은 정치적 분열과 재정 악화를 이유로 프랑스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스위스 민간은행 J 사프라 사라신의 카르스텐 유니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국채가 더 이상 무위험 자산이 아니며 신흥국 시장과 유사하게 기업채 금리가 국채보다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공급 과잉과 글로벌 신용 랠리
전문가들은 이번 현상이 단순히 디폴트 위험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피델리티인터내셔널의 펀드매니저 마이크 리델은 “정부는 여전히 대규모로 채권을 발행하는 반면, 기업들은 그렇지 않다”며 공급 과잉이 금리 역전을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글로벌 증시 강세와 함께 기업 신용시장이 크게 랠리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기업채 스프레드가 국채 대비 수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축소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리델은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으며, 위기나 경기침체가 다시 닥치면 기업 신용스프레드는 급격히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위험 기업과 헤지펀드의 표적
투자등급을 유지한 대형 기업과 달리 소매업·통신업 등 소비 침체에 취약한 중하위 등급 기업들의 차입 비용은 오히려 확대됐다. 대형 유통업체 카지노, 사모펀드 EQT가 소유한 콜리세·세르바 등이 대표적 사례다. FT는 이들이 최근 헤지펀드의 주요 매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