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아마존 농장서 300여 명 착취…'채무 노예' 방식 드러나
폭스바겐 "조사 동의 못 해, 항소할 것"…군사독재 시절 정부 비호 의혹
폭스바겐 "조사 동의 못 해, 항소할 것"…군사독재 시절 정부 비호 의혹

◇ 2019년 조사 착수, 2024년 제소…수십 년 만에 드러난 실태
브라질 노동검찰(MPT)은 2019년 현지 가톨릭 신부가 수십 년간 추적해온 자료를 확보한 뒤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추가 조사와 증인 신문을 거쳐 2024년 폭스바겐을 노동법원에 제소했고, 올해 1심 재판부가 배상 판결을 내렸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1974년부터 1986년까지 브라질 파라(Pará)주에 위치한 농장을 자회사를 통해 운영했다. 해당 농장은 목축과 벌목 작업에 사용됐으며, 약 300명의 노동자가 숲을 개간하고 목초지를 조성하는 작업에 동원됐다.
◇ 무장 감시와 부채노역…"말라리아에도 치료 전무"
당시 노동자들은 무장 경비원의 감시 아래 열악한 숙소에 거주하며 불충분한 식사로 버텨야 했다. 폭스바겐은 부채노역(servidumbre por deudas)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농장에 묶어두었고, 말라리아에 감염돼도 치료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법원은 밝혔다.
노동검찰은 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브라질 근현대사에서 가장 심각한 노동 착취 사례 중 하나"라며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과 기록이 모두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 판사 "현재진행형 과거"…사회 구조에 남은 상흔
오타비우 브루누 다 시우바 페레이라 판사는 판결문에서 "제출된 증거를 통해 해당 농장이 폭스바겐 소유였으며, 당시 근로 조건이 브라질 법상 '노예제 유사 근로'의 정의에 부합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노예제는 브라질 사회, 특히 노동 관계에 현재진행형 과거(pasado presente)로 남아 있다"며 "식민지 시절 노예제의 유산이 여전히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 있고, 이 기억을 되찾는 것이 차별 없는 판단을 내리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폭스바겐 "항소 준비 중…법규 준수 강조"
브라질 폭스바겐은 성명을 통해 "항소할 예정"이라며 법적 대응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는 "브라질에서 72년간 인간 존엄성을 중시하며 모든 노동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해왔다"며 "사회적 책임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브라질의 역사적 맥락
노예제는 브라질의 사회 구조와 경제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브라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노예를 들여온 국가였으며, 서반구에서 가장 늦은 1888년에야 노예제를 폐지했다. 이번 판결은 이 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대 사회의 차별과 구조적 불평등을 다시 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노동법원 1심 단계에서 내려진 결정으로, 폭스바겐의 항소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어서 최종 확정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브라질 노동법상 '노예와 유사한 근로(trabalho escravo)'는 부당한 구속, 채무에 의한 예속, 기본권 침해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기업의 경영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노동검찰이 "사상 최대 규모"라고 밝힌 이번 배상 명령은 브라질 내 다국적 기업의 책임 범위를 다시 규정하는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다만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배상액과 법적 책임 범위는 항소심 판결에서 변동 가능성이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