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고급 산업기술 자립을 위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제조업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 부품과 소재 분야에서는 서방 국가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방 업계는 기술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허난성 뤄양의 국영 베어링 제조공장을 방문해 산업 ‘병목지점’ 해소를 강조한 사실을 전하며 중국이 고급 제조 역량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30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고속철·로봇에 들어가는 ‘베어링’…품질 격차 여전
대표적인 사례가 고급 베어링이다. 고속철도, 드론, 전기차, 터널굴착기, 로봇, 풍력발전기 등 산업 전반에서 핵심 부품인 고급 베어링은 여전히 스웨덴 SKF, 독일 셰플러, 미국 팀켄, 일본의 NSK·NTN·JTEKT 등 6개사가 전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은 약 25%에 그친다.
지난 2020년 우한과학기술대 연구진은 “중국산 베어링은 미세 구조 결함과 치수 정밀도에서 선진국 제품과 큰 격차가 있다”고 평가했고 2024년 카이위안증권도 “중·고급 베어링이 중국 생산량의 20%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 AI 활용 품질 점검…“양품률 97%까지 향상”
중국 정부는 이런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AI 기술을 적극 도입 중이다. 저장성 항저우 외곽의 딥비전테크놀로지는 본래 내시경 수술용 영상 처리 기술을 활용해 베어링의 불량을 2마이크로미터(0.002mm) 단위까지 식별하는 품질 검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국영 뤄양공장 등 주요 생산라인에 도입돼 효과를 내고 있다. 딥비전 창업자 왕솨이린은 “양품률이 90% 미만에서 97%로 뛰었고 연간 수백 건의 고객 불만이 두세 건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품질 검사 인력도 150명에서 수명으로 줄어드는 등 효율성도 높아졌다.
◇ 서방 “설계·내구성은 아직 격차”…中 ‘자립’에 집중
일본 NTN의 베어링 설계 책임자인 가자마 사다쓰네는 “중국 업체들이 제조 기술은 따라잡았지만 설계와 장기 신뢰성, 사후지원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산업정책 관계자도 “중국이 정밀 기술을 시작한 지 20년이 채 안 됐다. 내구성을 논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T는 베어링 외에도 중국이 2018년 자국 언론 ‘과학기술일보’를 통해 공개한 35개 산업 병목기술 중 일부는 국산화에 성공했으나 첨단 반도체 노광장비, 진공 증착기, 포토레지스트 등은 여전히 서방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자율주행용 라이다, 고급 무선통신 부품 및 운영체제 등은 화웨이, CATL, BYD 등 중국 기업들이 상당 수준 자립에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 화웨이 “반도체 자립 2028년까지 70% 목표”
올 2월 시진핑 주석과 만난 화웨이 창업자 런정페이는 “화웨이를 중심으로 2000개 이상 기업이 참여하는 반도체 공급망 자립 연합이 2028년까지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오랜 기간 “심장(하드웨어)과 영혼(소프트웨어)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 그런 우려는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엘리사 회르하거 독일산업연맹(BDI) 중국 사무소 대표는 “중국의 서방 의존 구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며 “AI 산업 응용은 단순한 병목 해소를 넘어 중국 전체 제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은 2015년 발표한 ‘중국제조 2025’ 전략 이후 AI와 데이터 기반 스마트 팩토리 구축을 국책 과제로 삼아 왔다. BDI 의뢰로 작성된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약 400만개 공장 중 상당수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나 향후 10년 내 대다수 대형공장의 스마트 제조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미국과 일본 등은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항공우주 부품 등 핵심 기술에 대한 산업 스파이 방지를 위한 청문회를 시작했으며, 닛키소의 이와오카 다케시는 “탄소섬유 복합소재 기술은 수십 년의 노하우가 필요한 공정으로, 중국이 쉽게 모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가주대(USC) 법학과의 장후이웨이 장 교수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과 당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립 전략”이라며 “기술 개발은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