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달러 투자받고 기업가치 53억 달러로 급부상
의료진 소진 줄이고 업무 효율 높여...미국 전역 150개 이상 대형 의료기관 도입
의료진 소진 줄이고 업무 효율 높여...미국 전역 150개 이상 대형 의료기관 도입

어브리지는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비츠(Andreessen Horowitz)가 이번 투자 라운드를 주도했고,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 등도 함께 참여했다. 이 회사는 지난 2월에도 2억5000만 달러(약 3400억 원)을 투자받아 기업가치를 27억5000만 달러(약 3조7400억 원)으로 평가받았으나, 불과 네 달 만에 기업가치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어브리지는 의사와 환자 대화를 녹음해 자동으로 진료기록을 만들어주는 '앰비언트 리스닝(ambient listening)' 기술을 제공한다. 이 기술은 미국 전역 150개 이상 대형 의료기관에서 쓰이고 있다. 어브리지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시브 라오(Shiv Rao) 박사는 "새로 투자받은 자금은 과학자, 머신러닝 전문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채용하는 데 쓰고, 대규모 고객을 위해 신제품 개발과 고급 AI 인프라 구축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브리지의 AI는 의학 용어를 정확히 알아듣고, 각 진료 분야에 맞게 메모를 만들어준다. 또한, 환자 과거 진료기록과 메모를 참고해 의사가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진료기록을 작성할 수 있게 돕는다. 진료 대화에서 의료 청구 코드(예: ICD-10 코드)와 청구 관련 데이터도 자동으로 추출해 문서화, 코딩, 청구, 감사 등 각종 행정 업무를 간편하게 한다.
이 기술 덕분에 의료진은 진료 후 메모를 쓰는 데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어브리지를 도입한 의료기관에서는 의사 소진(번아웃)이 뚜렷이 줄었다는 보고가 나온다.
의사 소진은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의료진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극도로 지치고, 일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로 인해 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어렵고, 업무 효율이 떨어지며, 심한 경우 우울감이나 무기력까지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의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의사 소진 증상을 경험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버몬트 대학 의료네트워크에서는 어브리지 도입 두 달 만에 의사 소진률이 70%에서 40%로, 네 달 후에는 25%까지 떨어졌다는 현장 사례도 있다.
어브리지는 올해 5000만 건 이상의 의료 관련 대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최근 자금 조달로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시장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연간 반복 매출(ARR)은 1억1700만 달러(약 1594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기술이 빠르게 퍼지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는 AI가 환자와 의사 대화를 녹음해 진료기록과 청구 코드로 바꾸는 과정에서 민감한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갈 수 있다는 걱정이 있다. 이노바 헬스 시스템(Inova Health System) 최고정보 및 디지털 전략책임자 맷 쿨(Matt Kull)은 "AI를 스스로 결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의사를 돕는 보조 도구로 생각해야 한다"며 "AI가 프롬프트를 주고 자동 입력을 도와주지만, 진짜 임상적 결정은 의사가 한다"고 말했다.
어브리지는 이런 우려에 맞서 환자 동의를 받은 뒤 대화를 녹음하고, AI가 만든 진료기록은 반드시 의료진이 검토한 뒤 전자의무기록(EHR)에 입력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또 AI가 만든 결과를 실제 진료 기록과 비교해 신뢰성을 높이는 시스템도 갖췄다.
이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2022년 'AI 스크라이브' 분야 선도기업 뉘앙스(Nuance)를 인수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앰비언스 헬스케어(Ambience Healthcare), 수키(Suki), 온포인트 헬스케어 파트너스(Onpoint Healthcare Partners), 나블라(Nabla) 등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예일 뉴헤이븐 보건 시스템(Yale New Haven Health System) 수석 부사장 겸 최고 디지털 건강 책임자 리 슈밤(Lee Schwamm) 박사는 "어브리지를 쓰는 의사 가운데 60~70%가 계속 사용하고 있고, 소진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의무기록(EHR)처럼 앞으로 어브리지 사용이 의료진에게 꼭 필요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노바 보건 시스템에서는 어브리지 도입 후 진료기록 작성 시간이 크게 줄고, 환자 진료 횟수도 늘었다는 현장 사례가 있다. 버지니아와 워싱턴 D.C. 지역 1,000명 이상의 의사가 어브리지를 쓰면서, 진료기록을 완료하는 당일 비율이 늘고 환자 진료 건수도 증가했다.
어브리지는 설립 7년 만에 미국 내 150개 이상 대형 의료기관에 기술을 공급하며, 의료 기록 자동화 시장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다. 최근 자금 조달로 기업가치가 53억 달러까지 치솟으며, 앰비언트 리스닝 기술의 앞날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AI 기반 진료기록 자동화 기술이 의료진 소진을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 AI 역할에 대한 논의도 함께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AI가 의료진 업무를 돕는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이번 어브리지의 성장은 생성형 AI가 의료 분야뿐 아니라 금융, 생명과학, 기술, 무역 등 거의 모든 산업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장에서는 어브리지와 같은 기술이 앞으로 의료 현장에서 꼭 필요한 도구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