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이자 경제 책임자인 허리펑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 무역회담에서 미국 측에 희토류 수출 재개를 약속했으나 이후 실제 수출 허가를 일부러 지연하며 사실상 합의 이행을 보류하고 있다고 3일(이하 현지 시각) 보도했다.
희토류는 전기차, 반도체, 첨단무기 등 현대 산업의 필수 소재로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WSJ는 “중국은 미국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역 지렛대로 희토류를 선택했다”면서 “이는 시진핑의 의중을 충실히 반영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을 최대 145%까지 높였고 화웨이의 인공지능(AI) 반도체 사용을 경고하며 수출 통제도 강화했다. 여기에 미국 내 중국 유학생 비자 취소 방침까지 이어지자 중국은 맞대응 카드로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가동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을 총괄한 허리펑 부총리는 지난 제네바 회담 당시 미국 측의 요구에 따라 “중국은 희토류 수출을 다시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후 각 수출 건마다 개별 승인을 요구하며 절차를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WSJ는 “이 같은 중국의 대응은 희토류 통제를 협상 지렛대로 유지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며 “시진핑은 더 이상 미국식 협상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허리펑은 시 주석과 함께 1980년대 샤먼시에서 공직을 함께했던 인물로 2023년 부총리 자리에 오른 뒤 미국의 반도체와 하이테크 수출 규제에 맞서 중국 산업 보호 전략을 이끌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 외에도 자국산 희토류 자석, 고성능 배터리 소재 등에 대해 ‘비전면 금지’ 방식의 수출 통제를 시행 중이다. 이 같은 방식은 명시적인 금지령 없이도 실제 수출을 지연시켜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WSJ는 “중국의 희토류 전략은 트럼프 1기 당시 유화적이었던 류허 전 부총리의 노선과 전혀 다른 양상”이라면서 “허리펑은 미국의 산업구조나 우려를 이해하려는 태도보다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를 강화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 주요 산업계에서는 중국의 희토류 공급 차질로 인해 이미 생산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직접 통화로 문제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한편 중국은 미국 측이 무역 협상에서 희토류 통제를 명시적으로 문제 삼는다면 대미 수출 확대나 미국 내 투자 확대 등을 교환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WSJ는 “중국은 더 이상 일방적인 양보가 아니라 희토류 같은 전략 물자를 기반으로 한 ‘상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면서 “이는 단순한 통상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을 겨냥한 구조적 압박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