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C 거대실험팀 브레이크스루상 수상...힉스 정밀분석 공로
우주 근원 탐구, 차세대 충돌기 ILC 등 미래에 쏠리는 눈
우주 근원 탐구, 차세대 충돌기 ILC 등 미래에 쏠리는 눈

이번 수상의 영예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에서 LHC를 이용하는 4개 국제 공동 실험(ATLAS, CMS, ALICE, LHCb)에 참여한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전 세계 70여 개 나라에서 온 수천 명을 포함해 모두 1만 명이 넘는다. 이 상은 특히 힉스 입자의 성질을 정밀하게 측정해, 질량이 생기는 과정에서 대칭성이 저절로 깨지는 기제를 증명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28일(현지시각)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 연구자들은 주로 ATLAS와 ALICE 실험에 참여하며, 여기에는 도쿄대학과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 기구(KEK) 소속 연구자를 포함한 많은 인력이 함께한다. 일본에서는 도쿄대와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기관(KEK) 등 13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연구자 약 160명이 ATLAS와 ALICE 실험을 이끌었으며, 도쿄대는 현지 연구 거점을 만들고 자료 분석 중심 역할을 맡아 국제 협력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LHC는 둘레 27km 지하 터널에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서로 부딪치게 한 뒤, 여기서 생기는 여러 입자를 관측하는 장치다. 소립자에 질량을 주는 힉스 입자 발견 외에도, 표준 모형을 넘어서는 새 이론이 예측하는 초대칭 입자나 여분 차원의 존재를 암시하는 '미니 블랙홀' 찾기 등이 처음 목표였다.
2011년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시작한 LHC는 2012년 ATLAS와 CMS 두 연구팀이 힉스 입자로 보이는 새 입자를 찾았다고 발표하는 결실을 보았다. 이후 제2기 가동(2015~2018년) 자료를 바탕으로 힉스 입자의 성질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표준 모형의 예측과 얼마나 들어맞는지 확인했다. 이듬해인 2013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이론으로 예측한 피터 힉스 박사와 프랑수아 앙글레르 박사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론으로 예측된 17개 소립자 가운데 마지막 조각이었던 힉스 입자 발견은 표준 모형의 완성을 뜻하는 듯했다. 그러나 LHC 실험이 계속되면서 이론의 '새로운 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힉스 입자, 표준모형 완성했지만… 새로운 의문들
도쿄대학의 이시노 마사야 소립자 물리 국제 연구 센터장은 "힉스 입자의 성질이 표준 모형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는 점이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힉스 박사 등은 소립자에 질량을 주는 '힉스 기제'를 제안했는데, 이 이론은 W입자와 Z입자 같은 게이지 입자에 적용되도록 발전했다. 힉스 입자는 모든 기본 입자에 질량을 주는 이 '힉스 기제'의 핵심으로, 이 기제가 실제 자연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험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같은 기제를 쿼크나 하전 렙톤 등 다른 소립자에 적용해도 모순 없이 질량이 설명되며, 이런 설명은 LHC 실험 자료와도 일치한다. 이시노 센터장은 "엄밀한 이론 근거가 없는 확장인데도 이렇게 자료와 일치하는 점이 오히려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표준 모형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 또한 지적된다. 힉스 입자 발견으로 표준 모형은 완성됐지만, 우주의 약 95%를 이루는 것으로 보이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하고, 우주 탄생 초기에 같은 양만큼 있었을 물질과 반물질 가운데 왜 반물질만 사라졌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지 못한다. 이 때문에 강한 상호작용을 하는 새로운 입자 찾기, 희귀 과정과 물질-반물질 비대칭성 연구처럼 표준 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 현상 탐구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번 브레이크스루상 수상 이유 가운데 하나는 '힉스 입자 특성의 자세한 측정'이었다. ATLAS와 CMS 두 실험팀이 힉스 입자를 정밀하게 관측해 표준 모형의 한계를 넘어서는 물리학을 찾으려 한 노력이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LHC 같은 가속기 실험 자료량은 '인버스 펨토반(fb−1 )' 단위로 나타낸다. 1 인버스 펨토반은 약 100조 번의 양성자 충돌에 해당한다. 브레이크스루상 심사 대상 기간이었던 제2기 가동(2015~2018년) 동안 ATLAS 실험팀은 147 인버스 펨토반의 자료를 확보했다.
현재 진행 중인 제3기 가동(2022~2026년)에서는 200 인버스 펨토반의 자료를 확보하고, 이후 실험 장비를 대폭 개선할 고휘도 LHC 실험(2030~2041년)에서는 누적 자료량을 3000 인버스 펨토반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시노 센터장은 "자료량은 거의 10배로 늘어난다. 자료 분석에 인공지능(AI)을 써서 힉스 입자 성질을 철저히 파헤칠 것"이라고 밝혔다.
힉스 입자 성질이 표준 모형과 지나치게 잘 들어맞는 점이 오히려 새로운 물리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게 해, 더욱 정밀한 측정과 자료 분석이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 더 깊은 이해 향한 노력, LHC의 도전과 다음 단계
이러한 노력은 표준 모형을 넘어서는 새 이론의 단서를 찾기 위한 핵심 전략이다. 새 이론의 유력한 후보인 초대칭 입자는 지금 LHC 실험의 에너지 수준에서는 직접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움직임을 면밀히 분석해 표준 모형과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고, 이를 단서로 그 배후에 숨겨진 새 물리학의 징후를 포착하려 한다.
그러나 이시노 센터장은 "LHC로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양성자끼리 부딪치게 하는 방식은 힉스 입자와 상관없는 많은 입자를 만들어 순수한 측정 환경을 만들기 어렵게 한다. 그는 "자료와 이론이 맞지 않는 것이 실험 오차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모르는 입자 때문인지 가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성자가 아닌 전자와 양전자를 부딪쳐 잡음이 적은 환경에서 힉스 입자를 정밀하게 재려는 국제 직선형 충돌기(ILC) 구상을 추진한다. LHC의 한계를 보완할 방안으로, 잡음이 적은 전자-양전자 충돌형 가속기(국제 직선형 충돌기, ILC) 같은 다음 세대 실험을 논의한다. 일본이 유치를 검토하는 가운데, 유럽과 중국에서도 비슷한 목적의 전자-양전자형 차세대 가속기 건설 논의가 진행 중이다. LHC의 뒤를 이을 소립자 실험은 힉스 입자를 매개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브레이크스루상은 힉스 입자 정밀 측정과 질량 생성 기제 증명, 그리고 표준 모형을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 탐구의 국제 성과에 주어졌다. 이번 수상은 힉스 입자를 중심으로 물리학의 새 이론 정립과 우주 이해의 폭을 넓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