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기술 주도권 싸움 치열…신소재·AI·금융 등 산업 혁신 예고
정부 6000억 엔 투자 계획에도…글로벌 자금 유치·생태계 조성이 관건
정부 6000억 엔 투자 계획에도…글로벌 자금 유치·생태계 조성이 관건

지난 26일(현지시각) 닛케이 보도에 따르면 양자 컴퓨터 개발 경쟁에서 유럽과 미국(구미)의 신흥 기업들이 빠르게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핵심 부품인 프로세서(처리 장치)에서 새로운 방식을 내놓으며 대규모 자금 유치에 성공하고 있으나, 일본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정보기술(IT)·제조·금융·건강관리(헬스케어) 등 거의 모든 산업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각국 정부와 세계적 대기업, 모험 자본(벤처캐피털), 새싹 기업(스타트업) 모두 양자컴퓨터 개발에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산업 경쟁력의 방향을 가를 이 기술 경쟁에서 일본의 세계적 참여자(글로벌 플레이어) 육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 5월 중순에 도쿄에서는 양자 컴퓨터를 포함한 양자 기술 관련 국제 행사인 'Q2B'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토요타 자동차, NTT 등 100개가 넘는 기업과 단체가 참여하는 사단법인 'Q-STAR'의 시마다 타로 대표이사(도시바 사장)는 "전 세계적으로 양자 기술을 활용한 산업 창출 방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 양자컴퓨터,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
현재 양자 컴퓨터 개발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는 프로세서다. 계산 능력을 높이려면 프로세서 규모를 키워야 하며, 계산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를 바로잡는 '오류 정정' 기술 발전도 중요하다.
주요 기술 방식별 경쟁 구도를 보면, 먼저 '초전도 방식'은 구글, IBM, 후지쯔, 이화학연구소(리켄) 등이 대표 기업이다. 매우 낮은 온도(극저온) 환경에서 초전도 회로를 이용해 큐비트를 구현하며, 큐비트 제어 기술이 충분히 발전했고 비교적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극저온 유지 비용과 설비 부담, 큐비트 수 확장 한계가 단점으로 꼽힌다.
'이온 가둠(트랩) 방식'은 퀀티뉴엄, 아이온큐(IonQ) 등이 대표적이며, 전자기장으로 이온을 공중에 띄워 큐비트로 사용한다. 큐비트끼리 서로 작용하는 것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고 오류율이 낮다는 장점이 있으나, 시스템 복잡성과 규모를 키우는 데 기술적 어려움이 남아있다. '중성원자 방식'은 퀘라 컴퓨팅, 파스칼(Pasqal) 등이 이끌며, 레이저로 원자를 배열해 큐비트를 구현한다. 큐비트 규모를 크게 키우는 데 유리하고 오류 정정 기술과 결합해 상업적 사용을 기대하지만, 큐비트 제어 난도와 시스템 안정성 확보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광(光) 방식'은 사이퀀텀, 자나두(Xanadu) 등이 대표 기업으로, 빛(광자)을 큐비트로 사용해 보통 온도(실온)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규모 확대 및 통신 연결이 쉽다는 점이 있지만, 광자 제어·측정 기술 난도와 믿을 만한 수준(신뢰성) 확보가 과제다.
지금까지는 미국 구글, IBM, 일본 후지쯔 등이 개발하는 '초전도'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실제로 지난 4월 후지쯔와 이화학연구소(RIKEN)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초전도 방식 양자 컴퓨터 실제 기기 가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 자금력 업은 구미 신흥 기업 '쾌속 질주'…일본은 '제자리걸음'
대표적으로 미국과 영국 기업인 퀀티뉴엄은 이온 가둠 방식을 사용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오류율과 정밀도를 자랑한다. 2024년에 JP모건 체이스, 암젠, 미쓰이 물산 같은 세계적 대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으며, 같은 해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레이메이(黎明)' 시스템을 가동하며 상업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모은(누적) 자금은 4억6000만 달러(약 1775억800만 원)가 넘는다. Q2B에 참석한 퀀티뉴엄 일본 법인 유카이 히데야 최고경영자(CEO)는 "계산할 때 오류 발생률을 낮게 억제할 수 있어 상업적으로 운용하는 기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사 기술력을 소개했다.
미국 퀘라 컴퓨팅은 중성원자 방식을 채택해 큐비트 확장성과 오류 정정에서 강점을 보이며, 구글, 소프트뱅크 등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세계적 연구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모은 자금은 약 2억3000만 달러(약 3150억 원)에 이른다.
13억 달러(약 1조7752억 원)로 업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모은 미국 사이퀀텀은 광 방식을 개발한다. 이 회사 제프 프라이드 수석 디렉터는 지난 5월 행사에서 "광 방식은 큰 규모의 기계(머신)를 구현하는 데 매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사이퀀텀은 2024년 호주 정부 등에서 1000억 엔(약 1조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해 대형 사업(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이 밖에도 프랑스의 파스칼(Pasqal)은 중성원자 방식으로 1억 유로 넘게 투자 유치하고 유럽연합 양자 주력(플래그십) 사업에 참여하고 있으며, 미국의 IonQ는 이온 가둠 방식으로 나스닥에 상장하고 세계적 협력 관계(글로벌 파트너십)를 넓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JP모건, 구글, 소프트뱅크, 암젠, 미쓰이 물산 같은 대기업이 신흥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유럽연합, 미국, 호주 등 정부 차원의 대규모 연구개발(R&D) 기금(펀드)과 새싹 기업 지원 계획(프로그램)도 활발하다. 모험 자본의 적극적인 투자는 신생기업의 세계 시장 진출과 대형 사업 추진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 이 순위에서 50위 안에 든 일본 기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사 큐나시스(QunaSys, 도쿄 분쿄구)가 유일했다. 큐나시스는 2,400만 달러를 마련해 38위를 기록했다. 세계 자금 조달 경쟁에서 일본의 부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대형 사업 회사들이 양자 기술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퀀티뉴엄의 유카이 최고경영자는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방식이 달라 예산 규모가 수십 배 차이 난다"고 지적했다.
◇ 절치부심 일본, 정부 주도 반격 채비…갈 길 멀어
일본은 기초 연구 분야에서 후지쯔, 이화학연구소, 도쿄대학, 산업기술종합연구소 같은 세계적인 연구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초전도 방식에서는 후지쯔와 이화학연구소가 세계에서 가장 큰 실제 양자컴퓨터(큐비트 수 기준)를 가동하는 성과를 냈다.
또한 토요타, NTT, 미쓰이물산 같은 대기업이 Q-STAR와 같은 산업연합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자금 조달의 어려움 말고도, 일본 국내 시장 중심의 사업 구조 때문에 해외 벤처 자본과 세계적 대기업과의 협력이 부족하고, 미국·유럽 신흥기업에 견줘 상업화와 규모 확대 속도에서 뒤처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본 출신 연구자와 기술자(엔지니어)가 해외로 나가는 현상도 계속 문제로 지적된다.
일본 정부도 위기감을 느끼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자민당 양자 산업 창출 특별팀(프로젝트팀) 좌장인 기하라 세이지 중의원은 Q2B 기조 강연에서 "기술에서는 이기고도 산업에서 져왔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2025년부터 5년 동안 6000억 엔(약 5조7433억 원)을 정부가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해외 모험 자본도 유치하고, 해외로 진출하는 세계적 참여자를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세계 투자자 유입을 늘리고 세계적인 새싹 기업 육성 정책을 추진하며, 산업기술종합연구소, 도쿄대학, 이화학연구소 등과 산업계의 공동연구를 강화하고, 양자·인공지능(AI) 융합 연구센터 설립과 전문 인력 양성 계획을 넓힐 방침이다.
일본 안의 전략 거점 정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기술종합연구소는 2025년부터 산업계와 손잡고 인재를 키우기 위한 '양자·인공지능(AI) 융합 비즈니스 개발 글로벌 연구 센터'를 본격 가동했다. 이화학연구소와 도쿄대학 등도 개발과 기술 활용을 위한 체제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새싹 기업 가운데 와세다대학에서 창업한 나노파이버 퀀텀 테크놀로지스(NanoQT, 도쿄 신주쿠구)는 지난 3월 미국 메릴랜드주 정부 지원으로 현지 거점을 마련하고 해외 시장 진출을 찾고 있으며, 큐나시스는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세계적 협력 관계를 넓히려 하고 있다.
◇ "생태계 구축·글로벌 협력"…일본, 양자강국 갈림길
앞으로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은 대규모 자금, 혁신 기술,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미국·유럽 신흥기업들이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유럽, 호주, 중국 등은 국가 전략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와 규제 완화,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통신 등과 기술을 합치는 흐름도 빨라질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세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기회를 잡으려면, 해외 모험 자본과 세계적 대기업과 관계를 강화해 세계 자금 조달 능력을 키우고, 해외 인재 유출을 막는 동시에 국내외 우수 인재를 적극 데려오며 산업·학교·연구기관(산학연) 협력을 넓혀야 한다. 또한 기초 연구 강점을 바탕으로 상업화와 사업화 속도를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며, 대기업뿐 아니라 신흥기업, 대학, 정부가 함께하는 열린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2025년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로, 유엔(UN)은 '국제 양자 과학 기술의 해'로 정했다. 양자컴퓨터는 21세기 산업과 과학의 틀(패러다임)을 바꿀 핵심 기반 기술이다. 다음 100년의 기술 우위를 좌우할 양자 컴퓨터 분야에서 일본이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부, 산업계, 학계가 힘을 모아 대규모 투자, 세계 협력 관계 강화, 인재 육성, 그리고 열린 혁신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