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견제 속 자국 조선업 부활 야심…외국 조선소에 기회 열리나
고비용·기술력 한계 봉착한 美…동맹국 협력 통해 돌파구 모색
고비용·기술력 한계 봉착한 美…동맹국 협력 통해 돌파구 모색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선박을 다시 건조한다(Make America Build Ships Again)'는 구호 아래, 조선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재정의하고 연방 정부 발주 선박의 국산화 비율 확대, 조선업 지원 예산 증액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조선소 투자에 대한 세금 감면, 조선업체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과 백악관 내 조선 산업 정책 조정·지원 전담 사무실 신설, 공공기관·대학 연계 조선 기술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 조선업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중국 견제, 일자리 창출, 국가 안보 등 세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처방전이다.
18일(현지시각) 트레이드윈즈, 로이터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탈리아 총리는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 조선업 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일본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조선 산업을 주요 의제로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이전부터 물밑 접촉을 시도하며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이들 세 나라는 오랫동안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해 온 미국 조선업이 중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려는 정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 붕괴직전 미국 조선업 현주소
미국조선업협회 매튜 졸먼 회장은 "미국 조선업계는 현재 극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의 상업 조선소들이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조선업은 고비용 구조, 기술력 격차, 인력난, 시설 노후화 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인건비, 원자재, 규제 때문에 선박 건조 단가가 동북아 국가 대비 2~3배 이상 높고, 첨단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에서 기술력과 생산성 모두 뒤처져 있다. 고령화와 신규 인력 유입 부진으로 숙련공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현대화 투자 부족으로 생산 설비가 경쟁국 대비 뒤떨어진 상황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때 세계 최대의 조선국이었으나, 1980년대 이후 상업용 선박 건조 시장에서 사실상 밀려났다. 현재 미국 조선업은 주로 군함, 연방 정부 발주 선박, 내수용 특수선에 집중돼 있다. 2025년 기준 미국의 상선 건조 점유율은 1% 미만이며, 중국은 50% 안팎, 한국과 일본이 각각 15~20% 수준을 차지한다.
미국 조선소는 2024년 상선 인도 실적이 전 세계 물량의 1%에도 못 미치는 6척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은 같은 해 1837척을 인도하며 50%에 육박하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현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계획인 미국을 다시 선박 건조 강국으로 일으켜 세우겠다는 목표에 커다란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국내 생산 장려와 수입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정책을 핵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 동맹국 조선소의 미국 시장 공략
미국 상업 조선소들이 대규모 신규 발주를 소화할 능력이 부족한 현실을 고려할 때, 해외 조선소들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조선업 협력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공식적인 논평을 자제했지만, 한 소식통은 트레이드윈즈에 "멜로니 총리가 이탈리아 조선소들의 미국 시장 진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핀칸티에리(Fincantieri) 등 크루즈선·군함 분야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 내 군함 생산 합작 경험도 있다.
이탈리아는 세계적인 조선 그룹 중 하나인 핀칸티에리의 본산이다. 핀칸티에리는 크루즈선, 군함, 특수 선박 건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일본 정부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의 관세 관련 논의에서 일본 조선업의 역할을 부각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 이마바리조선 등 상업선·특수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미국과의 전통적인 동맹 관계를 활용하여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기차 등 주요 품목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한 협상 테이블에서 조선 산업을 잠재적인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조선소들은 주로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에 특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기 이전부터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LNG선·컨테이너선·군함 등 다양한 선종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은 지난해 6월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의 지분 100%를 인수해 국내 기업 최초로 미국 조선업에 진출했다. 이는 미국의 해운법인 '존스법'에 따라 미국 연안에서 운항할 선박만 전문적으로 건조하는 곳으로, 한화오션은 이번 인수를 통해 북미 조선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존스법에 따른 선박 건조 시장에서 수주를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MRO를 포함한 방산 선박 수주 기회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방침이다.
HD현대 역시 미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4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사인 헌팅턴 잉걸스사와 조선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함정 건조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또한 미국 대표 방산 기자재 업체인 페어뱅크 모스 디펜스와 미국 현지 공급망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하며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다.
◇ 외국 조선소 참여의 득과 실
미국 내 선박 건조를 위한 외국 조선소들의 참여는 트럼프 대통령의 목표 달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여러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는 미국의 '존스법'이다. 이 법은 미국 연안 항구 간의 모든 화물 운송에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인이 소유 및 운영하는 선박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맹국 조선소들은 합작 투자와 현지 생산, 기술 이전과 공동 설계, 모듈화 생산, 직접 수주, 유지보수(MRO) 협력 등 다양한 방식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 조선소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현지에 조선소를 설립하거나 미국 조선소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군함 건조 분야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외국 조선소들은 미국의 국방 관련 계약을 직접 수주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피난티에리-마린에트 합작 사례처럼, 동맹국 조선소들은 미국 내 조선소와 합작하여 군함 생산에 참여할 수 있다. 한화오션 역시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인수하는 등 국내 조선소들의 미국 시장 진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 미국-동맹국 조선 협력, 전망은?
조선·외교 정책 전문가들은 외국 조선소들의 미국 조선업 참여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일부는 외국 조선소 그룹의 직접 투자를 통해, 다른 일부는 국가 간 해군 함정 공동 건조 등 협력 모델을 통해 '미국 조선업 재건'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외국 조선소 활용의 장점으로는 선박 확보 속도 증대, 기술력 향상, 비용 절감, 공급망 안정 등이 꼽힌다. 반면 정치적 반발, 안보 우려, 기술 유출 가능성, 존스법 등 법적 제한, 장기적인 자립성 저해 등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미국 기업 연구소의 블레이크 하트위그 연구원은 "외국 조선소들이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분명히 미국 조선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조선소들이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들은 미국 해군의 '비용 가산 방식 계약'이 납기 지연과 비용 상승을 부추기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외국 조선소들은 숙련된 해외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제약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외국 조선소의 미국 조선업 참여 문제는 정치적 셈법 또한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국내 산업 보호와 외국 경쟁 제한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외국 조선소에 대한 의존이 이러한 정책 기조와 모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국내 조선소에 대한 투자 확대와 숙련 노동력 양성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 조선업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목표에는 여러 난관이 있으며, 외국 조선소의 역할 또한 아직 구체적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기존 협력 사례로는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미국 마린에트 조선소의 합작, HD현대가 헌팅턴 잉걸스사와의 함정 건조 협력, 한화오션의 필라델피아 조선소 인수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군함 및 첨단 상업선 분야에서 미국과 동맹국 간 조선 협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러나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 주요 조선 강국들이 미국 시장 진출이라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글로벌 조선 산업의 역동적인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이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각국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새로운 시장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외국 조선소와의 협력은 단기적으로 생산 능력 확충과 기술력 향상, 공급망 다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 조선 산업 생태계 복원, 인력 양성, 첨단 기술 내재화 등 자립 기반 강화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