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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엔 블록' 꿈꿨던 일본 엔화, 국제화 실패한 이유

일본 도쿄의 도쿄증권거래소.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도쿄의 도쿄증권거래소. 사진=로이터
일본 엔화는 한때 미국 달러에 도전할 첫 번째 주요 통화로 기대를 모았으나 일본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와 자국 내 경제적 문제 등으로 결국 국제화에 실패했다고 미국 경제지 포춘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포춘은 폴 블루스타인이 최근 발간한 저서 ‘킹 달러: 세계 지배 통화의 과거와 미래(King Dollar: The Past and Future of the World's Dominant Currency)’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블루스타인은 국제 경제 및 금융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언론인 겸 작가로 과거 워싱턴포스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 금융 기관의 역할과 정책을 심층적으로 다뤘다. 그의 저서 '징벌'은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IMF의 대응과 그로 인한 영향 등을 상세히 분석해 주목받았다.

블루스타인은 이 책에서 "일본 엔화가 한때 '엔 블록(yen bloc)'이라는 이름으로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 체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예측이 널리 퍼졌지만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내부 금융시장의 구조적 문제로 이 구상은 결국 무산됐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 일본은 자동차·전자기기·컴퓨터·반도체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이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엔화를 중심으로 하는 '엔 블록'을 형성해 달러 중심의 국제 경제 질서를 재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 역시 일본에 엔화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일본 정부에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해 엔화가 달러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을 촉구했다. 1984년 미일 양국이 맺은 엔·달러 협정에 따라 일부 금융 규제가 완화됐고 이후 1985년 미국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국의 기대와 달리 금융시장의 국제적 개방을 매우 소극적으로 진행했다. 당시 일본 재무성 관리들은 엔화 국제화가 일본의 경제 발전 모델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은 국내 산업에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유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과 은행은 해외로 돈을 보낼 때 엄격한 제한을 받았고 외국인의 엔화 매입도 제약했다.

미국 재무부 협상단은 이가은 일본의 소극적인 태도에 좌절감을 느꼈다. 당시 베릴 스프링켈 미 재무부 차관은 일본의 단계적 접근법을 비판하며 "나는 미주리주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새끼 돼지의 꼬리를 자를 때 한 번에 확 자르지, 조금씩 자르지는 않는다"고 비유적으로 표현해 일본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 측 대표였던 오바 도모미쓰 재무성 차관은 이 발언 이후 일본의 태도를 '한 걸음씩'에서 '큰 보폭'으로 바꾸겠다고 답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했다.
결국,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자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은 저금리 정책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일본 내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형성됐다. 1990년대 초반 이 거품이 붕괴되면서 일본은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했고 엔화의 국제화는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다.

1995년에는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다이앤 쿤즈 예일대 교수가 "엔화가 아시아의 공통 통화로 자리잡으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엔 블록'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블루스타인은 "일본 정부가 금융시장 규제를 보다 일찍 해제했다면 달러에 실질적으로 도전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화의 국제화는 경제 규모나 성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결정과 국제 금융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는 교훈을 준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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