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속 가격 경쟁력·품질 향상 주효...국내 제조기반 약화 우려도
일본 자동차 업계의 역수입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혼다와 스즈키가 인도 생산 차량의 수입을 대폭 늘린 결과다. 14일(현지 시각) 일본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2024년 해외 생산 차량의 일본 내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48% 증가한 9만3587대를 기록했다.이는 일본 내 신차 판매의 약 2%를 차지하는 수준으로, 3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물량 기준으로는 199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의 고품질 부품 공급망 구축이 역수입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혼다의 역수입은 전년 대비 22배 급증한 4만5107대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 생산시설에서 제조하는 소형 SUV 'WR-V'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WR-V는 일본 시장에서 209만 엔(약 1780만원)부터 시작하는 가격대로, 월 판매목표인 3000대를 웃도는 실적을 보인다.
저렴한 인도의 노동력은 엔화 약세 상황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다만 인도 시장에서는 현지 업체와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강세로 'Elevate'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WR-V의 판매가 부진한 상황이다. 이에 혼다는 일본으로의 역수입을 통해 인도 공장의 가동률 제고를 도모하고 있다.
스즈키도 역수입을 4배 가까이 늘린 5819대를 기록했다. 특히 인도 전략 차종인 'Fronx' SUV를 지난해 10월 일본 시장에 출시하며 역수입을 확대했다. Fronx는 현재 7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스즈키는 전체 판매량의 약 60%를 인도에서 판매하고 있다.
도시히로 스즈키 사장은 "인도의 생산기술 수준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즈키는 인도를 글로벌 수출 허브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2030 회계연도까지 생산능력을 70% 늘려 400만 대 규모로 확대하고, 이 중 약 75만 대를 수출할 방침이다.
미쓰비시자동차도 태국에서 생산하는 Triton 픽업트럭의 수입을 확대하며 역수입이 전년 대비 3.5배 증가한 3688대를 기록했다.
일본의 자동차 역수입은 1990년대 중반 미국과의 무역마찰 해소를 위해, 2010년대 초에는 엔고 대응을 위해 두 차례 시도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해외 생산 차량의 품질이 일본 소비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최근의 역수입 증가는 해외 공장의 품질 향상과 함께 일본 시장의 축소로 인해 국내 생산능력 확대보다 리스크가 적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토추 연구소의 산시로 후카오 연구원은 "인도와 태국의 제조업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고용 유지 외에는 일본 내 자동차 생산의 의미가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역수입 확대가 일본의 제조업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면서도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