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열풍이 불고 있지만 중국 기술주는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미국 기술주가 AI 테마를 타고 급등하는 동안 중국 기술주는 지정학적 압박과 수익화 문제에 발목 잡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3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챗GPT 등장 이후 나스닥 100 지수는 75% 이상 급등했지만, 항셍 테크 지수는 16% 상승에 그쳤다. 미국의 엔비디아가 AI 칩 시장을 장악하며 주가가 폭등하는 동안 중국 기술 기업들은 미국의 수출 규제와 자국 내 AI 수요 부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 대표 기술 기업들의 최근 실적 발표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루텐센트 마틴 라우 사장은 중국 기업들의 AI 투자가 저조해 클라우드 사업 성장이 미국만큼 빠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클라우드 매출 성장률은 각각 11%, 7%에 그쳐 마이크로소프트(30% 이상), 아마존(20% 가까이)에 크게 뒤처졌다.
이는 중국 AI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중국 AI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미국의 기술 수출 제한 △기업들의 AI 투자 부족 △소비자 수요 부진 △클라우드 가격 경쟁 심화 등을 꼽는다.
미국의 수출 규제는 중국 기업들이 최첨단 AI 칩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바이두와 텐센트는 단기적으로 AI 모델 훈련에 필요한 칩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규제는 중국 AI 산업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국 기업들의 AI 투자 부족도 문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얀센 헨더슨의 리처드 클로드 펀드 매니저는 "중국 기업들은 AI 투자에 소극적이며, 디지털 전환 속도도 느리다"고 지적했다. EFG 자산운용의 데이지 리 펀드 매니저는 "중국에는 AI 통합을 위한 기업용 소프트웨어 산업이 부족하고, 클라우드 컴퓨팅 파워를 소비하는 스타트업도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경제 성장 둔화는 기업들의 IT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 효과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AI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악재들이 겹치면서 중국 기술주는 투자 매력을 잃고 있다. 항셍 테크 지수는 10월 고점 대비 18% 하락했으며, 미국 기술주 대비 40% 이상 저평가된 상태다.
중국 기술 기업들은 AI 수익화 모델 발굴, 클라우드 경쟁력 강화, 해외 시장 진출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중국 정부 역시 AI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견제와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중국 기술주가 다시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태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j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