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올해 BIDF의 가장 주목할 변화는 축제 구조의 재편이었다. 신설된 프린지 프로그램과 AK21 안무가육성경연의 통합 운영은 창작과 발표, 교육과 유통이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는 프로그램 확장뿐만 아니라 축제가 창작자와 관객, 전문가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프린지는 기존의 공식 초청 중심 구조를 넘어 신진 안무가와 독립예술가들에게 발언권을 부여하며 축제의 담론 지형을 넓혔다. 무용제가 완성된 결과물만을 전시하는 장이 아니라 창작 과정과 실험 정신을 공유하는 열린 광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무용제의 미학적 정점은 개막 특별초청작인 샹탈 카롱의 '나무의 존재'와 기욤 코테의 '번 베이비, 번(Burn Baby, Burn)'이었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미학적 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춤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몸은 어떻게 세계를 사유하는가”라는 하나의 본질적 질문을 향해 나아갔다. 전자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지워 존재의 근원을 응시했고, 후자는 현대 문명의 욕망과 불안을 신체의 역동성으로 가시화하며 동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두 안무가는 상반된 미학적 접근을 통해 춤이 서사 이전의 감각이자, 언어 이전의 사유 체계임을 설득력 있게 증명해 보였다.
샹탈 카롱의 '나무의 존재'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색한 작품이다. 유목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몸과 결합하며 또 다른 생명체로 확장되고, 인간과 자연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카롱의 안무는 하늘을 향한 도약보다 땅을 향한 침잠에 가깝다. 무용수들은 땅을 밀고 버티는 움직임으로 존재의 무게와 생태적 감수성을 드러낸다. 화려한 서사 대신 신체와 자연의 교감을 통해 깊은 사유의 공간을 열어 보인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숲의 공기 같은 잔향이 몸에 남는다는 점에서 작품의 미학적 완성도가 돋보였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기욤 코테의 '번 베이비, 번'은 기후 위기와 전쟁, 문명의 불안을 디스코의 역설적 에너지로 풀어낸다. 지속적인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소진을 향해 질주하는 현대 문명의 초상을 연상시킨다. 클래식 발레를 기반으로 1) 브레이킹, 래핑 리듬과 연결된 프리스타일 움직임, 바운스와 리듬감을 강조하는 스타일의 힙합 2) 빠르고 각진 손동작, 극적인 포즈 전환, 몸 선을 강조하는 보깅 3) 점프, 회전, 균형, 유연성 동작 등을 수행하는 곡예적인 움직임의 아크로바틱을 결합한 신체 언어는 동시대 무용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붉은 조명과 안개의 공간은 무용수처럼 작동하며 강렬한 시각적 긴장감을 형성했다. 코테는 서사보다 감각을 앞세워 관객이 춤을 ‘몸으로 경험’하도록 이끌었다.
두 작품의 공통된 미학은 과감한 절제와 비움에 있었다. 화려한 영상과 첨단 기술이 공연의 중심을 차지하는 오늘날, 두 안무가는 오히려 불필요한 장치를 걷어내고 몸 그 자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비워진 무대는 결핍이 아니라 움직임의 밀도와 신체의 존재감을 더 많이 부각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그 결과 관객은 이야기를 해석하기보다 몸이 만들어내는 감각과 에너지의 흐름을 직접 경험하게 되었다. 춤이 기술적 스펙터클에 기대지 않고도 인간 존재의 근원과 세계에 대한 사유를 끌어낼 수 있는 독자적 예술 언어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해운대 해변 특설무대의 공식 초청작들은 주목할 만했다. 덴마크 어퍼컷 댄스 시어터의 '벤치'는 비보잉과 현대무용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 감각을 구현, 대만 메이미지 댄스의 '잿더미 속에서의 부활_프롤로그'는 초현실주의적 상상력, 아르헨티나의 '탱고'의 풍부한 육체적 율동성으로 신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인도네시아의 사만가요 춤은 공동체적 리듬의 힘을 보여주며 현대무용 중심의 프로그램에 전통예술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강요찬의 '학', 와이즈발레단의 '비틀즈 슈트'와 '코펠리아 파드되'의 역동적 연기, 수무브의 '카시나칭칭'이 코믹하게 대미를 장식했다. BIDF는 여러 국가의 작품 나열에 넘어 서로 다른 문화적 신체성을 하나의 담론 공간 안에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
관객과 새로운 관계 설정은 이번 무용제가 남긴 중요한 성과 중 하나였다. 해외 초청 예술가들의 학교 방문 프로그램과 발레·탱고 워크숍, 거리 공연은 무용을 극장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일상의 공간으로 확장했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에서 예술 창작과 경험의 과정에 참여하는 주체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지역사회와 예술이 긴밀하게 호흡하는 오늘날 축제의 공공적 역할과도 맞닿아 있다. 공연의 감동이 객석에서 끝나지 않고 교육과 체험, 지역문화로 이어질 때 축제는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문화 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제18회 AK21 안무가육성경연은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최우수상 수상작인 배현우(29·김성훈 댄스프로젝트)의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는 일상의 감정과 관계의 결을 신체 언어로 섬세하게 번역하며 동시대 청년 세대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객석에서 무대로 이동하는 동선과 일상복에서 공연복으로의 전환은 삶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무용이 현실과 맞닿아 있음을 드러내었다. 우수상 3편은 '너 싫어'의 염승훈, '로열 블루'의 윤희섭, '만선'의 이종윤에게 돌아갔다. 결선 네 작품은 해외무용제 감독들로부터 해외 공연에 관한 면담이 있었다.
해외 축제 예술감독과 전문가들(해외 축제 예술감독으로서 ‘2026 AK21 안무가육성경연’ 심사위원 6인: 심사위원장 티트 카스크, 허샤오메이, 이라와티 쿠스모라스리, 야체크 루민스키, 올렛 캄찰라, 빅토르 초이 우마)의 심사 및 멘토링 과정은 경연의 수준을 한층 높이며 작품의 국제적 유통 가능성을 가늠하게 했다. AK21은 무용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차세대 안무가를 발굴하고 세계 무대로 연결하는 창작 육성 플랫폼이었다. 이를 통해 젊은 안무가들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향후 해외 축제 진출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제22회 부산국제무용제는 외형적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축제가 지향하는 방향성을 분명히 제시했다. 이번 무용제는 더 많은 작품과 화려한 볼거리를 제시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관객에게 어떤 감각과 질문을 남길 것인가에 집중했다. 개막작을 비롯한 주요 프로그램들은 춤의 본질과 신체의 의미,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성찰을 끌어내며 축제의 깊이를 더했다. 이는 단순한 행사 운영의 성공을 넘어 동시대 공연예술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BIDF는 ‘무엇을 오래 기억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공연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부산은 이번 축제를 통해 개최 도시의 이미지를 넘어 아시아 무용 네트워크의 거점으로서 가능성을 확실히 입증했다. 해변과 도시, 극장과 광장, 전문가와 시민이 하나의 움직임으로 연결된 일주일. 그 시간 동안 부산은 춤을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춤을 생산하고 축적하는 도시로 존재했다. 그 중심에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언어이자 가장 근원적인 예술인 ‘몸’이 있었다. 더불어 이번 무용제는 국제 교류와 지역 문화 생태계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부산이 동시대 무용 담론을 생산하고 확산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켰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부산국제무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