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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328)] 설득인가, 가스라이팅인가

설득은 사람의 성장을 돕는 자양분이 되고 가스라이팅은 자아를 파괴하는 독소가 된다. 그 차이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주도권의 행방이다. 사진=게티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설득은 사람의 성장을 돕는 자양분이 되고 가스라이팅은 자아를 파괴하는 독소가 된다. 그 차이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주도권의 행방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우리는 흔히 거짓말이 사람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거짓말 그 자체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때 인간은 비로소 붕괴되기 시작한다.
1944년에 개봉된 영화 'Gaslight'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이 어떻게 해체되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심리 보고서에 가깝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주인공 폴라는 남편과 함께 한집에 살면서 점점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히 물건이 사라졌다가 나타나고, 밤이 되면 가스등 불빛이 희미해진다. 그러나 남편은 단호하게 말한다. “그런 일은 없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폴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묻게 된다. “문제가 있는 것은 이 집이 아니라 나 자신 아닐까?” 이 질문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폭력의 본질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 사회의 대화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가스라이팅’이다. 직장, 가정, 연인 관계 등 갈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이 단어가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된다. 누군가는 상대의 강한 주장에 가스라이팅이라며 방어막을 치고, 다른 누군가는 상대의 영혼을 갉아먹으면서도 자신은 그저 진심으로 설득하고 있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먼저 두 행위가 가진 기묘한 닮은꼴을 이해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결정적인 차이를 구별해내야 한다.

왜 우리는 설득과 가스라이팅을 혼동하는가


설득과 가스라이팅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닮았다. 첫째, 두 행위 모두 타인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 상대의 생각이나 태도, 행동을 이전과 다르게 바꾸려 한다는 점에서 출발선이 같다. 둘째,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상대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논리를 전개하든 감정에 호소하든, 대화를 통해 상대의 내면에 침투하려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셋째, 행위자 스스로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조차 처음에는 상대를 돕기 위해서 혹은 우리 관계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두 행위는 타인을 움직이려 한다는 외형적인 목적이 같기에 쉽게 혼동된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하나는 사람의 성장을 돕는 자양분이 되고, 다른 하나는 자아를 파괴하는 독소가 된다. 그 차이를 가르는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주도권의 행방이다.

주도권의 소재: 변화의 열쇠를 누가 쥐고 있는가


설득과 가스라이팅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경계선은 변화의 주도권을 끝까지 상대방에게 남겨 두느냐에 있다. 설득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독립적인 판단 능력을 갖춘 존엄한 주체로 인정하는 행위다. 설득자는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만, 그 길을 갈지 말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상대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설득은 본질적으로 질문의 형태를 띤다. “나는 이렇게 판단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물음은 상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반면에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주도권을 교묘하게 빼앗아 온다. 겉으로는 조언의 형식을 빌리지만, 실제로는 상대의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나가는 과정이다. 가해자는 상대의 감정과 기억, 판단력을 부정하며 상대를 무력하게 만든다. “네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잘 몰라. 네 성격이 원래 좀 유별나잖아”라는 말들은 상대가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끔 심리적인 족쇄를 채운다. 관계가 상호 존중이 아닌 일방적인 지배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설득이 아닌 가스라이팅이 된다.

거절 이후의 정서: 말을 듣지 않았을 때의 죄책감 여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실천적인 구분 기준은 상대의 제안을 따르지 않았을 때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남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의 독소 여부를 가리는 가장 명확한 시금석이다.

건강한 설득의 관계에서는 상대의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자유롭게 유지된다. 설득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았을 때 아쉬움을 느낄 수는 있어도, 거절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상대에게 거절할 권리가 있음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설득자는 상대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가스라이팅 관계는 정반대다. 가해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죄책감이 밀려온다. 가해자가 거절을 배신이나 무관심 혹은 상대의 인간적 결함으로 몰아가면서 정서적 보복을 가하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거나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망가진 거야”라는 반응은 피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자율적 선택을 죄악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가해자는 이 정서적 부채감을 상대를 휘두르는 도구로 삼는다. 말을 듣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 여기게 만든다면, 그것은 명백한 심리적 지배다.

현실 검증력의 존중과 동기의 투명성

심리학에는 ‘현실 검증력’이라는 개념이 있다. 객관적 사실과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건강하게 구분해내는 능력이다. 건강한 설득은 이 능력을 존중하며 강화한다.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공유하며 합의점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자신의 판단력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한다. 동기 역시 투명하다. 이 제안이 공동의 이익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명확히 밝힌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은 상대의 현실 검증력을 조직적으로 파괴한다. 피해자가 느낀 정당한 서운함을 예민함으로, 목격한 사실을 기억 착오로 몰아세운다. “너 빼고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해”와 같은 말로 사회적 고립을 유도하며, 피해자가 오직 가해자의 해석에만 매달리게 만든다. 동기 역시 자기중심적이다. 입으로는 “다 너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가해자 자신의 통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심리적 우위를 점하려는 동기가 숨어 있다.

변화의 속도보다 중요한 변화의 질


우리가 가스라이팅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그것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확신에 찬 단호한 언어와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정서적 공격은 즉각적인 반응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착각을 준다. 그러나 그 반응은 인격의 성장이 아닌 자아의 억압에 의한 일시적 결과일 뿐이다. 가스라이팅은 결국 사람을 더 나약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는 모래 위의 집과 같다.

반면에 설득은 느리다. 상대가 이해하고 납득하여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기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이루어진 변화는 뿌리가 깊다. 설득은 개인의 자율성을 고양하고 관계의 품격을 높인다. 진정한 리더십과 성숙한 인격은 이 느린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는 정서적 근력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억지로 끌고 가는 복종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확실한 자기 확신이다.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선택하라


결국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바꾸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람이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돕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이 설득과 가스라이팅을 가르는 기준이다. 둘은 모두 변화를 원하지만, 하나는 그 변화를 안에서 스스로 자라게 하고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억지로 밀어 넣으려 한다.

말을 강하게 한다고 설득되는 것도 아니고, 부드럽게 말한다고 항상 건강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상대를 어디로 이끄느냐다. 그 말이 상대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가, 판단력을 살리는가 혹은 빼앗는가. 대화가 끝난 뒤 거절의 자유가 살아있는가, 아니면 숨 막히는 죄책감이 남는가. 이 기준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을 살리는 언어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소통이 인간의 품격이 살아있는 진정한 대화로 회복되기를 바란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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