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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324)] 술 소비 감소와 상담의 생활화

전 세계적으로 술 소비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그래픽=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전 세계적으로 술 소비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그래픽=뉴시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술 소비량이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9년 337만 KL에서 2024년 315만 KL로 6.7% 줄었고, 2015년 대비 21% 감소했다. 이는 단순히 일시적인 유행이나 특정 지역의 현상이 아니라 인류의 가치관과 인구 구조 그리고 경제적 환경이 맞물려 일어나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점이라고 할 만하다. 유사 이래로 술은 인류 역사에서 신과의 소통, 사교의 필수품, 혹은 고통을 잊게 하는 마취제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현대인은 이제 술에 취해 이성을 잃는 것을 ‘멋진 문화’가 아닌,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해치는 ‘위험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MZ세대로 대변되는 새로운 소비 주체의 부상이 있다. 이들은 과거와 달리 건강과 삶의 질을 최적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음주를 줄이거나 피하는 생활을 선호하며, 술 없는 삶이 주는 명료함과 생산성에 주목한다. 또한 SNS를 통해 일상이 실시간으로 기록되고 공유되는 디지털 환경에서 술로 인해 흐트러진 모습은 치명적인 평판 하락과 사회적 손실을 의미한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HO) 등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내놓는 “안전한 음주량은 없다”는 과학적 경고는 주류 소비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과 음주 문화의 붕괴


우리나라의 알코올 소비 감소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보다 더 가파르고 역동적이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술은 조직의 결속을 다지는 강력한 ‘사회적 접착제’였다. 집단주의적 가부장 문화에서는 어느 조직이나 가장에 해당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회식을 결정하면 군말 없이 따라야 하고, 이런 자리에서는 빠짐없이 술잔을 공유하며 집단의 결속력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의 정착과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강요된 회식 문화는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는 단순히 술자리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려는 현대인의 심리적 경계 설정이 공고해졌음을 시사한다.

인구 통계학적 변화 또한 결정적이다. 주류 소비의 핵심층인 2040 인구의 급감은 시장의 절대적 수요를 낮추었으며,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은 건강에 대한 실존적 불안을 증폭시켰다. 젊은 층은 즐겁게 건강을 관리하는 ‘헬시 플레저’를 추구하고, 노년층은 만성 질환 관리를 위해 금주를 선택한다. 이제 한국인에게 술은 ‘함께 취해 하나가 되는 도구’에서 ‘개인의 취향을 음미하는 소량의 기호품’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변모했다.

한국 전통문화 속의 술: 예(禮)와 신명의 조화


본래 한국의 전통적 음주 문화는 매우 격조 높은 예법의 산물이었다. 제례에 빠지지 않는 술은 조상과 후손을 잇는 정성의 매개체였으며, 집안마다 비법으로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는 가문의 격식과 환대의 정신을 상징했다. 선비들은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통해 술자리에서도 절제와 겸손을 실천했다.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는 법도는 단순한 서열 확인이 아니라 자신의 흐트러짐을 경계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인격 수양의 과정이었다.

동시에 술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인 ‘한(恨)’을 ‘흥(興)’으로 승화시키는 정서적 촉매제였다. 고된 노동 끝에 여럿이 나누는 농주(農酒)는 개인의 피로를 풀 뿐만 아니라 품앗이한 마을 공동체의 결속으로 승화시켰고, 풍류 속의 술 한 잔은 억눌린 감정을 예술적으로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 전통적 주도는 이처럼 ‘이성적 절제’와 ‘감성적 해방’이라는 두 축이 조화를 이루는 문화적 장치였다.

‘화풀이’로 변질된 음주와 주정(酒酊)의 심리학


이런 격조 높은 술 문화는 삶을 영위하는 데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근현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적 예법이 약해지고, 술이 오직 ‘화풀이’와 ‘배설’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유독 술에 취해 저지르는 실수나 폭언, 즉 ‘주정(酒酊)’에 관대하다. “사람은 착한데 술이 웬수”라는 말은, 술을 빌려 마음속 응어리를 폭발시키는 행위에 무책임한 심리적 면죄부를 부여해 왔다. ‘주취감형(酒醉減刑)’은 술에 취한 상태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벌을 감형한다는 뜻이다.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라면 죄질이 비교적 더 낮은 것은 물론이고, '술에 취하지만 않았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라는 가능성 또한 품고 있다.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서열 위주의 사회에서 서열이 낮거나 약자는 자신의 의사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없다는 억압적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 맨정신으로는 표현할 수 없고 참고 있자니 “속이 터질 것” 같은 상황에서 “취한 김에” 혹은 “취한 척”하면서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배출구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만약 이런 배출구마저 없다면 억압된 감정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폭발할지 모르는 다이너마이트를 껴안고 사는 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정’에 대해 관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속풀이는 일시적으로는 후련함을 맛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가 아닌 일시적인 마취일 뿐이다. 오히려 건강한 소통 능력과 감정 조절 기제를 마비시키고, 문제를 타인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의 기제만을 강화해 왔다.

상담(相談), 마음속 불을 대화로 다스리는 성숙의 길


소설가 현진건이 갈파한 '술 권하는 사회'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은 이제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다는 증거다.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보다 술 소비가 준다는 것은 이제 권위주의적인 수직적 문화가 점차 수평적 문화로 문화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취한 척”하지 않아도 할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상담’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대안이 들어서야 한다. 바로 상담의 생활화다.

상담(相談)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그 본질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말씀 담(談) 자는 말씀 언(言) 변에 불 화(火) 자가 두 개 겹쳐진 형태다. 이는 내면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불(분노·억울함·불안)을 ‘말’이라는 그릇에 담아 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를 서로 상(相), 즉 신뢰할 수 있는 상담자와 마주 앉아 수행하는 것이 상담의 정수다.
술이 이성을 마비시켜 감정을 ‘폭발’시킨다면, 상담은 이성을 유지한 채 감정을 ‘언어화’한다. 술기운에 의존해 속풀이를 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속이 후련할 수는 있지만,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내적 성숙의 길로 이끌 수는 없다. 막연한 분노를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순간, 그 감정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통제 불가능한 괴물에서 관찰과 조절이 가능한 대상으로 바뀐다. 술은 잠깐의 망각을 줄 뿐이지만, 상담은 내 안의 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밑바닥에 어떤 결핍과 상처가 숨어 있는지를 직면하게 함으로써 근본적인 인격적 성숙을 이끌어낸다.

상담의 활성화와 사회적 성숙: '속풀이'에서 '자기 직면'으로


상담이 보편화된 사회는 더 이상 술기운을 빌려 진심을 전하거나 화풀이를 할 필요가 없다. 상담은 내면의 ‘그림자’를 술 뒤로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려 통합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술은 굳은 땅 위의 열기만 잠시 식히는 소나기에 불과하지만, 상담은 대지를 근본적으로 비옥하게 만드는 농부의 손길과 같다.

알코올 소비의 감소는 한국 사회가 ‘취기의 위로’보다 ‘직면의 치유’를 갈망하는 성숙한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지표다. 물론 술 소비 감소가 곧 정서적 성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술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는지가 더 중요하다. 운동과 취미, 자기 계발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감정 문해력의 확산이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며 조절하는 능력은 현대 사회의 핵심 역량이다. 감정을 억제하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술은 줄어도 다른 형태의 중독이나 회피가 등장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술잔을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던 ‘수작(酬酌)’의 문화를 넘어 맑은 정신으로 서로의 영혼을 마주 보는 ‘상담(相談)’의 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빠르게 성장해 왔다. 성장 과정에서 술은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체를 묶는 윤활유였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종류의 윤활유가 필요하다. 감정을 마비시키는 윤활유가 아니라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윤활유다. 그것이 바로 상담이다. 주정이 줄어들고 상담이 활성화되는 사회는 단순히 절제의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성숙하는 사회다.

상담이 활성화되는 사회는 갈등을 비겁하게 회피하지 않고, 분노를 파괴적으로 분출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성장의 동력을 찾아낸다. 이러한 인격적 성숙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때, 한국인은 비로소 해묵은 ‘한’의 정서를 털어내고 진정한 의미의 ‘신명’과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 서로의 마음속 불을 꺼주는 상담의 시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시대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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