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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려는 용기와 평온함의 균형, 성숙한 공동체 완성

[힐링마음산책(321)] 변동불거(變動不居)의 시대를 맞는 자세
30일 시민과 관광객들이 일출을 감상하고 있는 강원도 속초 해수욕장 백사장 모습과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의미의 ‘변동불거’.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30일 시민과 관광객들이 일출을 감상하고 있는 강원도 속초 해수욕장 백사장 모습과 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의미의 ‘변동불거’. 사진=연합뉴스
교수신문은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했다. 이 사자성어는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하편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이다. 주역의 세계관에서 변화는 예외가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이며, “변화가 곧 질서”라는 통찰을 담고 있다. 혼란은 무질서만을 말하기보다 변화 속에서도 해석하고 적응하며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함의가 있다. 사실 변화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있었으나 지금 우리가 느끼는 변화의 속도와 진폭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 기후 위기 그리고 파편화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문자 그대로 '머물 곳 없는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변동불거’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필자는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니부어(Reinhold Niebuhr)가 쓴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를 따라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주시옵소서.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변화를 이끄는 용기를,

그동안 전통적 심리학은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고 심리적 평온을 찾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갈등은 해소해야 할 불온한 것이었고, 변화는 스트레스의 근원이었다. 그러나 현대 심리학의 관점은 다르다. 갈등은 사회와 개인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에너지이며, 변화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상수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안정이 아닌 변화 속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기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미덕은 무엇인가. 위에 인용한 기도문에서 니부어는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첫 번째로 꼽았다. ‘변동불거’의 시대는 우리에게 수동적인 적응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직면한 부조리, 낡은 사고방식 그리고 경직된 시스템을 과감히 변동(變動)시킬 수 있는 주체적인 용기를 요구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은 단순히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낙관이 아니다. 거친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내가 키를 잡고 방향을 수정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종교 개혁가들이 외쳤던 "개혁된 체계는 항상 다시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정신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다. 한 번 완성된 정의나 시스템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경직되기 마련이다. 이를 끊임없이 다시 형성(Re-form)하려는 용기가 없다면, ‘변동불거’는 발전이 아닌 혼돈에 그치고 말 것이다.

물론 무분별한 변화는 위험을 동반한다. 모든 것이 “머물지 않는다(不居)”는 사실은 우리에게 심한 존재론적 불안을 야기한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안전을 느끼는데, 변화가 가속화될수록 우리는 '심리적 안전기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관계의 유동성이 극대화되면서 생기는 소외감 또한 ‘변동불거’의 어두운 이면이다. 깊은 유대 대신 필요에 의한 결합만이 남게 될 때 공동체는 파편화되고 개인은 고립된다. 또한 변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는 '변화를 위한 변화'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심리학자로서 경계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변화의 속도가 개인의 심리적 수용 능력을 넘어설 때 사회는 탄력성을 잃고 붕괴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본질을 지키는 평온함


변동불거의 시대에 평온함이란 단순히 외부의 자극이 없는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거센 파도 아래에서도 심해의 정적을 유지하는 바다와 같은 내면의 힘을 의미한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수용(受容)의 지혜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나 타인의 시선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거두어들여 지금 여기의 선택에 집중하게 하는 전략적 중심이다. 변화를 거부하며 소모되는 불안을 멈추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변화에 휩쓸리는 희생자가 아니라 변화를 경험하며 깊어지는 주체가 된다.

동시에 이 평온함은 모든 것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결코 변해서는 안 될 본질적인 가치, 즉 불거(不居)의 기둥을 붙드는 데서 기인한다. 기술과 제도가 쉼 없이 바뀌어도 인간의 존엄성, 생명에 대한 경외 그리고 정직과 같은 핵심 신념을 마음의 닻으로 내릴 때 우리 내면의 자아는 비로소 연속성을 확보한다. 이러한 평온함은 회복탄력성의 근간이 되어 외부의 어떤 충격에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며,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사회적 차원에서 이러한 평온함은 공동체의 무분별한 갈등을 억제하고 신뢰의 자본을 축적하는 토대가 된다. ‘변동불거’의 급류 속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도생의 불안에 매몰될 때 공동체는 파편화되기 쉬우나,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정의와 연대의 가치를 평온하게 견지할 때 사회적 탄력성은 강화된다. 변화의 속도에 함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사회, 즉 '변해야 할 제도'를 바꾸는 용기와 '지켜야 할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평온함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그 사회는 진동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성숙한 민주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구별하는 지혜


심리학적으로 구별하는 지혜는 자신의 내면과 외부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의 정점이다. 우리는 종종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상처나 타인의 시선에 매달려 용기를 낭비하거나, 반대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자신의 나쁜 습관과 경직된 사고방식을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며 평온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하곤 한다. 지혜로운 개인은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이 '수용해야 할 삶의 조건'인지, 아니면 '직면하여 돌파해야 할 과제'인지를 냉철하게 분별한다. 이 분별력은 정체된 자아를 깨우고, 에너지를 투입해야 할 곳과 내려놓아야 할 곳을 정확히 가려냄으로써 삶의 효율성과 의미를 극대화한다.

또한, 이러한 지혜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나다움'을 유지하는 심리적 기제다. ‘변동불거’의 시대에는 수많은 새로운 정보와 가치관이 쏟아져 들어오며 우리를 유혹하거나 위협한다. 이때 구별하는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시대의 유행에 휩쓸려 자아를 상실하거나, 변화가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극단에 빠지기 쉽다. 지혜는 외부의 변화를 나의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흡수하되 내면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는 것들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한다. 즉, 무엇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무엇을 흘려보낼지를 결정하는 이 지혜가 곧 한 개인의 인격과 성숙도를 결정짓는 척도가 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구별하는 지혜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집단적 통찰력으로 나타난다. 모든 것이 변하는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는 끊임없이 갈등을 겪는다. 이때 사회적 지혜는 단순히 갈등을 무마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대가 반드시 개혁해야 할 제도적 폐단과 어떤 변화 속에서도 끝까지 수호해야 할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명확히 가려내는 일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사회적 시스템은 과감히 변동시키되 인간 존엄이나 자유, 평등과 같은 보편적 가치는 불거(不居)의 영역으로 지켜낼 때 그 사회는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결국 지혜로운 사회란 변화를 무조건 찬양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 변화가 우리를 더 나은 인간다움으로 인도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공동체다. 이러한 구별의 지혜가 작동할 때 사회적 갈등은 파괴적인 충돌이 아닌 새로운 질서를 향한 생산적인 진통이 된다. ‘변동불거’의 시대에 공동체가 발휘하는 이 구별의 지혜야말로 세대 간, 계층 간의 간극을 메우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본이 될 것이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내리는 닻


2026년도 ‘변동불거’를 실감할 수 있는 수많은 변화의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 도전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한 시련이 아니라 우리 안의 낡은 관습과 경직된 사고를 깨뜨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역동적인 기회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변화는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고통을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자아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변해야 할 것을 변하게 하는 용기를 통해 삶의 외연을 넓히고, 변하지 않는 본질을 붙드는 평온함을 통해 내면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이 용기와 평온함이 구별하는 지혜와 만날 때 ‘변동불거’의 시대는 더 이상 불안의 소용돌이가 아닌 인간 완성을 향한 값진 여정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각자의 마음속에 단단한 닻을 내려야 한다. 그 닻은 거센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고 다음 항해를 준비하기 위한 ‘안전기지’다. 닻을 단단히 내리고 두려움 없이 개인은 끊임없는 자기 갱신을 통해 생명력을 유지하고, 사회는 인간 존엄이라는 불변의 가치를 수호하며 변화를 경영해 나가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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