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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장 안무의 '기억의 지속-두엔데', 살바도르 달리를 오마주한 창작 플라멩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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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장 안무의 '기억의 지속-두엔데'
9월 16일 오후 7시 30분, 은평문화예술회관 문화예술센터에서 제28회 SIDance(시댄스) 서울세계무용축제가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파리에 본부를 둔 유일한 공식 무용 국제기구) 한국본부 주최로 트리플 빌(롤라 장 - '기억의 지속-두엔데', 그루포 타피아스 - '유령들', 비토르 하마모토 - '실종된 이름들')이 공연되었다. 이 가운데 플라멩코를 안무한 롤라 장(Lola Chang, 건국대 대학원 초빙교수)은 한국 대표 플라멩코 아티스트로 영원한 현역이다. 그녀는 플라멩코의 빛나는 해석으로 반가사유상의 고요를 우회하여 살바도르 달리의 푸른 원색의 바다를 사유한다.
플라멩코 안무가 롤라 장은 스페인 세비야의 명문 마틸데 코랄 학교(La Escuela Matilde Coral)에서 플라멩코를 공부하고 Fundacion Cristina Heeren 외 주요 장르별 유명 마스터에게 전수해, 한국인 최초 공식 학위를 취득했다. 피 끓는 청춘은 귀국 후 학계로 진출하지 않고 무용 현장에서 플라멩코를 이식하는 데 헌신해 오고 있다. 그녀는 국립오페라단의 '카르멘' 안무로 활동을 시작,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극장 대극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등 주요 공연장에서 안무를 맡았으며, 제11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무용부문 최고 안무가상을 수상으로 상종가를 쳤다.

'기억의 지속-두엔데'는 인간 내면의 잔존 기억과 감정이 시간 속에서 반복 변주되며, 두엔데(Duende)를 통해 갈등과 상처가 해방과 치유로 이어지는 과정을 담는다. 그녀의 플라멩코는 뜨거운 바다에서 익어가는 소금꽃을 닮아있다. 안무가 롤라 장은 “기억은 선형적 흐름이 아닌 주관적이고 비선형적인 시간의 층위를 가진다”라며,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회화와 맞닿은 시공간적 초월적 무대를 선보였다. 롤라는 자신의 몸을 다 연소하고 나서야 춤을 멈춘다. 결론부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강인함, 슬픔과 치유가 동시에 녹아내리는 장엄을 철학적 장면으로 압축하였다.

안무가는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에서 영감을 받아 시간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진다. 현대의 기계화된 삶과 디지털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내면의 고독과 분열 속에 머물러 있고, 전쟁과 분쟁은 오히려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플라멩코 '기억의 지속-두엔데'에는 그림, 시, 노래가 꿈꾸는 몽상가의 ‘열정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창의적 예술가 롤라 장은 자신의 심상을 바다에 비추면서 몽상의 도피를 응원한다. 롤라의 꿈도 한때는 그러했었다. 연(緣)의 시작은 그랬다. 바다가 열리고 파도는 기억을 데려왔다가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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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장 안무의 '기억의 지속-두엔데'

아반돌라오(Abandolao): 첫 만남은 땅의 리듬처럼 단단하고 바다의 숨결처럼 순수하다. 땅고(Farruca-Tangos): 사랑은 빛처럼 가볍지만, 그 끝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막간(Interlude): 바다를 회상한다. 같은 파도가 밀려와도, 언제나 다르게 빛난다. 불레리아스(Bulerías): 시간은 우리를 갈라놓고, 기억은 다시 엮어낸다. 막간(Interlude): 바다를 회상한다. 반복되는 파도 속에 다른 기억을 마주한다. 솔레아(Soleá): 시간은 단단하지 않다. 흘러내리는 감각일 뿐이다. 두엔데(Duende):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깜빡이는 불꽃이다. 자연의 이치, 모든 것은 녹아내려 바다로 돌아간다.

'기억의 지속-두엔데'는 ‘기억의 소환’, ‘시간과 기억’, ‘두엔데’의 세 개의 장(場)을 소지한다. ‘기억의 소환’: 파도 소리가 감정선을 자극하고, 남녀가 같은 바다를 바라본다. 플라멩코의 리듬(Abandolao, Farruca, Tangos)은 ‘시간과 기억’의 조화와 균열을 표현한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이 투영된다. 기억의 왜곡과 상실이 춤으로 구체화 된다. ‘시간과 기억’: 숫자 12와 연관된 플라멩코 12박의 불레리아스(Bulerías) 구조 속에서 시간과 기억이 충돌한다. 지팡이(Bastón) 리듬과 거울 장치는 기억이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자기 내면과 대치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두엔데’: 초현실적 환희, 솔레아(Soleá)의 고독과 절규 속에서 정서적 폭발이 일어나며, 두엔데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타오르는 불꽃으로 등장한다. 두엔데는 플라멩코에서 정서적 폭발, 예술적 영감, 인간 내면의 진정성, 혼, 열정이 무대를 통해 드러나는 상태, 관객은 그 순간 몰입하게 되고 감동한다. 롤라 장의 두엔데는 단순한 플라멩코의 정서적 발산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의 무중력 상태로 우주의 모든 사물이나 공간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 완전한 자아를 경험하는 존재론적 순간. 이는 초현실주의 미술이 추구하는 무의식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순간과 맞닿아 있다.

'기억의 지속-두엔데'에서 여성 무용수(롤라 장)는 ‘기억’의 상징, 붉은 의상은 뜨거운 감정, 베이지 의상은 감정적 해방을 드러낸다. 남성 무용수(까를로스 제이)는 ‘시간’의 상징, 시간의 엄격함의 블랙, 내면적 평온의 올리브와 그린 의상이 교차한다. 전반부에는 바다 영상, 시계 오브제, 거울 장치, 그림자 조명이 활용된다. 반복되는 바다 장면은 기억의 데자뷰와 변주, 시계 오브제가 쓰인다. 시간의 덧없음과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그림자 장면은 현실과 기억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무대 위의 무용수와 스크린 위 그림자는 현재와 과거시제를 공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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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 장 안무의 '기억의 지속-두엔데'

'기억의 지속–두엔데'는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지만, 플라멩코의 전통적 미학과 정체성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메에스트로 페페 마야 마로떼(Pepe Maya Marote)의 음원과 음악감독 까를로스 제이의 기타 연주, 플라멩코의 노래(깐떼), 타악기 까혼, 다양한 타악기와 음향 효과가 모두 라이브로 구현되며, 무대의 음악적 밀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특히 ‘시간’이라는 개념을 흐름, 왜곡, 붕괴의 이미지로 풀어낸 연출은 인상 깊다. 반복되는 동작과 변화하는 결말, 파도와 그림자, 마지막 '멜팅' 장면에서의 몰입은 관객을 시간과 기억, 감정의 심연으로 이끈다. 이 작품은 시공간을 초월한 감각의 확장을 통해, 인간이 무중력의 순간을 경험하고 자아의 경계가 해체되는 존재론적 체험으로 확장된다.

'기억의 지속-두엔데'는 시간과 기억, 감정과 존재에 본질적 질문을 던지며, 관객을 예술적 몰입과 철학적 사유로 이끈다. 멜팅 장면에서 무용수, 연주자, 오브제 모두는 녹아내리며 시간과 기억, 감정의 붕괴와 초월적 몰입을 구현한다. 무용수는 온몸을 느리게 비틀거리며 흘러내리고 바닥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기타리스트는 단순하고 동일한 멜로디를 느리게 연주하며 같이 흘러내린다. 기타는 뒤집히고 머리는 무대 바닥을 향한다. 황금 들판의 가을에 일렁거리는 바다를 끼고 추억을 끄집어내어 같이 사유의 뜰에서 플라멩코의 낭만 서사를 꺼내자고 권유하는 일은 아름답다.
롤라 장은 사) 한국플라멩코협회 회장, 한국-스페인 수교 기념 공연 예술감독이다. 그녀는 무용극 '카르멘'을 비롯한 다양한 플라멩코의 제작 및 예술감독을 맡아 한국형 플라멩코의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그의 공로와 예술적 성취는 한국인 무용가 최초로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 훈장 수훈으로 이어졌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ABC의 “동양제국의 두각을 나타내는 무용수” 롤라 장은 '기억의 지속-두엔데'로 플라멩코를 사유하면서 즐기는 본격적인 계기를 만들어내었다. 이번 작품은 한국 플라멩코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 독창적 미학과 창조성을 지닌 예술로 도약했음을 보여준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조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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