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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개인전 '풍요(豐饒)', 긴 안목과 먼 호흡의 작가가 무명의 디자이너를 기리다

설치미술가 조현경의 제7회 개인전 '풍요(豐饒)-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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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조현경 개인전 '풍요'(포스터)
동란 직후 정유년의 마산은 모두가 가난했다/ 모두가 무엇인가 해내어야 하는 시절/ 부림시장 한가운데 목조건물에서 팔남매의 일곱째로 태어났다/ 극장 한편에 화가 문신이 간판을 그렸을 것이고/ 강남극장에서 영화 속 꿈을 이루리라 다짐하였다/ 시장통에는 각지에서 흘러 들어온 장난감들이/ 춤을 추고 부서지곤 했다/ 부림시장 화재는 엄청난 상장 상패 드로잉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화려했던 유년의 꿈은 사라지고/ 오브제를 껴안고 꿈을 이룬 듯 살아간다/ 아직 눈물이 무지갯빛으로 영롱하던/ 가슴 따스하고 풍요롭던 그 시절이 그립다/ 무명 디자이너를 기억한다
조현경(趙顯卿, Cho, Hyun-Kyung) 설치미술가의 '풍요(豐饒)-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Ⅱ'('Abundance-A Monument For Designers(Serialization)Ⅱ')에 탑재된 작품들이 9월 17일(수)부터~29일(월)까지 인사아트센터(5층, 경남관)에서 전시된다. 작가는 존재가치를 상실한 소재들에 조형 요소를 주입하고, 예술적 가치를 소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산이 고향인 작가가 1988년 제1회 개인전 '매립지에서'를 서울 관훈미술관에서 발표한 지 37년 만의 서울에서의 전시회이다. 그해 고향 마산 동서화랑에서도 같은 제목의 전시회를 가졌었다.

조현경은 지난해에 '풍요(豐饒)-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Ⅰ'이라는 이름으로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여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궁핍한 시대에도 위대한 조각가 문신을 배출한 마산에서 조현경은 현대의 물질적 풍요에 반하는 재생에 관심을 분출했다. 그 관심은 현대의 기계, 과학. 기술 문명에 쏠렸다. 현대문명의 부산물인 자동차·전자제품·플라스틱·일상생활 제품의 폐기물이 재활용의 가능성과 색다른 미의식을 고취했다. 조형화에 대한 방법론이 대두되었다. 그의 작업은 생명감을 주입하고, 표현의 내적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구조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Gaea  25-5, 31.5x34.5x53.5, 2025이미지 확대보기
Gaea 25-5, 31.5x34.5x53.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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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a 변신, 34x26x13, 2025
안빈낙도, 41x46, 2025(Gaea 25-4)이미지 확대보기
안빈낙도, 41x46, 2025(Gaea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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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ea 25-5A, 41x4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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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90.5x35x14, 2025
Cosmos, 79x50x16, 2024이미지 확대보기
Cosmos, 79x50x16, 2024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 자신의 과거를 오버랩한 작가는 새것을 잉태해야 하는 운명적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무수한 디자이너의 새것에 쓸려가는 홍수 더미 앞에 그들을 위해 조현경은 기념비를 설치한다. 대단한 발상이다. 창원 성산아트홀. 첫 개인전으로부터 36년 만에 일상의 오브제 작업으로 돌아왔다. 주제인 ‘풍요’는 전후의 어려웠던 기워서 신던 양말을 떠올렸다. 작가 조현경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 표현을 통해 지속적 조형 탐구를 모색하고 있다. 그의 오브제 작업은 정신과 가치를 존중했던 과거와 오늘날의 부끄러운 풍요를 대비시킨다.

작가 조현경은 미술의 여러 갈래를 섭렵한 뒤, 설치미술로 영역을 넓힌다. 오브제의 아름다움에 빠지며 오브제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서사를 탄생시킨다. 조형 작업은 평면과 입체로 나뉜다. 조현경의 작업은 설치 작업보다는 오브제 작업에 가깝다. 평면 작품의 한계성에 시각적인 한계에 부닥쳤다. 하지만 오브제 작업은 주변의 물체. 사물, 대상이 화자로 나서며 입체적이며 모든 방향과 각도에서 시선을 유도하는 소재가 된다. 자신의 조형에 대한 뚜렷한 태도를 견지함으로써 작품 구조에 역동성을 가하는 작가 의식을 보인다.

폐기된 부품의 최초 신상품을 만든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열정, 수고로움에 대한 의식이나 제(祭)와 같은 작가의 관심은 설치작품이 된다. 작가는 대학 시절 이래 지금까지 다양한 방법과 주제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작가는 그 표현 방법으로 전통적인 그리기 기법에서 출발하여 점차 입체화 설치 작업으로 변화시키면서 레고처럼 모듈화하여 쌓기. 널어놓기. 조립하기. 침전 등의 기법으로 재활용(Recycling)의 작품화라는 현대적 시각으로 예술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가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물체들이 미적가치를 소지한 조형적 요소로 탈바꿈되어 있다.

조형예술가(Plastic Artist), 플라스티스트(Plastist) 조현경은 더미에서 재료를 찾아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여 성형을 한다. 3차원적·비미술적 매체를 도입하여 그림의 평면성을 어김을 감행한 아상블라주(assemblage)를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설치 작업은 주변의 모든 티끌 하나까지도 설치미술의 재료로 삼는다. 작가는 재료들은 생활 속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지만 안목을 가지고 선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계나 전자 부품들은 현재의 공업. 1T의 세계를 재구성할 수 있는 질료가 되기에 ‘현실의 제시’나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이라는 명제에 딱 들어맞는 재료이다.

天, 46x41, 2025이미지 확대보기
天, 46x41, 2025
地, 46x41, 2025이미지 확대보기
地, 46x41, 2025
人, 46x41, 2025이미지 확대보기
人, 46x41, 2025
R & Babel, 2022이미지 확대보기
R & Babel, 2022
욕망1, 350x200x30, 2021이미지 확대보기
욕망1, 350x200x30, 2021
오페라의 유령, 39x67x22, 2018이미지 확대보기
오페라의 유령, 39x67x22, 2018
전쟁, 2020이미지 확대보기
전쟁, 2020
조현경은 설치미술 작업 이전에 인체를 모티브로 한 제2회 개인전 유화, 구상작품전(조현경 모습전, 1993, 마산 예인화랑), 아크릴과 판화 작품, 비구상과 추상의 장르를 다룬 제3회 개인전(서울 조형갤러리, 마산 성안백화점 전시관, 1996), 풍경화와 인물화 수채화전의 제4회 개인전(구복예술촌 초대, 2011), ‘old& Recent’ 유화 작품으로 연 제5회 개인전(갤러리 3325 초대, 2011)을 거치는 장르 유희를 하고 있다. 이제 작가는 일상의 진부한 현상을 감각적 사건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심취해 있다. 역시 방점은 이음을 중시하는 오브제 작업이다.

올해에도 '풍요(豐饒)-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 연작은 '우리 세상은 이렇게도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라는 제시와 주장을 담으며 실험·연구 중인 침전과 퇴적 장르를 새로이 내보인다. 미술평론가 강선학은 올해 작가의 전시회를 ‘욕망을 보이는 풍요의 장치’라고 표현한다. 조현경은 대학 시절의 은사들인 최붕현 이경석으로부터 추상화풍, 권영호로부터 구상화풍을 섭렵하였다. 조현경은 '빈한한 예술'-아르떼 포베라에 동조하며 설치미술가 K. 슈비터즈의 ‘메르쯔 빌터’, 아르망과 세자르 등의 ‘신사실주의’, M. 뒤샹과 백남준, F. 스텔라를 존경한다.

전시작의 소재들은 형태와 물성, 조합의 양식, 치열한 작가정신에서 의도적이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작가는 홍익대 대학원 시절, 단색화의 태두 박서보 화백의 “눈앞의 유혹에 독배를 마시지 마시게”, “화가의 길은 긴 호흡과 먼 안목으로 치열하게 때로는 천천히 우보의 길을 내디뎌야 한다네.” 같은 말씀을 간직하고 예술가의 지침으로 삼는다. 은사들인 임범재의 ‘미학’. 이일의 ‘서양미술사’, 안희준의 ‘한국회화사’를 기억하며, J. Pontormo, Rosso, Parmigianino 중심의 ‘이탈리아 초기 매너리즘 회화에 관한 연구’ 논문을 지도한 최명영 교수를 잊지 못한다.

조현경(설치미술가)이미지 확대보기
조현경(설치미술가)
조현경 작업장이미지 확대보기
조현경 작업장

기술은 매체를 대신하며, 작가에게 상품은 표현 매체다. 이번 전시의 오브제들은 확장된 서술의 방법으로 부각된다. 조각가와 흡사한 작가 조현경의 작업 도구는 전동드릴, 펜치, 망치, 니퍼, 송곳, 평필, 줄톱 등이다. 조현경의 예술품이 창작되는 곳은 정수예술촌이다. 최전방 철책의 추위를 무색게 하는 작업장은 창원에서 왕복 100km 거리에 있다. 작가에게 수장고는 필요품이어서 작업의 성격상 도회지가 어울리기에, 재료 구매가 쉬운 집 근처에 방 두 개를 얻어 쓰고 있다. 조현경은 곧 고희를 맞이한다. 늘 관람객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현대성을 추구한다.

조현경의 작업은 형태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이질을 통해 내면을 드러낸다. 그에게 과거의 사물은 우리가 현대사회를 읽어 내는 기호이자 상징이다. 여러 갈래의 미술을 경험한 결과를 바탕으로 한 삶이자 사회적 발언으로서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 조현경은 자신의 어법으로 상품의 서사를 만들어낸다. 미술을 통해 세계를 읽어 내려는 그의 어눌한 어법은 거부와 부정의 몸짓으로 드러나며, 조형적 성취보다 인간조차 상품으로 소모되지 않도록 하려는 안간힘을 보이며, 저항 결핍 유희 욕망 등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 이번 전시가 좀 더 확장된 작품 세계로 읽히기를 바란다.


장석용 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제공 조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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