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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해결의 절박함, 합의 중심 민주적 문화 확산 '촉발'

[힐링마음 산책(306)] 갈등은 성장의 동력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무효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한 가운데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무효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은 현재 사회적으로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큰 혼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런 현상에 대해 많은 염려가 있다. 이런 염려의 기저에는 조화와 화합이 바람직하다는 유교적 문화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분쟁과 갈등을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빨리 화합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본질적인 원인은 도외시하고 외면적인 조화만을 추구하는 피상적인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갈등은 항상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나만 있으면 갈등이 생길 수 없다. 그래서 갈등 관리가 미숙한 사회일수록 갈등을 피하려고 한다. 그 결과로 갈등을 긍정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갈등 상황에서 선호되는 해결책은 회유나 압력을 통해 모든 주체를 동일하게 만들려고 하는 방법만이 우선시된다. 소위 “좋은 말로 할 때 못 알아들으면” 갈등을 이루는 상대방을 없애는 방법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 상대방을 제거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갈등의 두 주체는 생존을 위해 온갖 모략과 중상을 동원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에 몰입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화해하기 위해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를 대화와 타협의 대상으로 인정하려는 목소리는 크고 강한 목소리에 묻히고 만다. 타협하는 것은 지는 것이고, 타협을 주장하는 사람은 ‘배신자’나 ‘상대의 앞잡이’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런 문화에서는 항상 ‘한목소리’가 제일 좋은 상태다. 여러 사람이 노래를 불러도 각자 서로 다른 멜로디를 부르면서도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기보다 모든 구성원이 한목소리를 내는 ‘제창(齊唱)’이 선호된다. 그리고 대개의 조직에서 그 한목소리는 제일 힘센 사람의 목소리다. 한 조직에서도 목소리는 하나여야 한다. 그 강자 옆에는 그 한목소리에 맹목적으로 맹종하면서 한목소리를 지켜주려고 온갖 잔머리를 굴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강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하나씩 주면서 그런 행동을 강화한다.

그동안 심리학자들도 갈등에 대해 많은 오해를 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갈등을 싫어하고 평온하고 안정된 상황을 선호한다는 가설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런 가설에 따르면, 갈등은 조직에서나 개인적으로 불안과 긴장을 조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이 좋다. 그래서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들을 연구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가설이 잘못됐거나 최소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과 더불어 갈등을 오히려 증폭하려는 성향도 동시에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21세기 벽두에 심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긍정심리학'의 문을 연 대표적 학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flow)' 이론으로 이 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몰입(沒入)은 그가 인간의 행복과 성취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발견한 개념으로, 몰입 상태는 개인이 특정한 활동에 완전히 집중해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릴 정도로 몰두하는 경험이다. 이 몰입 상태에서 사람은 행복감이 증가하고, 창의성이 증진되며, 자기 효능감이 향상된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도전과 능력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즉, 몰입은 과제의 난이도가 개인의 능력과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발생한다. 만약 능력에 비해 과제의 난이도, 즉 도전이 너무 쉬우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과제 난이도에 비해 능력이 부족하다면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몰입은 즐거운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춰 과제의 난이도를 조정하려고 한다. 장기 게임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상대가 실력이 너무 모자라 백전백승하는 상황에서는 지루함을 느끼고, 과제 난도를 높이기 위해 차나 포 또는 둘 다 떼고 게임을 한다. 그래야 게임을 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는 과제 난이도도 다를 수 있다. 각 사람이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제일 적절한 수준의 균형이 있다.

또 다른 영역인 인지발달에도 갈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지발달은 갈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갈등이 없으면 기존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구태여 심리적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발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발달은 변화다. 변화하려면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즉 기존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다면 구태여 변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최소 노력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존재다. 불필요한 노력에 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먼저 갈등의 역기능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먼저 관계가 악화되고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갈등이 깊어지면 개인 간이나 집단 간 신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단적 대립이 발생한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감정적으로 격해지면 사회적으로 불안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또한 소모적인 경쟁이 발생한다. 갈등 해결에 에너지와 자원이 과도하게 소모되기도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갈등이 일어나면 학연이나 지연에 기대어 해결하려고 하거나 상하 관계를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또한 권위자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거나 집단의식이나 여론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 이해당사자끼리 합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여론이나 사법부에 의존해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한국 문화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한 대로 갈등에는 중요한 순기능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의 계기를 제공해준다. 갈등이 없다면 변화도 없고 문제 해결도 없다. 비록 불안하지만 문제를 양지로 끌어내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야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개인적으로는 인지가 발달하고,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규범이나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창의적 사고가 발달하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도 결국 문제 해결의 절박함에서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개인과 집단이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의사소통과 문제해결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권위자에게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권위주의적 문화에서 벗어나고,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현되면서 참여와 합의 중심의 민주적 문화가 확산된다.

개인이나 사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잘 이용해 성숙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지혜와 노력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성숙과 성장은 구호만으로 이룩할 수 없다. 성숙과 성장을 이끌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정확한 자기 인식을 할 수 있는 ‘자기 객관화’ 능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반응을 마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결여돼 있다면 성숙과 성장은 단순한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

다음으로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共感) 능력이 있어야 한다. 옛말에도 있듯이 ‘너를 알고(知彼) 나를 알아야(知己)’ 승리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있어야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고, 불필요한 감정적 충돌을 피할 수 있다.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상대도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성장과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를 뿐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성숙할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회복탄력성’이 필요하다. 회복탄력성은 실패했을 때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회복탄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은 단순히 실패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아 성장을 이룬다. ‘위기(危機)’는 위태로운(危) 것이지만, 동시에 기회(機)도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도 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에 따르면 문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열쇠는 ‘도전과 응전’이다. 문명이 직면하는 외부적 또는 내부적 위기를 뜻하는 ‘도전’에 대응하는 방식이나 과정을 뜻하는 ‘응전’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 발전과 번영이 이루어진다. 반대로 응전에 실패하면 쇠퇴나 붕괴로 이어진다. 한국의 미래는 갈등에 대처하는 성숙한 방식에 달려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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