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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재취업, '乙'로의 지위 변화 기꺼이 감수해야"

[힐링마음산책(290)] 고령화 시대와 양상문 코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07-10 09:20

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요즘 프로야구계에 과거의 화려한 직책나 명예를 뒤로 하고 낮은 자리에서 재취업하는 올드 스타들이 잇따라 나와 고려화 시대 재취업 모델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4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KBO리그 LG 트윈스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 요즘 프로야구계에 과거의 화려한 직책나 명예를 뒤로 하고 낮은 자리에서 재취업하는 올드 스타들이 잇따라 나와 고려화 시대 재취업 모델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즌의 반환점을 돌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변화의 흐름을 축약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 맞이한 최대의 현상은 '고령화(高齡化)'다. 일반적으로 출산율이 낮으면서 수명은 긴 국가들에 고령화 현상이 발생하는데, 2018년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인구 중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5세 미만 유아 인구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2050년에 이르러서는 노인 인구가 2019년 대비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고령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일 먼저 선수들의 현역 생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올해도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새로운 기록들이 작성되고 있다. 그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올스타전 최우수선수의 명예를 안은 최형우 선수다. 그는 이 게임에서 4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팀 승리를 견인했다. 40세 7개월 4일에 이 영광을 안은 그는 최고령 '미스터 올스타'에 오르는 기쁨도 맛봤다. 그는 올스타전에서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 소속 팀이 전반기 리그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고 있다. 타자인 최 선수뿐만 아니라 마무리 투수를 맡은 오승환 선수도 41세 11개월 21일의 나이로 출장해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합쳐 올스타전 최고령 출장 기록을 세웠다. 올스타전에 뽑혔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듯이 오승환 선수도 소속 팀이 전반기 상위권에 머무르는 데 마무리 투수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감독만 3번•단장까지 역임한 양상문, 투수코치 취임 "신선한 충격"


신체적인 능력이 최우선으로 중요시되는 체육계에서 이들이 장수(長壽)할 수 있는 것은 본인들의 각고의 훈련과 노력이 물론 필수적이지만 또 하나 중요한 요인은 사회적으로 나이에 따른 은퇴 압력이 없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30세는 이미 노장(老將)으로 취급받으면서 암묵적으로 운동선수들이 현역 은퇴를 하는 시기라고 자타가 공인했지만, 이제는 본인의 능력이 따라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선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제는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현역 생활을 연장하기 위해 몸 관리에 배전의 노력을 쏟는 분위기가 되어 가고 있다. 선수 생활이 길어질수록 수입도 많아질뿐더러 은퇴 이후의 자리도 보장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를 이끌고 있는 최형우 선수와 오승환 선수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고령화와 맞물려 중요한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이 '재취업(再就業)'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출생률이 급격히 늘어난 시기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하면서 이들의 재취업이 선진국에서는 큰 사회 경제적 이슈가 되었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 2차를 합해서 1955년부터 1974년까지 출생아 수가 한 해 90만 명이 넘었던 세대를 말한다. 1차 베이비붐 세대는 현재 노년층에 진입했고, 이들의 부모는 대개 80세 이후다. 또한 자녀는 20대에서 30대에 걸쳐 있다. 이들은 아직도 노부모의 봉양과 자녀들의 양육을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계속 경제적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세대다.

이제는 은퇴 후 '2차 경력(second career)'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는 좋은 예가 최근 야구계에 충격을 준 양상문 전 야구감독 겸 단장의 코치 취임이다. 양 전 감독은 KBO리그에서 감독만 3번이나 지낸 '거물급' 인사다. 2018년에는 단장으로 야구단 전체를 이끈 경험도 있다. 프로야구에서 1군 감독과 단장을 모두 지낸 야구인은 양 전 감독이 처음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은 그를 포함해 6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현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며 경기를 운영하는 감독과 전체 직원들을 아우르며 야구단을 맡아 운영하는 단장의 경험을 다 같이 한 그가 이번에 코치직을 맡았다는 것은 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생2모작' 원하는 은퇴자들 낮은 위치에도 개의치 않아야

최근에는 감독을 한 후 다른 팀 코치로 들어가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이 또한 재취업이라는 현대의 추세와도 맞물리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장까지 맡았다가 코치로 돌아온 건 양 코치가 처음이다. 60대 중반을 향하는 나이를 감안하고, 지금까지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가 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간에는 "남자로서 꼭 해볼 만한 세 가지 직업이 있다. 해군 제독과 프로야구 감독 그리고 교향악단 지휘자다"라는 말이 있다. 이 세 가지 직업은 각각 다른 영역이지만 그 직업의 특성상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일단 상황이 시작되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제독(提督)'은 함대 지휘권을 가진 해군 장성을 일컫는다. 유독 해군 장성에게만 '제독'이라는 명칭을 붙인다. 해군은 그 특성상 일단 육지를 떠나 항해를 시작하면 그 함대의 장이 모든 사항에 대해 절대적 통제권을 가지게 된다. 교향악단 지휘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분위기는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휘자는 곡의 선택이나 해석에서 전권을 가진다. 또 일단 지휘대에 서면 모든 단원에게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로 군림한다.

프로야구 감독들도 선수 기용과 작전에서 전권을 행사한다. 물론 여러 분야 코치들의 조언을 듣지만 결국은 감독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감독이 경기 결과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성적이 나쁘면 경질되기도 한다. 이번에 양상문 코치가 투수코치로 임명될 수 있었던 이유도 부진한 성적을 책임지고 시즌 도중 감독이 경질되고 노장 김경문 감독이 취임했기 때문이다.
전권을 가지고 통제하는 최상의 지위에 있으면 자긍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통제받는, 신분이 낮아진 자리를 맡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제2의 감독'이라는 수석코치가 아니라 투수의 조련과 훈련을 맡는 투수코치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수직적 사회 분위기에서 일개 코치 자리로 내려간다는 것은 소위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감독과 단장까지 역임한 양상문 전 감독이 투수코치를 맡는다는 것은 절대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양상문 코치가 일반의 상식을 뛰어넘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2022년 그는 무보수로 한국 여자 야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감독과 단장까지 지낸 그가 격에 맞지 않게 '불모지' 여자 야구대표팀 사령탑에 자원한 것이다. 그 결과 2023년 여름 홍콩에서 열린 '2023 여자야구 아시안컵'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때 그가 한 명언은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하겠어요?"였다. 코치로 현장 복귀하는 데 감독·단장을 역임한 것을 개의치 않았느냐는 질문엔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한국 야구를 위해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팀의 발전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겼으니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재취업에 실패하는 큰 이유는 변화하려는 마음에 '부적응' 탓


처음 직장에서 퇴임한 후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처음 직장보다 낮아지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 두 번째 취업을 하는 경우 경제적인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아진다. 소위 "갑(甲)에서 을(乙)"로 지위가 바뀌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할 때는 나이가 많은 하청업체의 사장에게도 큰 소리를 치며 접대를 받지만 재취업은 하청업체에 취업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이제는 대기업의 나이 어린 직원에게 대접하는 위치로 바뀌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권을 가지고 있던 감독에서 지시를 받고 지시대로 수행하는 코치로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재취업에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임한 후에도 현직에 있을 때의 지위와 그에 걸맞은 대접을 원한다면 재취업의 기회는 그만큼 적어진다. 그리고 재취업의 적기를 놓치게 된다. 재취업은 퇴임 후 이르면 이를수록 기회가 많아진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적을 때, 그리고 경험이 낡아지기 전에 재취업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단장과 감독을 두 번씩이나 역임한 양 코치가 한 말, "과거에 제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아요.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생겼는데 얼마나 좋아요? 지도자는 현장에서 선수들을 가르칠 때가 제일 행복해요"라는 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재취업뿐만 아니라 3차, 4차 재취업도 가능할 것이다. 야구계의 또 다른 전설인 82세의 김성근 감독이 프로야구 감독에서 물러난 후 독립구단을 거쳐 현재는 '최강몬스터팀'을 이끌고 있는 것은 큰 교훈으로 다가온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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