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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심성과 사회성의 조화로운 관계로 성숙한 삶 실현

[힐링마음산책(285)] 삶은 관계의 그물망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4-05-08 09:23

우리 인간의 삶은 사회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심성, 사회성, 영성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성이 성숙된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이미지 확대보기
우리 인간의 삶은 사회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심성, 사회성, 영성이 조화를 이룰 때 인간성이 성숙된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교 이론물리학센터 교수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저서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양자물리학에 대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계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촘촘한 그물망이다. 대상은 처음부터 고유한 속성을 지닌 자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관련 속성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관계적 존재다. 사물의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하며, 상호 작용하는 대상이 달라지면 속성도 달라질 수 있는 두 대상 사이의 관계다. 한마디로 이 세계는 확정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의 그물망이다."

필자는 양자물리학은커녕 일반물리학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택하고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이 "그 어느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말할 만큼 난해한 '양자역학'에 대해 인용한 것은 놀랍게도 카를로 로벨리 교수가 쓴 위 인용문을 심리학에 적용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자아의 효율적인 조정 통해 욕구와 규범 관계 유지 필수


심리학, 특히 성격심리학과 상담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성격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무엇과 무엇의 관계가 중요한지에 대해 이론에 따라 다를 뿐이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심리적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일 먼저 사람의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각 요인들 사이의 관계의 중요성이다. 이 중요성에 천착한 이론가는 유명한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이다. 그는 화학과 물리학의 원칙을 기반으로 사람의 마음은 세 요인, 즉 이드(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는 사람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에 속하는 이론이 되었다. 이 중 '이드'는 원초적인 충동으로 구성된 '본능'과도 같은 것으로 '쾌락의 원리'에 따라 어떤 욕구든 충족시키려고 한다. 이드에서 발달된 '자아'는 이드의 모든 욕구를 즉시 만족시킬 수는 없으며 주변 세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현실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자아는 이드와 타협해 처벌을 받지 않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을 모색한다. 동시에 이드와 자아는 부모나 사회의 규범과 도덕이 내재화된 초자아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초자아는 양심과 자아이상(自我理想)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실적 여건을 도외시하고 무조건 양심과 자아이상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완벽의 원리'에 따른다.

각각 다른 원리를 따르는 세 구성 요소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우리의 삶은 성숙하고 즐거워지거나 혹은 미성숙하고 갈등이 많은 삶을 살게 된다. 이런 관계를 '역동'이라고 부른다. 즉 마음의 역동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 세 요소들 중에 중재자 역할을 하는 자아가 중요하다. 충분히 발달한 자아는 이드의 욕구를 통제하고 만족을 지연시키면서 현실 속에서 그 대상을 찾는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동시에 자아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초자아를 만족시키면서 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이드의 욕구를 자아와 초자아가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사회적 처벌이 따른다. 반대로 초자아의 힘에 굴복하면 즐거움은 없이 사회적 규범에 철저히 순응하는 소극적 삶을 살 뿐이다. 자아의 효율적인 조정에 의해 욕구와 사회적 규범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성숙한 삶이다.

사람에게 필요한 두 번째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다. 우리는 '나'와 '너'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 관계를 중시한 이론가는 프로이트의 제자 중 첫 번째로 그의 곁을 떠난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다. 점차 성적(性的) 쾌락의 만족에 치중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인간의 사회성을 존재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우월성과 열등감, 그리고 너와 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론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보다 우월성을 추구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보았다. 하지만 점차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우월성의 추구는 사회적 관계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결국 우월성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이 목표로 정한 기준을 만족시키는 것으로 수정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면 우월성을 느끼고 만족한다. 반대로 이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열등감을 느끼고, 이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더욱 분발하게 된다. 그리고 노력을 통해 목표가 달성되면 우월감을 느끼는 동시에, 더 높은 기준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목표 달성 위한 열등감은 타인과 좋은 관계 유지 비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들러에 따르면 열등감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의 동기와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우월감을 충분히 느끼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자신이 과거에 달성한 목표를 기준으로 더 향상된 목표를 설정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나 인정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자신의 욕구에 따라 스스로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즐거움을 충분히 알고 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도 과도한 간섭을 하지 않게 된다.

세 번째 중요한 관계는 초월적 존재 혹은 절대자와의 관계다. 최근에 심리학에서 점차 많은 관심을 가지는 새로운 영역인 영성(靈性)이다. 프로이트의 막내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로부터 아동정신분석을 배운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제일 발전시킨 이론가로 평가받는다. 프로이트를 비롯해 인간의 발달을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청년기에 이르러 발달이 최정점에 달한다는 이론을 주장한 데 반해 노년기까지 발달이 지속된다는 '전생애발달심리학'을 주창했다.
마지막 발달단계인 노년기는 '자아통합 대 절망감'으로 요약할 수 있는 발달과제를 수행하는 시기다. 자아통합은 죽음을 앞두고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성공한 일뿐만 아니라 실패하고 실수한 일까지도 자신의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거에 성공한 일은 다소 과장하면서 자긍심(自矜心)을 지키기 위한 자료로 사용한다. 필요할 때마다 이 자료를 꺼내서 사용한다. 반대로 실패하거나 부끄러운 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애써 외면하면서 마치 자신의 삶이 아닌 것처럼 여기고 살아간다. 자아통합은 이렇게 감추고 외면한 자신의 과거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수용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감추고 외면하고 살아온 부분이 더 많으면 노년기에 '절망감'을 느끼며 살게 된다. 자신의 일생이 실패한 삶이었다는 자괴감이 드는 동시에 다시 만회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노인들은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원망하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불평한다.

실패•실수까지도 인정해야 '지혜'라는 미덕 갖추게 돼


에릭슨에 따르면 자아통합을 잘 이룬 노인들은 '지혜'라는 미덕을 갖추게 된다. 지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졌거나 남이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하고 성공적인 경험을 많이 한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겸손의 바탕 위에서 지금까지 외면했던 삶의 단편들을 결국 자신의 삶이었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생기는 선물이다. 물론 자아통합이 노년기에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도 자신이 몰두해 있는 삶에서 여유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 거리를 얻을 수 있는 노력, 즉 직접 경기를 하면서도 관전자의 관점을 가지도록 노력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덕성(德性)이다.

노년기에 자아통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 에릭슨은 '궁극적 타자(Ultimate Other)'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년기 이전의 여러 시기마다 바람직한 자아발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 교사, 친구, 배우자나 연인, 그리고 자녀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자아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중요한 타인들(Significant Others)'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타인들과 달리 궁극적 타자는 사람이 아니다. '궁극적(窮極的)'이라는 용어가 암시하듯이 종교적 절대자이든지 '운명'이나 '팔자' 등과 같이 삶을 지배하고 영향을 준다고 여겨지는 초월적 존재 혹은 힘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이라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중요하다. 하느님이 자신의 삶을 이끌어 왔다고 믿는다면 자신의 기준으로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겨질지라도, 또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를지라도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승화시킬 수 있다. 그러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자아통합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여러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주요 이론가들이 이 관계들 중에서 어느 것이 우리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주장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 중 어느 것을 배제하거나 또는 어느 것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마음속의 여러 요소 사이의 심리적 관계인 심성(心性),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인 사회성(社會性), 그리고 초월자와의 영적 관계인 영성(靈性)을 모두 조화롭게 맺으며 살아갈 때 인간성(人間性)이 성숙한 삶을 실현할 수 있다. 자신을 사랑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절대자와도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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