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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50)] 진정한 자아 찾아가려는 늦은 몸부 영화 '역로'

아쿠쇼 코지, 후카츠 에리, 키무라 타에가 출연한 영화 '역로'.이미지 확대보기
아쿠쇼 코지, 후카츠 에리, 키무라 타에가 출연한 영화 '역로'.
이제 노령인구의 폭증으로 실버시대가 도래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을 맞이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거나 준비하는 중이다. 인생 60부터라는 말은 가족부양의 의무를 마치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나이를 뜻하는 것일까?
얼마 전 누군가 물었다. 20대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니면 여유가 생기면 남을 도와주기 위해 순간마다 애쓰고 긴장하며 살아왔다. 그만큼 인생을 정열적으로 불사르며 살아온 것 같다.

그러므로 지나간 날들의 선택을 다시 하라면 당시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다른 길을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어쩌면 최선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최선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살아왔고 그 가치들을 바꾸고 싶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만 남은 것 같다.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무한긍정이었던 나답게 죽음 이후의 세계를 찾을 것이다. 영화 '역로'라는 작품에서는 정년 퇴직 후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 인물을 보여준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기는 하지만 그의 시도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려는 늦은 몸부림이었고 젊은 날의 선택을 부정해버렸다고 보여진다. 대부분의 실버들은 젊은 날의 선택이 최선임을 믿는다. 의심이나 회의가 들더라도 이미 선택한 가정이나 직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가치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선택한 인생에 후회는 있어도 없어져야 하는 것이다.

함께한 세월이라는 가치가 만들어내는 사랑과 정과 가족이라는 단어들은 젊은 날의 선택을 최선에서 확신으로 강화시킨다. 만약 그러한 인생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까?

일본 중견은행에서 정년 퇴직한 남자 주인공은 어느 날 아내에게 사진 촬영을 위한 여행을 떠난다고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좋은 집안 출신의 현숙한 부인과 잘 성장한 자식들을 두고 성공적으로 직장 생활을 마친 남자의 행방불명은 휴가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길다.

역시 그와 비슷하게 정년을 앞둔 형사는 예리한 직관과 수사력으로 그 남자를 파악한다. 지방 고등학교를 나와서 흙수저 출신의 그가 성공을 위해 좋은 가문의 부인을 얻고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많은 것들을 희생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가 촬영한 사진들이 특정 지역의 자연 풍광만 담은 사실과 은행 출금 내역을 단서로 그에게 오래된 연인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형사의 탐문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들은 놀라웠다. 그가 좋아했던 은행 여직원과 새 출발을 하기로 하였으나 그녀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 않았고 대신 여직원의 지인이 그들이 사랑의 도피 자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금품을 노려서 살해한 것이었다. 결국 인생의 종착역에 다가가서 다른 노선으로 갈아탄 것은 위험을 유발하고 살아온 삶을 부정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MBC 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퇴직 후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확실한 것은 가족이나 사랑을 버리고 가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인간은 육신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퇴직 후 아니면 사업을 안정화 시킨 후에 진정한 젊은 날부터 하고 싶었던 자신만을 위한 길을 가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김흥도 감독 역시 그러한 분에 대한 흔치 않은 사례를 이야기해준다. 그가 지난 정권에서 적폐로 분류되어 부당해고 당했을 때 그의 억울함을 풀도록 도와준 시민단체장이었던 정영모님을 기억한다.

그 역시 정년이 훨씬 지난 70이 넘은 나이에 시민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억울해하는 김흥도 감독에 대한 부당해고에 대해 정의를 위해 당시 가해자를 고발하였을 뿐 아니라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최고 권력자들을 상대로 부당한 사안들을 고발하였다.
더욱이 상대방 측의 협박과 회유에도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겠다고 늘 말씀하시다가 경찰 조사를 받으러 대전에서 상경하던 고속버스에서 세상을 떠나셨다. 김흥도 감독은 그가 생전에 자신을 도와준 것에 고마웠지만 불의를 못 참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치적 야심이 있으신 건 아니냐고 여러 번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분이 한 대답은 지금도 김흥도 감독의 눈시울을 붉힌다고 한다. "억울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참을 수 없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순간 새로운 정영모가 태어난 것이었다.

'진짜 신은 존재하는 걸까?'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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