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나리오 작업은 작곡에 해당하며 감독은 지휘자, 배우는 교향악단 단원, 출연진들은 분야별 악기에 해당한다. 영화의 타이틀은 연극의 프로그램과 같고, 그리스 연극의 합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
타이틀의 출현은 영화의 시작과 직접 관계가 없다. 영화는 화면과 줄거리의 시작으로 요약된다. 오프닝 타이틀이 영화의 맨 끝에 나타나도 문제 될 것이 없다. 타이틀에 맞는 음악이 접목되면 음악은 상징적 변용물이 되고 영화와 대비되어 중심 구도를 이룬다.
영화음악에서 음악적 형식은 영화의 형식과 이야기의 전개로 대체된다. 영화음악이 음악적으로 완결 형태를 가지려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치밀한 계획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화음악은 압축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극의 진행을 음악적 논리에 맞추어 영화를 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로 시각적 이미지와 이야기의 전개에 적합하게 음악을 재단해서 조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결정적 대목에서 삽입된 음악은 영화의 포용력을 한층 높인다.
영화음악의 내러티브 중심적 논리와 방법은 상업적인 흥행을 도모하기 위해서 20C 초 할리우드에서 발전되어 지금까지 그 주류가 맥을 형성하고 있다. 할리우드 고전 영화에서 음악이 내러티브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용된 구체적인 장치들이 있다.
몽타주에 있어서 음악은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음악은 몽타주가 시각적으로 부족한 영화에 일정한 리듬감과 연속성을 청각적으로 보완해주면서, 불연속적인 시각 매체를 연속적으로 인지하게 하는 촉매제 기능을 한다.
배경음악은 영화음악 가운데 가장 종속적이고 창조성이 적은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작곡가들에게 반갑지 않은 작업으로 여겨지나, 그렇다고 그 작업이 수월하지는 않다. 오히려 관객이 무의식중에 영화 해독에 도움이 되게끔 길게 이어지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한다.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 1900~1990)가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작곡가들에게 사색의 미로 속에서 내적인 만족감을 주고
누구에게도 무관심한 음악, 내재적 가치가 덜한 이런 종류의 음악을 전문가의 기술적 수완을 통해 실감 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고전 영화에서 사운드와 이미지는 평행주의와 대위법의 상호의존적 관계로 요약된다. 대위법과 평행주의의 양자택일적 논의는 1928년 에이젠슈쩨인 이후까지 진행되었고, 주로 할리우드에서 평행주의가 압도적으로 사용되었다.
이를 비판하고 대위법을 더 가치 있게 수용한 경향은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이며 그 후 모리스 프렌더가스트(Maurice Prendergast)는 영화음악이 대위적으로 접목될 때 가장 실효성이 크다고 하면서 직설적으로 대위법을 권장한다.
그는 “손뼉을 치는 영상에 환호하는 소리를 첨가하는 것은 잉여적 수단이며, 소리가 제3의 정보를 공급할 때 적합한 것은 대위법”이라면서 지지한다. 예전의 영화가 평행주의와 대위법의 관계였다면, 현재 영화음악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협력으로 전환되어있다.
정순영(음악평론가,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