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주도형 오픈랩, ‘내부창업’ 모델 확산
경영진 듣고, 직원이 제안…‘참여형 경영’ 눈길
AI·ESG·신사업까지…회사 전략 바꾼 MZ 감각
[편집자주] ‘오픈랩(Open Lab)’은 기업이 내부 직원의 자율적 연구활동을 통해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실행하도록 설계된 개방형 혁신 플랫폼이다. 기존의 연구개발(R&D) 조직이 기술개발 중심이었다면, 오픈랩은 조직문화와 사업전략의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내부 창업형 연구조직’이라는 점에서 차별된다. 특히 보험업계는 규제 의존도가 높고 변화 속도가 더딘 산업으로 분류되지만, NH농협손해보험은 이 모델을 국내 보험사 중 가장 체계적으로 도입해 사내 인재의 창의성을 조직 혁신의 동력으로 전환한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경영진 듣고, 직원이 제안…‘참여형 경영’ 눈길
AI·ESG·신사업까지…회사 전략 바꾼 MZ 감각
이미지 확대보기특히 2025년 송춘수 대표이사 취임 이후에는 오픈랩이 조직문화 혁신의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송 대표는 ‘직원이 주도하는 자율형 혁신’을 경영철학으로 내세워, 기존의 위임형 제도에서 벗어나 실무자가 스스로 아이디어를 기획·검증·발표하는 구조로 발전시켰다. 올해로 4기를 맞은 NH오픈랩은 젊은 인재의 자발적 혁신이 기업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 젊은 인재들이 움직이는 ‘혁신 실험실’
올해 입사 4년 차인 이동환 과장보(장기보험부)는 일선 조직과의 협업 과정에서 마주하는 비효율과 개선 아이디어를 꾸준히 기록해왔다. 그러나 본사 중심의 업무 환경에서 그것이 실제 제안이나 제도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그에게 NH오픈랩은 ‘머릿속 구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첫 번째 무대’였다.
NH오픈랩은 근속 10년 이내의 계장·과장보급 젊은 직원들이 주축이 되는 사내 혁신조직이다. 대체로 입사 5년 차 전후의 MZ세대(20∼39세)가 중심을 이루며, 이들은 자율적으로 연구 주제를 정하고 약 8개월 동안 탐구와 발표를 이어간다. 일종의 ‘젊은 감각의 사내 R&D 플랫폼’인 셈이다.
참여자들은 회사가 정한 네 가지 핵심 테마인 시너지, ESG, 업무개선, 신사업 가운데 한 분야를 선택해 팀을 꾸린다. 외부 세미나, 스타트업 면담, 벤치마킹 등 현장 탐방을 병행하며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 목표다. 단순히 제안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화 구조 안에서 검증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사내 공모전과는 차별화된다.
이미지 확대보기올해 4기 오픈랩에는 총 16명의 혁신위원이 참여했다. 참여진은 전략채널사업부, 장기보험부, 자산운용부, 경영기획부 등 12개 부서에서 선발된 젊은 실무자들로 구성됐다. 문세웅 계장(농업보험부), 김현우 계장(전략채널사업부), 조윤재 계장(농축협사업부), 진연식 계장(법인영업부)이 각각 신사업·업무개선·시너지·ESG 팀장으로 임명돼 4명의 팀원과 한 조를 이뤘다.
특징적인 점은 직급 중심의 서열 구조를 벗어나, 리더십과 아이디어 역량을 기준으로 팀장을 선발했다는 것이다. 과장보 등 중간직급이 아닌, 창의적 시각과 실행력이 검증된 젊은 계장급 직원들이 팀 리더를 맡아 조직의 변화를 주도했다.
참여 직원들의 만족도 역시 높다. 단순한 사내 과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이 회사의 전략과 연결되는 ‘진짜 프로젝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올해 오픈랩 4기로 참여한 이동환 과장보는 “오픈랩 활동을 하며 회사의 미래 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국내외 혁신사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경영자와 리더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 AI로 업무혁신, 카페에서 고객접점, 풋살장으로 시너지
올해 4기 오픈랩에서는 금융규제 변화, 신기술 동향, ESG 트렌드 등 외부 변화를 분석하며 회사의 사업모델과 접점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각자 소속 부서의 경험을 살려 ‘현장에서 바로 작동할 수 있는 실용형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AI 기술을 활용한 업무개선 방안’이었다. 김현우 계장이 이끈 업무개선팀은 단순한 반복업무 자동화를 넘어 AI 어시스턴트를 활용한 지식관리 시스템 고도화를 제안했다. 이를 위해 삼성SDS ‘리얼 서밋 2025’ 세미나에 직접 참석해 최신 인공지능 기반 업무혁신 사례를 분석했고, 챗봇 기반 보고자동화와 민원응대 시스템 개선안을 도출했다.
문세웅 계장의 신사업팀은 프랜차이즈 카페 제휴형 ‘보험 라운지’ 모델로 눈길을 끌었다. 대형 프랜차이즈를 통해 고객이 일상 속에서 보험상담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게 하는 구상이다. 보험 상담의 문턱을 낮추고, MZ세대 고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혁신적인 발상으로 평가됐다. 실제로 팀원들은 프랜차이즈 본사와의 미팅을 추진하며 상권 분석과 입점 시뮬레이션을 병행했고, 특정 지역 테스트를 전제로 한 실무 제안서까지 완성했다.
조윤재 계장이 리더인 시너지팀은 하나로마트의 옥상 유휴공간을 풋살장과 문화공간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농협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지역 고객의 유입을 늘리고, 스포츠·레저 수요를 활용한 부가수익 창출 모델을 제시한 점이 돋보였다. 농협경제지주와의 협력 가능성까지 논의되며 ‘사내 협력형 신사업 모델’로 기대되고 있다.
진연식 계장이 팀장으로 주도한 ESG팀은 ‘그린 히어로·그린 무브’ 캠페인을 기획했다. 임직원이 직접 참여하는 플로깅(조깅+쓰레기 줍기)과 폐페트병을 활용한 사내 업사이클링 활동 등, 실천 중심의 ESG 프로그램을 구체화했다. 캠페인 성과를 소비자 인식 제고와 브랜드 이미지 향상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적 구상이었다.
이미지 확대보기오픈랩의 진짜 성과는 ‘아이디어’보다 ‘문화’에 있다. 직원들이 단순히 제안을 내는 수준을 넘어 직접 사업계획을 세우고, 임원 앞에서 경영전략을 발표하면서 조직 내 수평적 소통 구조가 자리 잡았다. 경영진은 신입·중간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찾는다.
반대로 직원들은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와 전략적 사고를 직접 경험한다. 농협손보 측은 “젊은 직원들이 스스로 사업을 설계하고, 경영진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수용하는 과정에서 상호 신뢰가 깊어졌다”며 “예전에는 ‘지시’와 ‘보고’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제안’과 ‘토론’이 중심이 됐다. 실패해도 배우는 과정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오픈랩 이후 사내에서는 자발적 제안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프로젝트 발표회에는 타 부서 직원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우고, 팀 간 아이디어 교류나 협업 제안이 이어진다. 과제 발표가 끝난 뒤에는 경영진이 직접 질의응답에 참여하고, 제안된 아이디어 일부는 곧바로 업무 프로세스 개선안으로 반영된다.
NH농협손해보험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오픈랩 제도를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기존의 연구형 조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임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풀뿌리 혁신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회사 관계자는 “혁신은 소수의 전담부서가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만들어가는 생태계”라며 “앞으로도 직원들의 창의적 역량이 회사의 성장 동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석경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ng@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