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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황혼의 혼밥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0-01-01 09:55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입으로 나간 말이 가까운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힐 때가 있다. 침묵이 금인데, 참지 못하고 기어코 내뱉는 백해무익한 말 말 말. 이런 일로 후회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가슴 아픈 경험이 있다.

금실 좋은 노부부가 계셨다. 두 분의 사랑은 애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처럼 천사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두 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셨는데, 어느 날 부인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한평생 둘이 사랑하다가 갑자기 남겨진 남편에게는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냥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슬픈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남편분을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셨지만 왠지 외로워 보였고, 간혹 돌아가신 부인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러다가 그분이 "입맛이 없는데다가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힘드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네, 그러시겠지요."하고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먹을거리 전공자의 알량한 의협심과 위아래 가리지 않고 가르치려는 선생 기질이 발동했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어 드셔야 해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칠 정도로 후회되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성껏 '황혼의 혼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겠는가? 나 스스로 못할 일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분은 "아,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셨다.

필자가 너무도 죄송하게 떠올리는 그 분의 모습은 미래의 우리 모습이다. 부부 중의 한 사람이 떠나면 남은 사람이 겪어야할 삶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삶이다. 이 '황혼의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①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삶 ②건강하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는 삶 ③아픈 데다가 경제적 여유도 없는 삶 ④아프지만 경제적 여유는 있는 삶 등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분은 다행히 ①건강하고 경제적 여유도 있는 삶에 해당한다. 마음만 추스르면 황혼의 혼밥을 지어 드실 수 있다. ②건강하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는 삶에 해당하는 분들은 특별한 반찬 없이 라면이나 편의점 도시락으로 황혼의 혼밥을 드시거나, 탑골공원 등에서 무료급식을 드실 수 있다. ③아픈데다가 경제적 여유도 없는 삶에 해당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정부든 가족이든 돕지 않으면 황혼의 혼밥은커녕 황혼의 삶도 꾸려나갈 수 없다. ④아프지만 경제적 여유는 있는 삶에 해당한다면, 그나마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황혼의 혼밥을 드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에는 미혼이나 비혼에 기인한 청년 1인 가구, 이혼이나 별거에 따른 중년 1인 가구, 사별로 인한 노인 1인 가구가 있다. 이 가운데 노인 1인 가구, 즉 독거노인 가구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독거노인 가구의 가장 큰 걱정은 아픈 것과 경제력 부족이지만, 외롭고 끼니를 챙겨먹기 어려운 황혼의 혼밥 문제도 본질적이면서 실제적인 어려움이다. 그렇다. 언젠가 황혼의 혼밥 대신 따뜻한 집밥을 준비해 그분을 찾아뵙고 죄송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사진없는 기자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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