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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준 밀물현대무용단·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삶의 향방에 관한 의지적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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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4월 27일 저녁 일곱 시에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한국미래춤협회(이사장 김제영 백석대 교수) 주최·주관, 대한무용협회·한국무용수총연합회·전문무용수지원센터·중앙대·백석대·상명대·서울기독대·단국대·공주대·한양대(에리카)후원, 2025 한국미래춤 페스티벌(The 26th World of DANCE, 예술총감독 김제영)이 열렸다. 일군의 열린 지성을 추구하는 무용학자들은 로만스와 순진무구한 묵시적 세계에 걸쳐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場)을 열었다.
참가작은 예술감독이 후학의 안무가를 앞세웠다. 김제영 ‘마루와 사람들’의 '저항 抵抗', 최윤선 ‘Free-Flow Move’의 '크로스로드, Crossroad', 김지안 ‘THE 춤:맥’의 '여흔(餘痕)의 기억', 김경신 ‘모션크리에이티브컴퍼니’의 'Body Snare', 김혜정 ‘블루댄스씨어터’의 'Tomorrow Of Aging', 김승일무용단의 '타인', 이해준 밀물현대무용단의 'Room No. 5', 최은용무용단의 '머무는 시간'이 제전을 달구었다. 그 가운데 'Room No. 5'를 주목한다.

'Room No. 5'는 익숙하고 반복적인 일상 가운데 점차 무뎌지는 감정, 그로 인해 흐려지는 존재의 목적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방’이라는 닫힌 공간은 현대사회의 일상화된 삶을 상징한다. 개인의 자발적 고립과 기계적 반복을 경험하는 구조를 반영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방’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제자리로 돌아오는 무력함 사이의 틈새를 안무적 언어로 드러낸다. 본질적으로 인간이 처한 상황은 공통적이며 전형적인 상황이라는 워즈워스의 이론이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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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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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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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작품은 하나의 방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순환을 다룬다. 공감과 해답은 관객의 몫이다. 네 명의 무용수는 점차 개인적 감정을 표출시키며 충돌하며 구조가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분출되는 감정은 일시적이며, 결국 다시 무감각한 반복 속으로 되돌아간다. ‘Room’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정서적 갇힘을 은유하는 장소로서 작품 전체가 관객에게 “우리는 왜 이 방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Room No. 5'에서 움직임 특성은 전체적으로 빠르고 역동적 움직임 기반으로 리듬의 밀도에 정밀하게 반응하는 신체 흐름이 중심이다. ‘이해준 밀물현대무용단’은 이숙재 현대무용의 전통을 이어받아 무수한 움직임 조련의 단계를 거쳐왔다. 음악의 마디를 세분화하여 세밀하게 쪼개는 동작, 기다림, 머무름 등 시간의 감각을 조절하며 감정의 긴장과 이완을 오간다. 무용수 간의 접촉은 전혀 없으며, 모든 움직임은 신체 간 거리와 시선의 방향만으로 관계를 암시한다.

무용수마다 개별 동선을 유지하면서도, 집단으로 동기화된 움직임(군무, 群舞)을 통해 하나의 리듬을 공유하고, 집단의 리듬 안에서 존재한다. 발생과 작업이 따르는 움직임은 전체적으로 직선적이고 날카로우며, 경험의 아날로지를 현대적으로 이끌어간다. 고도의 진지함을 견지하며 정해진 구조 속에서 개인의 감정이 억제되거나 뒤틀리는 순간들이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해준 밀물현대무용단’은 무수한 움직임으로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Room No. 5'의 구성은 닫힌 공간에서 개인이 겪는 감정과 관계의 구조를 반복과 파열의 방식으로 조직하고, 공간적으로 ‘펼치기-좁히기’의 구도를 빈번하게 나타내며, 사회적 관계의 유동성을 무대 위에 시각화한다. 무용수들은 각자 흩어져 개별 움직임을 수행하다가 특정 지점에서 중심을 향해 모이거나, 군무로 집결한다. 현대사회에서 타인과 거리감을 두는 모습과 협업을 통해 관계 맺는 모습이 교차하며, 인간관계의 불안정성과 의존성을 동시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형 대형으로 무용수들이 함께 춤을 추며,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 듯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이 장면은 현대인의 집단적 행위나 무의식적 반복을 샤머니즘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구간으로서 고립된 개인들이 다시 공동체로 귀속되는 흐름을 상징한다. 안무가는 일상을 집요하게 살아가는 현대인과 공동체를 사유한다. 안무가가 배치한 공간 속에는 시간과 양식이 다른 박자의 메트로놈을 수용하는 자유스러운 교양적 요소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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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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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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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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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섭 안무의 'Room No. 5'

'Room No. 5'의 음악은 윤희섭의 음악에 대한 해박함이 스며듦을 감지하게 한다. 초반부 여성 보이싱이 방황과 고독에 얽힌 공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이스턴 사운드(동아시아적 음향 요소)가 삽입되어 이질감을 자아낸다. 중반부에는 밴드 사운드로 전환되며 열정과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리듬이 강화되고, 마지막에는 반복되는 남성 보이싱이 후렴처럼 삽입된다. 음악은 감정의 흐름을 지시하는 주요한 장치로서 서사 없이 감정을 유도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조명에서 색 조명 없이, 흰색과 전구색(웜 화이트)만 사용되었다. 공단 소재의 의상(검정 셔츠, 바지, 반바지)이 조명에 반응되어 신체 윤곽이 더욱 두드러졌다. 파 조명, 퍼넬, 엘립소이드(써스퍼) 등을 주로 사용해 컷 전환 중심의 조명 큐를 통해 장면 전환의 명확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확보했다. 공단의 은은한 광택은 조명과 결합 시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모든 무용수의 안경 착용은 외부와의 감정적 단절, 관찰자의 시선을 차단하는 장치이다.

'Room No. 5'는 특정한 인물의 공간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소속된 사회적 구조 속의 개인을 상징한다. 펼치고 좁히는 무대 구성은 사회적 관계의 확장과 축소를 은유하며, 마지막의 원형 군무는 현대인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감정의 의식을 샤머니즘적으로 재구성한 상징적 장면이다. 이해준 밀물현대무용단, 윤희섭 안무의 'Room No. 5'는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진전을 위한 안무가의 낭만적 고뇌를 담은 수작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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