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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선트 국채 개입에 월가 반발…'재정 우위' 경고

장기채 매입 확대에 "가격 개입·재무부 신뢰 훼손" 비판
물가 3.7%인데 금리 낮추기…워시 연준과 정책 충돌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 사진=로이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장기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해 국채 매입을 확대하자 월가에서 재무부가 세계 최대 채권시장의 가격 형성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특히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연방준비제도와 달리 재무부가 주택담보대출 등 장기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하려 하면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형 투자자와 경제학자들을 인용해 베선트 장관의 국채시장 개입이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과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월가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장기 미국 국채 바이백 규모를 최소 40억달러(약 5조5000억원)로 두 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치솟자 약 32조달러(약 4경4300조원) 규모의 미국 국채시장을 안정시키고 장기 차입비용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월가에서는 정부가 시장이 결정하는 국채 가격과 금리에 직접 영향을 주려는 시도 자체가 재무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월가 "유동성 관리 아닌 가격 관리"

그레그 피터스 PGIM크레딧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재무부가 제시한 국채 개입 논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며 “결국 스스로 효과를 제한하고 역효과를 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의 리사 샬렛 CIO도 단순히 국채금리가 오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재무부가 계속 장기금리를 통제하려 한다면 워싱턴이 미국 정부부채의 지속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장에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선트 장관의 오랜 스승인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도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드러켄밀러는 장기 국채 바이백을 최소 40억달러로 확대하는 계획을 '실수'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조치가 단순히 시장의 유동성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 가격을 관리하려는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베선트 장관과 워시 의장은 모두 과거 드러켄밀러와 가까운 관계를 맺어온 인물들이다.

FT는 “이 때문에 드러켄밀러의 공개적인 반대가 베선트 장관의 정책을 둘러싼 월가의 불편한 시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전했다.

◇재무부는 금리 낮추고 연준은 물가 잡아야

더 큰 문제는 재무부와 연준의 정책 목표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최근 물가상승률은 3.7%로 연준의 목표인 2%를 크게 웃돌고 있다.

워시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필요하다면 금리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는 위원 3명이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했다. 이후 다른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도 0.25%포인트 인상을 지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베선트 장관의 장기 국채 바이백은 장기금리를 끌어내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재무부의 개입이 성공해 국채금리가 낮아지면 주택담보대출과 기업 대출 등 민간 차입비용도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수요를 억제해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연준의 긴축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ISI 부회장은 재무부의 조치가 투자자뿐 아니라 FOMC 내부 인사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워시 "시장 신호 존중"…베선트는 "시장 가격 틀렸다"

두 사람의 시장에 대한 철학도 뚜렷하게 엇갈린다.

베선트 장관은 최근 미국 정부의 차입비용 상승이 경제의 기초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재 장기 국채금리가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이다.

반면 워시 의장은 시장가격을 통화정책 판단의 중요한 신호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난달 높은 국채금리가 경제 여건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차입비용이 더 높아질 필요가 있음을 시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 연준이 자신의 임기 동안 시장에서 나오는 신호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구하 부회장은 시장의 가격 형성을 존중하겠다는 워시 의장의 기본 철학과 재무부가 현재 채권가격이 잘못됐다며 직접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조화시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무부 장관은 시장가격이 틀렸다고 판단해 개입하고 있는 반면 연준 의장은 바로 그 시장가격을 통화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잭슨홀 앞둔 워시에 부담

베선트 장관의 개입은 오는 28일(현지시각)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연설하는 워시 의장의 부담도 키우고 있다.

시장은 워시 의장이 어떤 조건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인지, 인플레이션을 연준 목표인 2%로 되돌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을지 주목하고 있다.

워시 의장은 그동안 연준이 향후 금리 경로를 미리 제시하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줄이고 경제지표와 시장가격이 더 큰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재무부가 장기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면 워시 의장이 통화정책 판단의 근거로 삼겠다는 시장가격 자체가 정부 정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스콧 바너드 웨스트우드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워시 의장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줄이는 동시에 베선트 장관이 장기금리를 억제하려 개입하면서 재무부와 연준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재정 우위 위험" 경고도

경제학자들은 논쟁이 더 커지면 연준의 독립성과 연결된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경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주택담보대출 등 차입비용을 낮추기를 원하고 있다.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만으로 장기금리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을 경우 연준에도 금리를 낮추라는 정치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연준이 정부의 부채 관리를 돕기 위해 통화정책을 운영한다면 '재정 우위'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 우위는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보다 정부의 국채 이자부담이나 재정 운용 필요성이 통화정책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FT는 베선트 장관과 워시 의장이 정기적으로 만나며 개인적으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무부와 연준의 정책 우선순위와 시장을 바라보는 접근법은 갈수록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논란은 국채 바이백 규모가 40억달러인지 그 이상인지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채권시장의 가격을 정부가 어디까지 통제하려 할 수 있는지, 물가를 잡아야 하는 중앙은행과 차입비용을 낮추려는 재무부가 동시에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할 경우 미국 경제정책의 신뢰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가 더 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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