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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⑮ 문샷(Moonshot) ... 시진핑의 꿈과 실리콘밸리 침공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반도체 기업 열전 ⑮ 문샷(Moonshot) ... 시진핑의 꿈과 실리콘밸리 침공
중국 상하이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이 열린 세계엑스포센터의 대강당은 기묘한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수많은 인파가 운집했으나 장내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의 무게를 바꾼 것은 한 청년의 등장이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 1992년생의 젊은 과학자, 바로 문샷 AI(Moonshot AI, 중국명 月之暗면)의 창립자 양즈린(Yang Zhilin) CEO였다. 그가 스크린을 향해 손을 뻗자 대형 디스플레이에 거대한 숫자가 찍혔다.

'2,800,000,000,000'. 무려 2조 8,000억 개의 매개변수(Parameter)를 가진 초거대 플래그십 인공지능 모델 '키미 K3(Kimi K3)'가 전 세계에 무상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객석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남자의 눈빛이 무겁게 빛났다. 다름 아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2018년 WAIC 대회가 개최된 이래 국가 수반이 개막식에 직접 참석해 기조연설을 감행한 것은 중국 건국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다. 시 주석은 무대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삼중 포위망(반도체 규제, 장비 수출 통제, 금융 차단)을 뚫고, 실리콘밸리의 심장부를 향해 날릴 중국의 '치명적인 비수'가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오픈AI와 앤스로픽 본사 엔지니어들은 모니터에 떠오른 키미 K3의 벤치마크 데이터를 확인하고 일제히 굳어버렸다. 미국이 자랑하던 폐쇄형 AI의 고비용 성벽이 단 2~3개월의 기술 격차라는 미명 하에 처참히 허물어지는 경고음이 상하이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문샷 AI의 창립자 양즈린은 중국 컴퓨터 과학계가 낳은 독보적인 천재이다. 1992년 중국 광둥성 산터우에서 태어난 그는 본래 컴퓨터나 코딩에 전혀 관심이 없는 소년이었다. 사춘기 시절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록 음악과 문학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도 그는 "기타를 메고 세상을 떠도는 방랑 시인이나 록 스타가 되겠다"는 낭만적 야심을 품고 자랐다. 실제로 그가 가장 사랑한 뮤지션은 영국의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였다. 가장 탐독한 앨범은 달의 뒷면을 인간의 광기로 투영해 낸 명반 The Dark Side of the Moon이었다.
이 낭만파 소년의 이면에는 한 번 몰입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무서운 천재성이 숨어 있었다. 고교 시절 우연한 기회로 컴퓨터를 접한 그는 프로그래밍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단 1년 동안 독학으로 훈련한 끝에 전국 정보학 올림피아드(NOI) 광둥성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성적을 바탕으로 중국 최고 명문 칭화대학교에 무시험 입학 자격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의 수능인 '가오카오(高考)'를 그대로 치렀다. 결과는 667점, 산터우 지역 전체 수석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그렇게 세 번의 입학 자격증을 손에 쥐고 칭화대에 진학한 그는 당초 열역학을 전공했으나,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인간의 정신과 내면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컴퓨터 과학에 매료되어 돌연 전공을 변경했다.

대학 시절에도 컴퓨터 과학과 동문들을 모아 '스플레이(Splay)'라는 이름의 록 밴드를 결성해 직접 곡을 쓰고 드럼을 연주하던 청년은, 졸업 후 돌연 미국의 심장부로 향하며 세계 AI 지형도를 뒤흔들 준비를 시작했다. 2. 실리콘밸리가 탐낸 거장, "오픈AI를 무너뜨릴 유일한 창"2015년 칭화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양즈린은 인공지능 연구의 메카인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CMU)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애플의 AI 연구 디렉터인 루스 살라후트디노프 교수와 구글 딥마인드의 수석 과학자 윌리엄 코엔 교수를 사사하며 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양즈린의 천재성은 미국 땅에서 폭발했다. 보통 5~6년 이상 걸리는 CMU 박사 과정을 단 4년 만에 끝마쳤는데, 그 짧은 기간 동안 그가 써 내려간 논문들은 전 세계 AI 연구의 근간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현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핵심 한계로 지적되던 문맥 유지 능력을 혁신적으로 개선한 'Transformer-XL'과 'XLNet' 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했다. 구글 브레인과 메타 AI 연구소(FAIR)를 거치며 그가 보여준 천재성에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연봉과 스탠퍼드, MIT의 포스트닥터 자리를 제안하며 그를 붙잡으려 안달했다.

애플은 그를 핵심 연구원으로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으나, 양즈린의 시선은 이미 실리콘밸리와 안락한 미국 교수직 너머의 더 거대한 목표를 향해 있었다."인공지능의 궁극적 도달점인 범용 인공지능(AGI)을 달성하는 기업은 현재의 빅테크 구도를 완전히 집어삼킬 것이다. 그것이 반드시 오픈AI일 필요는 없다." 2019년 말, 모든 부와 명예의 기회를 뿌리치고 중국으로 귀국한 그는 모교 칭화대 부교수로 임용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는 그러나 이내 강단을 내려와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2023년 3월, 그가 '달의 어두운 면을 보겠다'는 청춘의 야망을 담아 베이징에서 문샷 AI를 설립했다. 그가 쓴 논문을 보고 자란 칭화대 동문들과 구글, 메타 출신의 핵심 엘리트 연구원들이 대거 합류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 중국의 거대 자본은 사업 계획서도 채 완성되지 않은 이 젊은 천재의 이름 석 자만 보고 수십억 달러의 판돈을 앞다투어 밀어 넣었다.WAICO라는 인공지능 실크로드상하이 무대에 시진핑 주석이 직접 등장한 배경은 단순한 기업 격려 차원이 아니다. 이는 인공지능을 매개로 한 새로운 세계 질서의 재편, 즉 'AI 패권 전쟁'의 전면전을 선포한 국가적 총력전의 일환이다. 시 주석은 무대에서 "AI 발전은 특정 국가의 독점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공동 연주가 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는 미국 국무부가 동맹국들을 규합해 구축한 AI·반도체 철책선 '팍스 실리카(Pax Silica)'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중국은 러시아,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29개 개도국을 한데 모아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를 전격 출범시켰다. 미국 빅테크의 폐쇄형 AI 모델은 천문학적인 구독료와 인프라 비용을 요구한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개발도상국) 국가들로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시진핑은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양즈린의 문샷 AI와 또 다른 강자 딥시크(DeepSeek)가 개발한 최고 수준의 AI 소스코드를 오픈웨이트(Open-weight) 형태로 전 세계에 무상 전파하고, 향후 5년간 5,000명의 개도국 AI 인재를 중국 자본으로 교육하겠다는 파격적인 초청장을 돌린 것이다. 기술을 공공재로 보급하여 미국 중심의 디지털 식민지 구조를 타파하겠다는 명분 아래, 전 세계 AI 인프라의 표준을 '중국산'으로 깔아버리겠다는 거대한 디지털 실크로드의 완성이다.

상하이발 대지진에 미국 실리콘밸리는 깊은 충격과 침묵에 빠져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를 비롯한 서구 주요 언론들이 문샷의 키미 K3 발표 직후 오픈AI와 앤스로픽 측에 긴급 논평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일제히 "답변할 수 없다"며 철저히 입을 닫았다. 상대의 판을 키워주지 않겠다는 계산된 침묵이었으나, 내부의 기류는 비명에 가깝다. 미국 진영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대목은 문샷이 구사하는 'Sparse MoE(전문가 믹스)' 아키텍처의 극단적인 효율성이다. 미국의 오픈AI가 정공법으로 수만 대의 엔비디아 GPU를 가동하며 천문학적인 전력을 소모할 때, 양즈린과 그의 천재 연구원들은 모델 전체를 돌리지 않고 필요한 부분만 활성화하는 알고리즘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미국의 수십 분의 일 수준으로 떨어뜨렸다.앤스로픽 내부에서는 문샷 AI가 자사 모델의 출력값을 역으로 추적해 공짜로 학습시키는 '증명 공격(Distillation Attacks)'을 감행해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는 분노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앤스로픽은 최고 사양 모델인 클로드의 가격 인상을 단행해 수익성을 보전하려 했으나, 문샷이 3조 개에 육박하는 괴물 모델의 가중치를 무료로 풀어버리면서 가격 정책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더욱이 오픈AI는 백악관과 규제 당국으로부터 국가 안보 및 사이버 해킹 악용 검증을 이유로 차세대 모델 출시를 강제로 제약받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미국의 독점적 통제가 통하지 않는 거대한 중국 주도의 오픈소스 생태계가 형성되는 것을 보며 실리콘밸리의 독점 제국은 전례 없는 위기감을 맞이하고 있다.
달의 뒷면을 정복하겠다는 양즈린의 앞길이 온통 장밋빛 침대로만 가득한 것은 아니다. 그가 이룩한 유니콘 신화의 이면에는 창업 초기부터 발목을 잡아 온 잔혹한 법적 분쟁과 사법 리스크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샷 AI는 사실 양즈린의 첫 번째 창업이 아니다. 그는 미국 박사 과정 중이던 2016년, 기업용 인공지능 영업 지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리커런트 AI(Recurrent AI, 중국명 칭화순환지능)'를 공동 창업해 기업 가치를 수백억 원대까지 성장시킨 전력이 있다. 문제는 그가 인공지능 붐이 일어난 2023년 문샷 AI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모태 회사였던 리커런트 AI의 이사회와 초기 투자자들로부터 정식 분사 승인을 받지 않은 채 핵심 연구 인력과 기술 자산을 임의로 유출하여 독립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중국의 유력 벤처캐피털인 GSR 벤처스(주샤오후 파트너)를 비롯한 초기 주주들은 양즈린이 문샷 AI를 세우는 과정에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적법한 동의서(Waiver)를 받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창업 및 투자 유치를 감행했다며 홍콩국제중재센터(HKIAC)에 대규모 중재 소송을 제기했다. 이 법적 공방은 문샷 AI가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는 현재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양즈린의 선배이자 GSR 벤처스의 파트너였던 장위퉁이 리커런트 AI의 이사직을 맡으면서 문샷 AI의 지분 14%를 몰래 취득했다는 상법상 신의성실 의무 위반 논란까지 터지며 사법적 진흙탕 싸움으로 번진 상태다.그럼에도 문샷의 폭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전 세계의 자본과 기술이 상하이의 젊은 천재에게 집중되는 지금, 양즈린이 써 내려가는 문샷의 역사는 단순한 기업의 성공 신화를 넘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제국이 충돌하는 잔혹한 기술 전장의 가장 뜨거운 중심부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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