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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오일 쇼크] 호르무즈 봉쇄…유가 150달러·스태그플레이션, '에너지 아포칼립스' 초읽기

하루 1900만 배럴 대동맥이 60만 배럴로 쪼그라들었다
골드만삭스 "공급 진공" 경고…한국, 200일 버틸 비축유도 한계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유조선. 골드만 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량이 하루 60만 배럴로 감소했다고 추정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에 있는 유조선. 골드만 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량이 하루 60만 배럴로 감소했다고 추정한다. 사진=로이터
"호르무즈 해협이 닫히는 날, 세계 경제에는 석유 아포칼립스(apocalypse·대재앙)가 찾아온다."
제임스 크레인 라이스대 베이커 연구소 연구원이 내놓은 이 경고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군의 이란 하르그섬 정밀 타격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5분의 1이 지나는 에너지 대동맥이 사실상 막혔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고지를 넘어섰고, 월가는 2008년 역대 최고가(147달러) 경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유가 쇼크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류 마비·공급망 붕괴·고물가의 삼중 충격이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는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의 망령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중동 전쟁發 에너지 쇼크, 韓 경제 흔드는 10가지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중동 전쟁發 에너지 쇼크, 韓 경제 흔드는 10가지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하루 1900만 배럴이 60만 배럴로…'공급 진공' 빨아들이는 에너지 블랙홀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이란의 해협 봉쇄 이후 호르무즈 통과 물량은 평시 하루 1900만 배럴 이상에서 60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에 버금가는 물량이 시장에서 사라진 셈이다.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분석가는 지난 13(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다음 주말까지 원유 공급 차질이 하루 1,20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하며, 원유뿐 아니라 디젤·항공유·액화석유가스(LPG)·나프타 등 정제 제품 전반에 걸친 '심각한 품귀 현상'이 현실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제 제품 부족은 단순한 주유소 가격 문제를 넘어 제조업 생산원가를 전방위로 끌어올리는 충격파가 된다.

"147달러도 뚫린다"…월가의 공포 섞인 경고


RBC 캐피털 마켓은 이번 사태의 파급력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의 배럴당 128달러는 물론, 2008년에 기록된 역대 최고가인 147달러(22만 원)마저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RBC 글로벌 원자재 전략을 총괄하는 헬리마 크로프트는 "이번 미·이란 갈등이 봄철까지 장기화할 수 있다"면서 유가 상단 전망치를 상향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브렌트유는 전쟁 발발 이후 약 40% 폭등했고, 미국 내 휘발유 평균가는 13일 갤런당 3.63달러를 기록하며 13일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시장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인 갤런당 4달러 돌파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내 에너지 전문가들은 "유가가 세 자릿수를 찍은 이상, 소비자 심리 위축과 기업 투자 축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수요 붕괴 국면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출구 없는 대결…미·이란, 장기전 태세로 굳어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밤 "하르그섬의 군사 목표물을 초토화했다"고 선언하며, 이란이 선박 통행 방해를 계속할 경우 에너지 시설 자체를 파괴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 당국은 전략 비축유 방출과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제재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시장 진정 효과는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란의 새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지난 12"미국·이스라엘과의 협상력을 확보할 때까지 해협을 계속 폐쇄한다"고 천명했다. 이란 측은 국제 사회를 향해 '배럴당 200달러(299800) 시대'를 준비하라는 엄포까지 공식화했다. 크레인 연구원은 "호르무즈 봉쇄는 석유 시장의 재앙을 의미한다"면서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악화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호주 정부는 지난 13일 사재기 방지와 공급 부족 대응을 위해 국내 비축 연료 방출에 들어갔다. 벤 케이힐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고유가가 소비자 행동을 바꾸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항공·도로 여행 등 선택적 소비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가·고환율' 이중 압박…반도체 수출 훈풍도 꺾이나


이번 에너지 위기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특히 가혹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2일 발표한 '경제동향 3월호'에서 중동 분쟁발 유가 급등이 한국 경제의 핵심 하방 위험으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전체 수입량의 70%를 웃돌며, 삼성증권 추산으로 국내 정유 4사가 소비하는 중동산 원유는 하루 188만 배럴에 이른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운송비·보험료가 동시에 치솟으면서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원재료 가격에 민감한 제조업 전반으로 원가 충격이 번진다.

씨티(Citi) 보고서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82달러 수준에 머물러도 한국의 GDP 성장률이 0.45%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유가가 이미 100달러를 돌파한 현 상황을 대입하면 실제 성장률 하락폭은 이를 크게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정부는 세계 6위 규모인 약 1억 배럴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의 최신 공식 집계에 따르면, 한국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전체 비축유는 약 206~208일분으로, IEA 권고 기준인 90일을 넘는 규모다. 그러나 유가 급등세가 봄철을 넘겨 장기화한다면 비축유 방출도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물가 억제를 위해 정부가 검토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의 마진을 직격해 오히려 공급 축소를 부를 수 있다는 역설적인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출 회복이라는 호재가 있더라도 고유가와 원화 약세가 동시에 작동하면 실질 교역 이익이 상당 부분 상쇄된다"면서 "에너지 비용 증가가 수출 경쟁력 자체를 갉아먹을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다시 열리나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상 통로가 아니다. 세계 경제의 산소 공급관이다. 그 관이 막힌 지금, 문제는 '유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에너지 충격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로 바뀌었다. 19731차 오일쇼크와 19792차 오일쇼크는 모두 10년 단위의 경기 침체를 남겼다. 2025년의 세계 경제는 고금리·고부채라는 추가 취약성을 안은 채 이 충격을 맞고 있다. ·이란 협상 테이블이 열리지 않는 한,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은 단기간에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비축유 200일짜리 방패로 단기를 버티는 동안, 중동 의존도를 낮출 공급선 다변화와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높이는 데 지금보다 훨씬 절박한 실행력을 쏟아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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