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전 세계 석유, 천연가스 공급의 20%가 지나가는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하면서 자산시장의 ‘안전자산’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이란 전쟁 같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는 안전자산 선호로 미국 달러화, 금을 비롯한 귀금속 가격이 상승하고,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수익률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란 전쟁은 ‘석유 공급 감소’라는 공급 충격을 부르면서 이런 공식을 허물어버리고 있다.
달러 올랐지만, 금·미 국채는 하락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DXY)는 지난 일주일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국제 유가 폭등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로 인해 가만히 앉아서 구매력이 감소하는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은 평상시에는 불리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투자자들은 일단 위험자산을 내던지고 달러를 매수했다. 달러는 금 같은 귀금속과 달리 이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 달러를 매수한다는 것은 순수 현금 보관보다는 미 국채나 MMF(머니마켓펀드)처럼 환금성이 높으면서 이자도 받는 달러 표시 자산을 확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현재 고금리 상황에서 달러를 쥐고 있으면 4~5% 수익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일반적인 지정학적 위기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미 국채와 금 가격은 약세였다.
금 가격은 일주일 동안 1.25%, ‘가난한 자들의 금’ 은 가격은 8.88% 급락했고, 백금 가격은 9.59% 후퇴했다.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미 국채 수익률은 가파르게 올랐다.
기준물인 10년 만기 수익률은 일주일 사이 0.17%포인트 급등해 4.131%로 뛰며 일주일을 마감했다. 주간 상승률이 지난해 4월 이후 약 1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주간 상승률이 브렌트유 28%, 서부텍사스산원유(WTI) 36%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르게 치솟은 것이 금을 비롯한 귀금속과 미 국채 가격 하락을 부채질했다.
유가 폭등은 인플레이션 재점화를 예고하고, 이는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란 전망으로 이어진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 이자가 없는 귀금속을 들고 있으면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손해를 본다.
국채의 경우는 조금 다른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미국의 막대한 전쟁 비용에 대한 우려가 국채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전비 마련을 위한 국채 발행 물량이 쏟아지면 공급 증가로 국채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격 하락은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더 높은 국채가 신규 발행될 것으로 예상되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기존 국채를 먼저 내다 판다. 가격이 하락하고, 수익률은 뛴다.
무너진 자산시장 공식
1970년대 이후 오일쇼크라는 공급 충격이 당시 주류였던 케인스 경제학의 공식을 바꿔 놨던 것처럼 이번 이란 전쟁은 자산시장의 안전자산 공식을 바꿔 놓고 있다.
안전자산이라고 다 같은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분석보고서에서 주식 60%, 채권 40%로 구성된 전통적인 자산 배분 전략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이 하락하면 채권이 올라야 하지만 지금은 유가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 모두가 패배하고 있다.
JP모건, 씨티그룹은 현재 전통적인 수요 위축이 아닌 공급망 마비로 촉발된 특수 상황이 이전 공식을 갈아엎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유가 폭등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공격적으로’ 자극하고 있다면서 특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들은 인플레이션, 자본 유출, 통화 가치 하락이라는 삼중고를 겪으면서 더 혹독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삭소뱅크 시장전략가 존 하디는 현재 시장의 3대 핵심은 유가·국채 수익률·달러라면서 현금성 자산과 달러만이 유일한 안전자산이라고 못 박았다. 하디는 지금은 금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자를 주는 달러(현금성 자산)가 이자 없는 금보다 훨씬 매력적인 대피소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시 안정돼야 금값 오른다
자산시장 공식이 무너진 것은 증시와 금 가격 흐름으로도 확인된다.
위험자산인 주식과 안전자산인 금 가격은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엔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증시 하락 속에 금 가격이 함께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 핵심에 자리잡은 것은 증거금 부족(마진 콜)이다.
뉴욕 증시가 급락하면 레버리지(대출)로 주식에 투자한 이들의 계좌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마진콜 상태에 빠진다.
당장 현금을 채우지 못하면 주식이 강제로 처분된다. 반대매매다.
이때 현금 마련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손실이 적은 수단이 금이다.
이 때문에 지금은 증시가 안정돼야 금 가격이 유지되는 독특한 구조가 형성됐다. 증거금 압박이 사라져야 금이 본래의 안전자산 흐름을 되찾을 전망이다.
이런 이례적인 흐름은 과거 대폭락장에서도 반복됐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붕괴 사태 초기 7주 동안 금 가격이 주식과 함께 약 20% 폭락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도 금은 주식과 함께 12% 넘게 급락했다.
김미혜 글로벌이코노믹 해외통신원 LONGVIEW@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