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실시간 AI 편집', PC '상시 보안' 구현…'스냅드래곤 가디언' 주목
'개인 지식 그래프'로 기기 간 AI 경험 통일…"GPS가 연 우버 혁신 재현할 것"
'개인 지식 그래프'로 기기 간 AI 경험 통일…"GPS가 연 우버 혁신 재현할 것"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패러다임이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누가 더 빠른가'의 속도 경쟁을 넘어, '누가 더 지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가'의 생태계 전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퀄컴이 최근 마우이에서 개최한 '스냅드래곤 서밋 2025'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21일(현지시각) EE타임스에 따르면 2025년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스마트폰용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와 PC용 '스냅드래곤 X2 엘리트'라는 두 차세대 주력 칩에 관심이 쏠렸다. 업계의 이목은 이들 칩이 제공하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의 현란한 성능 개선 수치와 이를 기반으로 한 방대한 개발자 생태계에 집중됐다. 관련 보도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랐다. 하지만 화려한 발표 이면에 가려, 미래 기술 지형도에 훨씬 더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는 '지나치기 쉬운 3가지 핵심'이 숨어 있다.
실시간 AI 편집을 여는 'AI ISP'
먼저 스마트폰 부문이다. 최신 플래그십 제품인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 SoC(시스템온칩)는 TSMC의 3나노 공정으로 만들었으며, 4.6GHz 클럭 속도의 3세대 오라이온(Oryon) CPU를 탑재했다. 통합된 아드레노(Adreno) GPU는 23% 향상된 성능을 제공하며, 고성능 18MB 전용 GPU 메모리를 장착해 이전 세대 대비 전력 효율을 10% 개선하면서도 성능은 최대 38%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에이전틱 AI' 구현을 위해 헥사곤(Hexagon) NPU 성능을 37% 향상시키고 64비트 가상화를 결합, 초당 최대 220개의 토큰을 처리한다.
이러한 핵심 성능 지표도 인상적이지만, 정작 업계가 주목하지 않는 부분은 8 엘리트 5세대에 내장한 '2세대 AI 이미지 신호 프로세서(ISP)'다.
이 새로운 AI ISP는 기존 18비트에서 20비트 컬러로 개선했다. 단순히 색 재현력을 높이는 것을 넘어, 이미지의 밝고 어두운 영역 모두에서 훨씬 더 세밀한 디테일을 잡아내고 HDR(High-Dynamic-Range) 성능을 비약적으로 개선한다. 고속도·고역동 범위(HDR) 영상 처리에 최적의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문가급 영상 촬영을 위한 하드웨어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더욱 중요한 혁신은 '실시간 생성형 AI 이미지 및 비디오 편집' 기능이다. 지금까지는 촬영 후 '포토바머'(사진에 끼어든 불청객)를 지우거나 배경을 확장하는 생성형 AI 기능을 후처리 단계에서 제공했다. 하지만 퀄컴은 이 새로운 ISP를 통해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파트너들이 이러한 AI 보정 기능을 '실시간', 즉 촬영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과 영상의 자연스러운 AI 편집을 즉시 적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창문 너머로 멋진 풍경을 촬영할 때 유리에 비친 반사광이 사진을 망치는 경우, AI ISP가 실시간으로 이 불필요한 흔적을 제거한다.
또한 스냅드래곤 8 엘리트 5세대는 이 AI ISP를 통해, 삼성이 개발한 새로운 비디오 코덱인 '어드밴스드 프로페셔널 비디오 코덱' 녹화를 지원하는 최초의 모바일 플랫폼이다. 이 기술은 파일 크기를 최소한으로 압축하면서도 영화 수준의 고화질 영상을 구현한다.
'측면 혁신'의 기폭제, 스냅드래곤 가디언
PC 부문에서는 스냅드래곤 X2 엘리트 시리즈가 NPU 성능을 80 TOPS(초당 80조 회 연산)로 거의 2배 끌어올리는 등 괄목할 만한 성능 향상을 이뤘다. 그러나 PC 시장의 판도를 바꿀 진정한 '게임 체인저'는 '스냅드래곤 가디언'의 도입이다.
스냅드래곤 가디언은 퀄컴이 제시하는 원격 기기 관리 솔루션이다. 이 기능의 핵심은 PC 전원이 꺼져 있거나 와이파이에 연결되지 않은 오프라인 상태에서도 분실·도난당한 기기를 추적하고, 원격으로 데이터를 삭제하며, 기기 작동을 비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IT 관리 기기뿐 아니라 소비자용 PC 보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다는 평가다. 가디언은 PC 플랫폼의 상시 작동(always-on) 영역에 존재하며, 별도의 독립된 보안 BIOS와 셀룰러 모뎀을 통해 작동한다.
이러한 명백한 관리 기능 외에도, 퀄컴은 가디언을 통해 '측면 혁신(lateral innovation)'을 유도할 결정적 기회를 마련했을 수 있다.
미국 기술 리서치 회사 티리아스 리서치는 '측면 혁신'을 "하나의 목적으로 채택된 기술이, 당초 예상치 못했던 다른 목적으로 활용돼 추가 가치를 창출하는 개념"으로 정의한 바 있다. 위성 위치 확인 기술(GPS) 기반의 위치 기반 서비스가 대표적인 '측면 혁신' 사례다. GPS 기술은 3G 데이터 통신 구현을 위해 스마트폰에 '필수적으로' 탑재하기 시작하자 보편화됐고, 일단 인프라가 깔리자 우버와 같은 혁신 기업들이 이 내장 기능을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었다.
스냅드래곤 가디언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한 보안 및 기기 관리'라는 확실한 가치 제안은, 지난 10여 년간 주류 시장 진입에 고전해 온 '셀룰러 PC'의 보편적 채택을 이끄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만약 가디언이 PC의 셀룰러 통신을 기본 사양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면, 즉 스마트폰에 준하는 PC용 셀룰러 통신 활성화에 기여한다면, 그 파급력은 단순한 원격 관리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GPS가 그랬던 것처럼, 위치 기반 신사업 등 PC 기반의 완전히 새로운 혁신 서비스 시대를 열 수 있다.
기기 간 연결하는 '개인 지식 그래프'
마지막 핵심은 '에이전틱 AI' 시대에 온디바이스 AI가 수행할 역할, 그리고 '하이브리드 AI'의 진정한 의미다.
하이브리드 AI는 단순히 클라우드와 기기가 AI 연산을 분담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가 소유한 '다양한 기기 간'에 AI 워크로드를 처리하는 개념으로 확장하고 있다. 사용자를 대신해 작업을 수행하는 에이전틱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스마트폰·PC·자동차 잇는 'AI 개인 비서'
에이전틱 AI의 핵심 과제는 '개인화'다. 하지만 사용자의 태블릿, 스마트폰, PC, 심지어 차량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기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 '개인화' 데이터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공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퀄컴은 이 지점에서 스냅드래곤 생태계의 이점을 극대화하려 한다. 스냅드래곤 기반 기기들이 보안을 전제로 개인화 경험을 원활하게 공유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퀄컴은 '개인 지식 그래프'라는 전략을 통해 이를 구현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 지식 그래프는 다양한 기기 유형의 스냅드래곤 SoC에 내장된 '보안 통신 및 로직 아일랜드'를 통해 안전하게 공유한다. 여러 디바이스 간 AI 워크로드의 효율적인 분산과 맞춤형 사용자 경험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기술이라는 평가다.
스마트폰의 AI ISP, PC의 원격 관리, 기기 간 개인화 동기화 등은 칩셋의 핵심 성능 발표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세 가지 혁신은 CPU, GPU, NPU 성능 향상이라는 하드웨어 스펙 이면에 숨어, 실제 사용자 경험과 미래 서비스 가능성을 좌우할 본질적인 변화의 동력이다.
퀄컴은 이번 발표를 통해 AI 기능 강화, 실시간 콘텐츠 생성, 보안과 관리의 혁신, 그리고 디바이스 간 AI 연계 생태계 구축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2025년 스냅드래곤 서밋은 스마트폰·PC의 AI 성능 향상뿐 아니라, 보안, 멀티디바이스 협업, 실시간 AI 영상처리와 같은 분야에서 미래 경쟁 우위를 가늠할 다각적인 기술들을 선보인 자리로 평가할 수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