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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오라클, AI·틱톡으로 부활…래리 엘리슨, 머스크 제치고 왕좌 올라

클라우드 후발주자의 반격…기업용 AI 시장 정조준해 판도 뒤집어
350억 달러의 대담한 투자…'승자의 저주' 우려 속 시험대 오른 오라클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 제치고 세계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회장 제치고 세계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81세의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이 일론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호의 왕좌에 올랐다. 그의 등극은 오라클이 추진해온 'AI 기반시설 대전략'과 '틱톡'이라는 결정적 변수가 맞물려 클라우드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결과라고 디지타임스가 1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기술 지형의 격변기 속에서 노련한 거대 기업이 어떻게 부활하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40년 넘게 실리콘밸리를 종횡무진 누벼온 엘리슨은 언제나 공격적인 경영 방식으로 '기술 업계의 나쁜 남자(Bad Boy of Tech)'로 불렸다. 대담한 개인 브랜드를 만들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면에서, 오늘날의 머스크는 엘리슨이 이미 개척한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세 곳의 대학을 중퇴해 학위 하나 없지만, 탁월한 사업 감각과 국가기관과 정치계 인맥을 활용하는 능력 덕분에 업계 거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사업가다운 기질은 1970년대 후반부터 빛을 발했다. 당시 엘리슨은 IBM의 전략상 허점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그는 최고의 기술 동료들과 손잡고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데이터베이스 제품을 들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문을 두드려 초기 계약을 따냈다. 이 계약은 IT 혁명의 새벽에 그가 가장 먼저 열매를 맛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광은 길지 않았다. 오랫동안 전통 데이터베이스 시장에 안주했던 오라클은 클라우드 시대 흐름에 뒤처졌고, 거대 시장인 중국에서도 밀려나며 한동안 '퇴물 기업' 취급을 받았다.

틱톡 등에 업고 AI 강자로…클라우드 후발주자의 반란

반전의 시작은 2016년, 오라클이 2세대 클라우드인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OCI)'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후발주자였지만 목표는 뚜렷했다. 기존 강점인 데이터베이스 기술과 기업 고객을 바탕으로 기업용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을 정조준했다. 아마존 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가 인터넷 신생기업 중심의 서비스를 펼칠 때, 오라클은 대기업과 정부 기관처럼 복잡하고 보안이 중요한 고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설계하며 자신만의 길을 닦았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20년 틱톡 사태였다. 미국 정부의 압박 탓에 사업 매각 위기에 놓인 틱톡은 미국 내 서비스를 위한 기술 동반자를 찾아야 했다. 이때 엘리슨의 정치 감각이 빛을 발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문 공화당 지지자였던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깊은 유대 관계를 앞세워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틱톡의 '신뢰받는 기술 제공자(Trusted Technology Provider)'로 뽑혔다.

이 계약은 오라클에 단순한 고객사 이상의 뜻을 가졌다. 틱톡의 폭발적인 데이터양은 오라클 클라우드 역사상 가장 큰 부하를 일으켰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대량의 엔비디아 GPU를 확보하고 AI 기반시설을 직접 운영하며 독보적인 경험과 기술을 쌓았다. 이를 통해 오라클은 대규모 AI 작업 관리 면에서 AWS나 구글에 뒤지지 않는 역량을 갖췄다. OCI의 초저지연 고성능 네트워크는 거대 모델 학습과 추론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으며, 비용과 에너지 효율 면에서도 결정적으로 앞서나갔다.

이러한 기술상 비전 위에 오라클이 수십 년간 쌓아온 핵심 경쟁력을 더했다. 바로 핵심 시스템 운영 신뢰도와 고객과 쌓은 오랜 신뢰라는 자산이다. 이 두 가지가 AI 클러스터 기술과 합쳐지며 오라클은 '기업용 AI 기반시설의 표준'을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스타게이트'로 미래에 베팅…막대한 투자 리스크는 과제


엘리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24년 11월, 그는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를 기회로 삼아 오픈AI(OpenAI)와 손잡고 초고성능 컴퓨터 기반시설 구축 계획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최대 규모의 AI 기반시설 투자로, AI 산업에서 국가 안보와 정책 차원의 협력이 강해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오라클이 부활하는 길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25년 오라클의 연간 설비투자(CapEx)는 350억 달러(약 50조 원)에 이르러, 단기적으로 잉여현금흐름이 적자로 돌아섰다. 일부 산업 분석가들은 단기 과열 투자를 관리하지 못하면 2000년대 초반 닷컴 기업처럼 수익성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쌓여 있는 막대한 계약 잔고를 어떻게 빠르게 실제 매출로 바꾸고, 전 세계에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구축할 것인가는 그가 풀어야 할 숙제다.

래리 엘리슨의 세계 부호 1위 등극은 단순한 주가 상승을 넘어 '전통 IT 기업의 AI 기반시설 혁신 성공 본보기'를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는 틱톡 계약부터 오픈AI와의 협력에 이르기까지 정치 인맥과 기술 리더십을 합쳐 오라클을 '클라우드 후발주자에서 AI 핵심 기반시설 제공자'로 완벽히 탈바꿈시켰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그가 막대한 투자 속에서 자본 효율성을 어떻게 관리하며 제국의 명맥을 이어갈지 증명해내는 과정에 쏠리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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