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구두 협상 관행 깨고 이례적 서면 요구…업계 "사실상 압박"
가동률 70%대 한계…"TSMC와 협상력 달라, 중소업체만 피해" 우려
가동률 70%대 한계…"TSMC와 협상력 달라, 중소업체만 피해" 우려

세계 3위 파운드리 유니마이크론(UMC)이 모든 공급업체를 대상으로 15%를 웃도는 가격 인하를 공식 요구하고 나서면서 반도체 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2026년 가격 경쟁 심화가 예고되는 성숙 공정 시장을 겨냥해 한발 앞서 대응하는 조치로 풀이되면서, 통상 구두로 진행하던 소폭의 가격 협상 관행을 깨고 이례적으로 '서면 통보'라는 강경한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2일(현지시각) IT전문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UMC는 최근 모든 공급망 파트너사에 2026년 1월 1일부터 15%가 넘는 단가 인하 계획을 제출하라고 공식 요구했다. 이는 해마다 4분기에 공급사와 5% 미만의 가격 인하를 구두로 협의해왔던 기존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례 없는 조치다. 업계는 UMC가 서한을 일부러 외부에 흘려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공급망 전체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미래 협력 연계'…서한으로 보낸 강력한 경고
이번 요구는 UMC의 앤디 린 수석 이사(Senior Division Director)가 직접 서명한 서한 형태로 모든 공급사에 전달됐다. 서한에는 UMC의 강한 의지와 요구사항이 명확하게 담겼다.
"귀사의 오랜 지원과 UMC와의 협력에 감사드립니다. 제품 품질과 적시 납품에 대한 귀사의 헌신은 우리의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고객 신뢰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했습니다.
품질과 납기 외에도 비용 또한 똑같이 중요합니다. 최근 세계 정치·경제 상황의 변동성은 UMC의 운영 비용과 경쟁력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외부 요인의 급격한 변화로 비용 통제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따라서 회사의 경쟁력에 대응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비용 절감의 돌파구 마련이 더욱 시급해졌습니다.
또한, 우리는 업계 선두 기업들이 공급망 전반에 걸쳐 유사한 비용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공개 자료와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는 가격 인하가 광범위한 업계의 공감대이자 추세임을 나타냅니다. 세계 시장에서 선도적 위치를 유지하고 공급업체 공동체의 장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즉시 비용 최적화 조치를 실행해야 합니다.
이에 따라 UMC는 귀사에 15%를 웃도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가격 인하 계획을 제출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이 계획은 2026년 전체를 포함해야 하며 2026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해야 합니다. UMC는 이 계획을 앞으로의 협력과 생산능력 할당의 중요한 근거로 삼을 것입니다. 이 사안을 최우선으로 처리해 주시고, 본 통지를 받은 후 한 달 이내에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장 전문가들은 UMC의 이례적으로 강경한 태도 뒤에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급변하는 지정학·경제 환경이 UMC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TSMC와 같은 업계 선두 주자들이 이미 공급망을 상대로 비용 절감에 나선 선례를 따르려는 전략에 따른 판단일 수 있다. 셋째, '공급업체의 장기 이익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단가 인하에 대한 저항을 최소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최근 파운드리 시장에 다시 뛰어든 인텔의 부상을 의식해 잠재적 동맹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사의 협상력을 과시하려는 목적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업계는 '회의론'…"TSMC와 다른 제한된 협상력"
그러나 공급업계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2026년부터 성숙 공정 부문에서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UMC의 이번 조치는 생존을 위한 압박 카드로 보는 시각이 많다. 현재 주력 공정인 28나노의 가동률이 70%를 약간 웃도는 상황에서, 원가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번 압박은 실리콘 웨이퍼, 화학물질, 가스 등 원자재는 물론 검사, 물류, 유지보수 등 서비스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TSMC와 비교해 규모, 기술력, 구매력 모든 면에서 열세인 UMC가 전면적인 가격 인하를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공급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번 조치는 파운드리 업계의 가격 경쟁과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특히 대규모 또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공급사보다는 규모가 작은 부품·소재 업체에 부담이 쏠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들은 "반도체 산업에서 가격 결정권은 결국 협상력에서 나온다"며 "UMC가 처한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모든 공급사가 이번 요구에 따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