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설계'-한국 '제조' 맞손…취약한 공급망 고리 잇는다
고성장 인도 시장 선점 효과…설계-제조 생태계 구축 가속도
고성장 인도 시장 선점 효과…설계-제조 생태계 구축 가속도

국내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의 선두 주자인 DB하이텍이 인도의 유력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과 손잡고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인도 시장 공략의 포문을 열었다. 풍부한 설계 인력에 비해 제조 기반이 절대 부족한 인도의 약점을 파고들어, 한국의 검증된 제조 역량과 인도의 설계 전문성을 결합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이번 제휴는 인도 정부의 강력한 반도체 육성 정책과 맞물려 현지 시장에 알맞은 파운드리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세계 매출을 다각화하려는 DB하이텍의 중장기 포석이다.
1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아시아 등 외신에 따르면 DB하이텍은 최근 인도의 스마트SoC 솔루션스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스마트SoC가 DB하이텍의 '인도 내 공식 설계 협력사' 역할을 맡는 것이다. 스마트SoC는 자사의 폭넓은 고객망을 활용해 DB하이텍의 특화 파운드리 공정 기술과 생산 역량을 인도 반도체 설계 기업(팹리스)들에 소개하고, 양측의 기술 협력을 원활하게 조율하며 현지 고객과의 핵심 소통 창구 구실을 한다. 사실상 DB하이텍의 인도 시장 개척을 위한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 셈이다.
설계는 강국, 제조는 불모지…인도의 기회와 과제
이번 협력은 인도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거는 시점에 이뤄져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인도 정부는 '생산연계인센티브(PLI)' 제도를 앞세워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자국 내 전자제품 제조와 반도체 생태계 확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는 인도가 세계적인 수준의 반도체 설계 인력을 풍부하게 갖춰 '칩 설계 강국'이 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왔다. 하지만 설계한 칩을 실제로 생산할 제조 시설(팹)이 절대 부족해 대부분의 팹리스가 해외 파운드리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제휴가 설계 역량은 강력하지만 제조 시설 이용이 극히 제한적인 인도의 반도체 가치 사슬(밸류 체인)에서 결정적인 '끊어진 고리'를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인도 내 팹리스와 설계 회사들은 DB하이텍의 검증된 고성능 아날로그/혼합신호 공정을 쉽게 이용하게 돼, 혁신에 속도를 내고 시장 출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발판을 마련했다. DB하이텍은 아날로그 반도체와 혼합신호 반도체 분야에 강점이 있어, 관련 분야 인도 기업들의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자체 영업망 없이 신시장 개척…'상생'으로 성장 발판
DB하이텍으로서는 이번 협력이 세계 매출 다각화와 고부가가치 공정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한 전략상 중요한 뜻을 갖는다. 특히 이번 협력은 DB하이텍이 인도에 자체 영업망을 직접 만들지 않고도 현지 시장의 영업 접점을 효율적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뜻이 깊다. 외신은 이번 제휴가 DB하이텍의 장기 성장 전략에 필수적인 행보라고 평가했다. 인도는 막강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신흥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 인텔리전스는 인도의 반도체 시장 규모가 2025년 13억 5400만 달러(약 1조 9000억 원)에서 연평균 7.39% 성장해 2030년에는 23억 5800만 달러(약 3조 31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조기에 선점하고 안정적인 현지 협력사를 확보하는 것은 앞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양사는 이번 협력이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인도 내에 더 통합된 '칩 설계-제조 연계 생태계'를 만드는 장기적인 비전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마트SoC는 서비스 분야를 기존 설계 영역에서 제조 연계까지 확장하고, DB하이텍은 인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는, 서로에게 이로운 '상생' 효과를 기대한다.
DB하이텍은 1997년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으로, BCDMOS, CMOS 이미지 센서, 아날로그, 전력 반도체 등 특화 공정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모바일 기기, 소비자 가전, 자동차, 산업 시스템에 폭넓게 쓰이는 180나노와 130나노 BCDMOS 같은 성숙 공정에서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협력사인 스마트SoC는 2016년에 설립된 엔지니어링 기술 서비스 기업으로, 칩 설계부터 검증, 평가, 임베디드 시스템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일괄 수주(턴키)' 방식으로 자동차, 통신 등 여러 산업 분야에 기술을 제공한다. 업계는 이번 협력이 인도의 설계 기반 강점과 제조 기반 부족이라는 산업 구조와 맞물려 현지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는 핵심 협력 관계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인도 팹리스와 설계 기업의 세계 경쟁력을 높이고 세계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