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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中 '엔비디아 칩 금지' 선언, AI 패권 경쟁 지각변동 예고

화웨이 앞세워 '기술 자립' 가속…자국산 칩 자신감 표출
엔비디아, 최대 시장 잃고 타격…글로벌 기술 생태계 양분화 심화
중국이 엔비디아의 AI 칩 구매를 전면 금지하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조치는 자국산 칩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기술 독립’ 선언으로 풀이되며, 글로벌 AI 생태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엔비디아의 AI 칩 구매를 전면 금지하며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이번 조치는 자국산 칩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기술 독립’ 선언으로 풀이되며, 글로벌 AI 생태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강타했다. 중국이 자국 기술 기업에 미국 엔비디아의 AI 칩 구매를 전면 금지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무역 보복 조치를 넘어, 미국의 고강도 제재 속에서도 자국산 칩으로 AI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기술 독립 선언'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치로 화웨이를 앞세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세계 AI 생태계는 서방과 중국으로 나뉘는 거대한 지각 변동의 막을 열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18일(현지시각)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인터넷 규제 당국이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같은 자국 정보기술(IT) 기업들에 엔비디아 AI 칩 구매 중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겉으로는 계속되는 미중 무역 전쟁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는 과거 특정 고성능 칩(H100, A100 등) 수출을 막던 미국의 제재에 맞서는 성격이 짙고, 기존 H20 같은 단일 제품 규제를 넘어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저사양 칩까지 막는 포괄적 금지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 역시 런던에서 "두 나라는 해결해야 할 더 큰 의제가 있다"며 지나친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산업계가 느끼는 충격은 다르다. 당장 중국 기업들은 미국 본토 밖에서 팔리던 저사양 'RTX 프로 6000D' 프로세서 시험마저 중단하고, 화웨이, 캠브리콘 등이 생산하는 자국산 칩으로 모두 바꿔야 하는 중대한 과제를 안았다. 이는 엔비디아 중심이었던 기존 AI 기반 시설을 근본부터 바꾸는 '리-와이어링(re-wiring)'을 뜻한다.

자신감 얻은 中의 'AI 굴기'… 발등에 불 떨어진 엔비디아


더욱 중요한 점은 이번 조치가 중국의 '반도체 자립'이 한계점을 넘었다는 중국 규제 당국의 확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인 일이다. FT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자국산 AI 프로세서가 미국의 수출 통제 아래 허용된 엔비디아 제품 성능과 맞먹거나 이를 넘어선다고 결론 내렸다. 2024년 한 해 동안 중국 연구진이 발표한 AI 관련 논문은 2만3695건으로 미국(6378건), 영국(2747건), 유럽연합(1만 55건)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연구개발 역량도 탄탄하다.

이번 금지 조치로 엔비디아는 전체 매출의 17%를 차지하던 거대 시장을 잃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약 4% 떨어졌으며, 분석가들은 한 해 8조에서 16조 원 규모의 타격을 입으리라 예측했다. 이미 중국 AI 데이터센터 칩 시장 점유율은 자국 경쟁사의 성장으로 90%에서 50%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젠슨 황 CEO는 "우리는 그 나라가 원할 때만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실망스럽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에 해결해야 할 더 큰 의제가 있음을 이해한다"고 복잡한 마음을 드러냈다.

중국의 자신감은 구체적인 생산 계획에서 드러난다. 중국 칩 제조사들은 화웨이의 '어센드 910' 시리즈를 필두로 2026년까지 AI 프로세서 생산량을 세 배로 늘릴 계획이다. 개별 칩 성능은 엔비디아의 최첨단 제품에 미치지 못하지만, 여러 개의 저렴한 칩을 묶어 비슷한 성능을 내는 '클러스터링' 방식으로 최첨단 제조 공정의 한계를 피해 가는 전략을 택했다. 한 관련 기업 임원은 FT에 "이전에는 지정학적 상황이 나아지면 엔비디아 공급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가 자국 시스템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서방 vs 中, 갈라서는 AI 생태계


이번 조치는 결국 세계 AI 생태계가 서방과 중국 두 갈래로 나뉘는 갈림길을 재촉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체계까지 갈라서는 본격적인 'AI 이원화' 시대가 온 것이다. 양쪽 모두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성능이 낮은 자국산 칩을 쓰는 중국 기업은 대규모 언어 모델(LLM) 훈련에 더 많은 전력과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참고로 오픈AI의 GPT-3 훈련에는 1287MWh의 전력이 쓰였는데, 이는 미국 일반 가정 120년 치 사용량과 맞먹는다. 반면 서방 기업들은 거대한 중국 시장과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자료, 실제 AI 적용 사례를 활용할 기회를 잃는다. 앞으로의 경쟁은 단순히 칩 성능을 넘어 기술혁신 속도, 전력소모 효율, 모델 완성도 등 새로운 국면에서 펼쳐질 것이다.
전쟁은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 전선으로 번지고 있다. 엔비디아의 독점 개발 환경인 '쿠다(CUDA)'에 맞서 AMD의 'ROCm' 같은 오픈소스 대안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쿠다 대안 개발에 집중하면서 특정 하드웨어에 얽매이지 않는 AI 개발 환경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이는 대용량·초고성능 칩이 없는 약점을 효율적인 알고리즘으로 극복하려는, 소프트웨어를 통한 우위 확보 전략의 하나이며, 딥시크(DeepSeek) 같은 차세대 모델의 등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기술적으로 앞선 AMD의 GPU 등이 AI 시장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게 한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잠금 효과'를 깨뜨려 길게 보면 산업 전체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중국의 엔비디아 칩 금지령은 AI 패권 경쟁의 판도를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다. 이는 자국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전략에 따른 선택이며, 세계 기술 공급망 재편을 예고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칩 없이도 수요를 감당할 만큼 국내 공급이 충분하다는 것이 최고위층의 공감대"라고 말했다. 엔비디아 역시 향후 재무 전망에서 중국을 제외하라고 분석가들에게 경고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시장과의 결별을 공식화했다. AI 기술을 둘러싼 양국의 대립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R&D 협력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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