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기차 보조금 폐지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540억 달러(약 76조8900억 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미국 정부 보조금 지급 약속을 받았던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DI, SK온 등 배터리 제조업체가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하거나 완공 계획을 늦추고 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에 전기차 수요 감소를 우려한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포스코퓨처엠은 지난 9월 GM과 합작해 캐나다 퀘벡주에 짓고 있던 양극재 공장의 완공 일정을 연기했다. 시장 조사업체 SNE 리서치의 케니 김 최고경영자(CEO)는 이 매체에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아직 구체적인 행동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당선인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을 어느 정도 줄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핵심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머스크와 정부효율부(DOGE)를 함께 이끌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난 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찾아 공화당 의원들과 면담하면서 전기차 세액 공제와 관련된 질문에 “나는 모든 공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도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보도했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석유·가스회사 '콘티넨털 리소스즈' 창립자인 해럴드 햄과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가 이끄는 에너지정책팀이 IRA 세액 공제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 측은 정권 인수팀에 보조금 폐지를 지지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유세에서 줄곧 IRA를 비롯해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가 추진해온 청정에너지 정책을 비판해 왔다. 전기차 보조금 폐지는 미국에 진출한 현대차 그룹과 이차전지 업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IRA에 따라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판매하는 기업에 셀은 1킬로와트시(㎾h)당 35달러, 모듈은 1㎾h당 10달러의 첨단제조세액공제(AMPC) 혜택을 준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한국의 대표적인 수혜 기업이다.
블룸버그는 “IRA 보조금 폐지는 한국 기업들과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을 줄이려는 미국 파트너 업체들의 수익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서 “이들 업체는 전기차 수요 감소와 배터리 가격 하락으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일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배터리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에 최대 75억4000만 달러 대출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스타플러스에너지의 인디애나주 전기차 리튬이온배터리 공장 2곳과 모듈 조립 공장 건설을 지원한다. 이 공장들의 생산 능력은 연간 약 67기가와트시(GWh) 규모로, 이는 67만 대의 전기차에 공급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에너지부가 밝혔다.
그러나 DOGE의 라마스와미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스타플러스에너지와 미국 전기차 업체 리비안을 겨냥해 정부 대출 조사를 예고했다. 그는 "바이든의 보조금 지출은 불법이며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미국에서 모두 15개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고, 이 중 절반가량이 지난 2022년 IRA가 발효된 이후에 결정된 것이라고 블룸버그가 강조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는 미시간, 오하이오, 켄터키, 조지아주에 걸쳐 ‘배터리 벨트’를 구축하고, 약 2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예정이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