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 혁신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대대적인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AI 붐과 함께 증가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각국의 에너지 인프라에 전례 없는 도전을 제기하는 가운데, 주요국들은 원전 확대를 통한 해결책 모색에 나서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 특히 맥킨지는 유럽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현재 연간 약 62테라와트시에서 2030년 150테라와트시로 약 3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IEA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비중이 2022년 전체 전력 소비의 4%에서 2026년 6%로 증가하고, 2030년에는 12%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측했다. OpenAI의 샘 알트만 CEO는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 한 곳의 전력 소비량이 중소도시 전체 소비량에 맞먹는 최대 5기가와트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시아의 변화도 주목된다. 중국은 2025년까지 1,500개의 대형 데이터센터와 47기의 원전을 동시에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는 이미 아시아 데이터센터 허브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과 한국은 자국 기업의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 역시 디지털 인프라 확충과 함께 10기의 원전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여 세계 각국은 원자력 발전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60개국이 총 108기의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으며, 30여 개국이 추가로 원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14기의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독일도 최근 폐쇄한 원전의 재가동을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과 함께 기존 원전 수명 연장을 추진 중이며, 폴란드와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도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의 대응도 적극적이다. 구글은 2035년까지 500메가와트(MW) 규모의 원자력 에너지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아마존은 워싱턴 주에서 960메가와트 규모의 SMR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엔비디아는 일본 가시와자키 원전 인근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안정적 전력 공급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원전 확대는 핵연료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WNA)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우라늄 수요가 현재보다 약 50% 증가한 연간 10만 톤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우라늄 현물 가격은 지난 1년간 약 2배 상승했으며, 각국은 안정적인 핵연료 확보를 위한 장기 계약 체결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도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은 전력 인프라를 최우선 투자처로 지목했으며, 투자 영역을 냉각 시스템, 전력 저장 장치 등 데이터센터 관련 산업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향후 4~5년간 전 세계적으로 1조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 급증은 글로벌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넘어 국가 경쟁력의 새로운 척도로 부상하고 있다. 충분한 전력 공급 능력 확보가 디지털 혁신의 필수 조건이 되면서, 각국은 원자력을 포함한 다양한 에너지원의 최적 조합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유럽, 미국 간의 기술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안정적 전력 공급 능력은 향후 글로벌 산업 지형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