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심화와 중국 정부의 숨 막히는 규제에 질린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싱가포르로 대거 몰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싱가포르는 외국 자본 및 기술 접근성이 뛰어나고 비즈니스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하며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지를 갖춰,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는 중국 AI 기업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2년 전 중국 항저우에서 AI 스타트업 '탭컷(Tabcut)'을 창업한 우쿤송과 첸빙후이는 벤처캐피털 투자 유치 등 숱한 난관에 부딪혀 올해 3월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겼다. 이들은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투자자와 고객 유치가 훨씬 수월하고,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로 중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엔비디아의 최신 칩 등 첨단 기술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전 이유로 꼽았다.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중국 기업들이 선호하는 투자처였지만, 최근 미국의 제재로 첨단 기술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AI 기업들의 '싱가포르행'이 가속화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싱가포르에는 1100개 이상의 AI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며, 이 중 상당수가 중국계 기업인 것으로 추정된다.
싱가포르는 AI 규제가 비교적 자유롭고 회사 설립 절차가 간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재정 지원, 기술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스타트업 성장을 돕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 찬 이밍 부사장은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전 세계 기업가들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며 중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냈다.
중국 AI 스타트업들은 싱가포르를 통해 '중국 리스크'를 희석하고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이른바 '싱가포르 세탁'을 통해 미국 등 서방 국가의 규제와 감시를 피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물론 싱가포르 이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에서 여전히 퇴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중국 패션 대기업 쉬인 역시 미국에서 비판을 받아 런던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AI 스타트업에게 싱가포르는 단순한 이미지 세탁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AI 기술 개발에는 방대한 데이터와 최첨단 칩이 필수적인데, 미국의 제재로 중국에서는 이러한 자원 확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당국의 엄격한 AI 콘텐츠 검열도 기술 개발과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AI 스타트업들이 자국에 남아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미·중 갈등 심화와 숨 막히는 규제 속에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기업들은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중국 AI 스타트업들의 '싱가포르 엑소더스'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